‘돈’이 ‘수령님’ 밀어낸다?

최근 중국에서 만나는 북한 주민들은 두 가지 부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국가로부터 통행증을 발급 받아 중국으로 나온 사람들은 빛나는 ‘초상휘장’을 가슴 위에 달고 씩씩하게 거리를 활보한다. 요즘은 단둥(丹東), 투먼(圖們) 등 국경지역의 도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개방된 중국 사회주의의 풍요를 한껏 느끼고 있는 그들의 표정을 보고 있노라면 한국의 조그만 시골장터에서 만나는 고향 친구 같은 친밀감에 사로잡힌다.

반면 가끔 허름한 소도시의 뒷골목 양고기 집이나 오래된 조선족들의 식당 같은 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불법으로 국경을 넘어 중국에서 숨어지내는 사람들이다. 흔히 말하는 ‘탈북자’들이다. 늘 눈치를 살피며 불안해하고 인터뷰 후에 쥐어주는 100위엔 짜리 중국인민폐를 황망하게 거절하는 사람들이다. 기자의 다리를 붙잡고 한국으로 보내달라는 부탁을 하기도 한다. 눈물없이 작별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중국에서 만나는 서로 다른 두 부류의 북한 사람들의 차이점은 딱 한가지이다. 그들의 차이는 바로 ‘돈’이다. 돈이 있는 사람들은 돈으로 국경통행증을 만든다. 요즘은 돈만 있으면 그 무시무시하다는 ‘국가보위부’의 외사지도원이 문건작성부터 상급단위의 허가까지 다 책임져준다. 한마디로 돈만 쥐어주면 국가보위부의 ‘원스톱 서비스’를 받는 셈이다.

나날이 커지는 빈부격차, 북한은 이제 돈 중심의 사회

얼마전 북한당국은 중국인 친척이 있는 사람들의 경우 까다로운 자격요건이나 절차를 간소화해서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중국여행을 하도록 허용하는 정책을 취하겠다고 발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에서는 일시적으로 중국여행이 쉬워졌다는 소문도 들렸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반대의 소문들도 들렸다. 지난 여름에는 함경북도 국경지역에서 뇌물을 받고 사람들의 중국행을 눈감아 주던 국경경비대 정치위원이 평양에 불려가 ‘죽을만큼 맞고 왔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자유롭게 중국을 다니는 북한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은 여러모로 긍정적인 현상이다. 중국의 발전상황을 목격하는 북한주민들이 많아질수록 북한의 변화를 갈망하는 요구가 높아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북한내부에 여행자가 늘어나고 있는 흐름은 또 하나의 불안요소가 커지고 있음을 주시해야 한다. 여행의 자유가 국가정책의 변화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뇌물과 편법이 활개칠 만큼 ‘돈’ 중심으로 북한사회가 병들고 있기 때문이다.

다같이 못살았던 시절, 수령 외에는 의지할 곳이 없었던 북한주민들이 이제 ‘돈’의 힘에 의지하기 시작했다. 앞으로는 북한주민들 스스로 목격하는 사회 곳곳의 빈부의 격차는 묵과할 수 없는 근본 불만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돈의 위세’가 ‘수령님의 교시’를 밀어낼 날도 얼마남지 않은 것 같다.

중국 지린 = 김영진 특파원 kyj@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