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외치는 사회를 바라며

편집자 주: 이 글은 서울 경동교회에서 운영하고 있는 탈북청소년 대안학교인 ‘똘배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있는 탈북청소년의 글이다. 이 글은 한국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부적응에 대한 심리치료를 위해 똘배학교에서 만든 탈북청소년 글 모음집에서 발췌한 것이다. 글 중에서 어색한 문장이나 한국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어휘는 기자의 교정을 통해 수정하였다.

언젠가 친구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한국에 오니까 좋아?” 한국에 온 지 몇 달 만에 이런 질문을 받은 나는 처음엔 대답하기가 좀 곤란했다. 잠시 생각하고 나서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오히려 되물었다. “좋다는 뜻이 뭐니?” 그러자 질문을 했던 친구가 “북한에서 살다가 남한에 오니 북한보다 안 좋아?”이러는 것이었다.

“난 사람들이 무엇을 기준으로 놓느냐에 따라 느끼는 감정이 다르다고 생각해. 물론 한국이 싫은데 오지는 않았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다 좋은 건 아니야. 경제적으로 따진다면야 한국이 살기 훨씬 편하고 좋은 곳이지. 하지만 내가 살던 곳에서 갑자기 주변 환경이 다른 곳으로 왔는데 정신적으로는 좋지는 않아. 이때까지 내가 살아온 곳의 생활방식이나 사고방식을 이 사회에서 완전히 지우고, 낮선 것들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막막하기만 하고 옛 생각이 자꾸 나지…… 그래서 그냥 ‘좋다’, ‘나쁘다’로 두 개 나라에 대해서 잘라 말할 수는 없어” 그 후로 나는 한국 사회에서 많은 낯선 것들과 대면하고 부딪히면서 이 사회를 한 마디로 ‘복잡하고 피곤한 사회’라고 단정해 버렸다.

사람들 간의 경쟁과 갈등이 끊이지 않고 ‘내가 살기 위해선 너를 밟고 일어서야한다’는 인식이 꽉 찬 사람들이 모인 지역사회였다. 그랬다. 이 사회에선 ‘우리’보다는 ‘나’라는 말이 더 많이 쓰이고 더 쉬웠다.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으로 예를 들자면, 내가 반에서 상위권에 들기 위해선 나보다 잘하는 애들과 경쟁하고 그 애들을 나보다 낮게 떨어뜨려야 했다. 반에서의 그런 경쟁이 전교에서의 경쟁으로 되고 나중엔 전국에서의 경쟁이 되었다. 그래야만 내가 좋은 대학에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사회는 학벌을 중요시하는 사회여서 배워야 살고, 알아야 살며, 더 많이 배우거나 아는 사람이 더 잘 살 수 있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경쟁하며 사는 것 같다.

아침에 전철역에 가면 수많은 사람들이 급하게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열심히 사는 사람들과 같이 어울려 살려면 나도 그래야겠다고 생각해 본다. 즉, 내가 이전에 교육받았던 것과는 달랐다. 그래서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차이를 확실하게 깨달은 것 같다.

요즘 한국사회의 또 하나의 문제점을 발견했다. 외모지상주의다. 예전엔 별로 들어보지도 못했던 얘기를 요즘은 자주 듣는다. 이건 고쳐야 할 한국사회의 문제점 중의 하나이다. 외모보다는 실력으로 승부하는 사회가 훨씬 바람직하다. 거리에 나가면 가장 눈에 많이 띄는 간판들 중의 몇몇이 성형외과나 피부과 등이다. 그리고 또 발견한 것은 노래방과 같이 오락을 즐기기 위한 여러 업소들이다. 북한에선 놀이기구나 오락실 같은 게 전혀 없었지만 자연과 어울려 지내는 재미가 있었다. 그래서 놀 것 없다, 심심하다는 말은 별로 안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요즘은 그냥 심심하고 할 것 없다고 생각하는 때가 많아졌다.

정치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한 마디 하고 싶은 건 정치인들이 너무 시끄럽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하는 정치가 과연 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매일 다투고 서로에 대해 깎아내리고…… 오죽하면 국민들이 세금이 아깝다는 말을 다 할까 생각한다.

그냥 평화로운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경쟁보다는 타협을 하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물론 이 사회에 비판할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감동 받았던 것은 ‘나’를 위해 사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이긴 하지만 사랑으로 ‘우리’를 외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다. 가난하거나 불행한 이들에게 사랑을 주는 모습에 마음이 따뜻해졌던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또 북한이 가난한 나라여서 그 나라에 여러 모로 도움을 준 일…… 그 나라에서 한국에 별로 고마움을 느끼지도 못하고 한국을 곱지 않은 눈으로 보는 것에도 불구하고 도와주고 있어서 너무나 고맙다. 이런 사회였구나. 별로 안 좋은 것들 속에서도 좋은 것들이 빛을 발하는 사회…… 그 좋지 않은 것들이 좋은 것들의 영향을 받아서 같이 좋아질 수 있으면 좋겠다.

이혜란(탈북청소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