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항일 빨치산 회상기’에 얽힌 추억

▲ 새로 출간된 회상기, 표지 60년대와 동일함

북한 인터넷사이트 ‘우리민족끼리’에 북한 도서들이 소개됐다. 이중 이미 역사의 뒤뜰로 사라진 ‘항일빨치산 참가자들의 회상기’ 3권이 새롭게 나타나 의문을 불러 일으킨다. 이미 구닥다리가 된 책을 새롭게(?) 출간했다는 것이다. 그 이유가 뭘까.

기자는 북한에 있을 때 이 회상기에 얽힌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회상기(回想記)는 항일투쟁 참가자들의 이야기를 펴낸 책이다. 김일성은 항일 빨치산 투쟁을 선전하기 위해 빨치산 참가자들의 회상기를 출판하도록 했다. 출판 시기는 56년 8월 전원회의에서 최창익, 박창옥을 비롯한 소련파와 연안파를 숙청한 시기와 거의 동일하다.

김일성의 권력장악이 본격화 되면서 지식인 출신 마르크스-레닌주의자(소련파)들과 김일성의 빨치산파들은 결코 운명을 같이 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김일성이 조선노동당 출판사에 빨치산 출신들의 회상기를 출판하도록 지시했지만, 출판사의 작가, 편집자들이 이들의 글을 받아낸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빨치산 출신 중에는 낫 놓고 ‘ㄱ’자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인민무력부장을 지낸 최현을 보좌한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최현은 글을 몰라 종이에 그림을 그려 나와서 연설했다”고 한다.

작가들은 이들이 보내온 서툰 문장과 틀린 글자를 밤새 고쳐 다듬고, 글을 쓰기 싫어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대신 원고를 작성해주었다.

반대파 숙청되면 회상기도 삭제

회상기는 1959년부터 70년 3월까지 모두 1~12권까지 출판되었다. 주민들은 무조건 회상기를 읽어야 했고, 항일 유격대의 정신을 따라 배우자고 선전했다. 이때 등장한 구호가 “생산도 학습도 생활도 항일유격대식으로”이다.

당시 많이 읽힌 회상기는 60년대 숙청된 당 조직비서 박금철, 부수상 이효순, 민족보위상(무력상) 김창봉, 대남총책 허봉학 등이었다.

그런데 이들이 반당 종파분자로 숙청되면서 당에서 회상기 검열을 나왔다. 책 한권에서 불과 몇장만 내놓고 모두 삭제되는 경우도 있었다. 박금철이 숙청되자 당조직은 “박금철은 일제에 전향서를 쓴 변절자”라며 집집마다 돌면서 그의 회상기를 삭제하느라 뛰어다녔다.

당비서들은 먹과 종이, 풀을 갖고 다니며 숙청당한 사람의 회상기 부분을 칼로 찢어 내고 목차(目次)를 먹으로 칠하고 종이띠를 붙였다.

기자의 집에도 회상기가 수십 권 있었다. 그중 ‘보천보 전투’ 실화를 쓴 박금철을 비롯해서 이효순, 김창봉의 회상기가 많았다. 우리는 누가 숙청되었는지도 몰랐지만 당비서가 ‘종파’ 이름을 거명하며 찢어 버리면 그 사람이 숙청된 것으로 알게 되었다.

김정일, 회상기 김일성 우상화에 이용

1964년에 선전사업을 시작한 김정일은 “혁명전통을 계승한다고 하여 잡동사니를 다 계승할 수 없다”며 회상기를 모두 회수하도록 했다.

이유는 일부 빨치산 참가자들의 개인영웅주의가 선전되고, 김일성의 항일투쟁을 과장하는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었다.

동북항일연군 군단장으로 싸운 최용건, 김책 같은 사람들은 김일성에 비할 바 없는 전과를 쌓은 노장들이었다. 이런 사람들이 쓴 글을 본 주민들은 “김일성이 높으냐, 최용건이가 높으냐”를 따졌다. 이 때문에 김일성의 권위에 손상을 가져올 수 있었다. 또 회상기 필자들이 당시의 진실을 있는 그대로 쓴 글도 있어 김일성 우상화 자료와 어긋나기도 했다.

회상기가 회수된 후 70년대 당 역사연구실의 철저한 검토를 거쳐 오진우, 박성철, 임춘추, 서철, 오백룡 등 20인의 저서로 된 ‘인민의 자유와 해방을 위하여’, ‘붉은 햇발 아래 항일혁명 20년’이 나오게 되었고, 90년대에는 ‘김일성 회고록’이 이들을 대신했다.

따라서 이번에 ‘우리민족끼리’ 웹사이트에 등장한 새로(?) 나온 회상기는 읽지 않아도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한영진 기자(평양출신 2002년 입국) hyj@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