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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쿠바의 ‘혁명영웅’ 체게바라를 만난 날

[4.15김일성④]사진으로 돌아보는 김일성 일대기
박은재 기자  |  2008-04-15 14:39
▲학생시절의 김일성. 북한에서 김일성의 생일인 4월 15일은 '태양절'이라는 큰 명절이다. 또 김일성이 태어난 1912년을 주체1년으로 부른다. 2008년은 주체97년이다.
김일성의 본명은 김성주(金成柱)이다. 1912년 4월 15일 평양시 외곽의 대동군에서 태어나 1925년 아버지를 따라 만주로 건너가 중학교를 다녔다. 1929년 좌파 학생운동에 가담하여 활동하다가 6개월간 감옥에 갇혔다. 1930년 석방된 뒤 김일성(金日成)이란 가명을 쓰기 시작했다.

1931년에는 중국공산당에 가입했으며, 1933년 이후 중국공산당 산하 동북항일연군의 일환으로 소규모 부대를 조직하여 빨치산 활동을 시작했다.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 경력은 사실이지만 지나치게 과대평가되어 있다. 김일성의 활동은 중국 본토와 만주에서 벌어진 다른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에 비해 사실 미미한 것이었다. 북한에서 김일성이 거둔 큰 승리라고 선전하는 ‘보천보전투’의 예를 보자.

<1937년 6월 4일 김일성이 이끄는 100명 남짓한 부대는 함경남도 보천보(普天堡)를 습격하였다. 당시 보천보에 일본군은 주둔하지 않았고 6~7명의 일본 경찰이 있었을 뿐이었다. 김일성의 부대는 보천보를 점령한 다음 면사무소와 소방서 등을 불태우고 한 시간 만에 철수했다.>

▲항일무장투쟁 당시의 김일성(각 사진 중앙)
보천보전투 사건으로 김일성은 조선총독부의 주요 수배자가 되고 이와 관련한 과장된 소문들이 생겨나게 됐다. (현재의 북한의 수령우상화는 여기서 발생한 과장된 소문들을 전설화시키고 신격화시키는 의도적인 가공의 과정들을 더한 결과물이다.) 김일성은 일본군의 추격을 받아 1941년 소련령 블라디보스토크로 피했다가 하바로프스크로 옮겨 그곳에서 전쟁이 끝날 때까지 소련군의 보호를 받았다.

▲평양군중대회에 등장한 33세의 김일성(왼쪽). 북조선로동당 창립대회에서의 김일성(오른쪽)
김일성은 1945년 9월 소련상선을 타고 원산항에 입항하고 같은 해 10월 14일 평양의 군중대회에 모습을 드러낸다. 1946년 2월에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수립을 선포하고, 같은 해 7월에 스탈린에 의해 북한의 지도자로 낙점받게 된다.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수립 선포식에 마르크스, 엥겔스의 초상화와 나란히 김일성의 초상화가 걸려있다.
1948년 9월 9일 김일성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수립한다. 직후 김일성은 남한을 무력으로 통일할 계획을 추진하게 된다. 그리고 1950년 6월 25일 남침을 감행하게 된다.

▲김일성은 1949년 모스크바를 방문해 스탈린에게 남침을 건의했다. 왼쪽 사진의 경우 앞줄 왼쪽 첫번째가 김일성. 오른쪽 사진은 6.25 전쟁 당시 중공군을 방문한 김일성(가운데)
휴전 후 김일성은 박헌영 등을 숙청하고 1인 지배체제를 굳혀간다. 그 후 1967년, 1969년의 숙청을 더 감행한 후에 유일 절대 권력을 획득한다. 1960년대 후반의 권력투쟁에서 동생 김영주와 장남 김정일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김일성의 우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게 된다. 1961년부터 부각된 주체사상은 60년대 후반에 와서 김일성의 절대권력을 뒷받침하는 도구로 변질되게 된다.

▲ 1959년 청진제강소에 현지지도 나간 김일성
▲1969년 12월 만경대닭공장(왼쪽 사진)과 1971년 2월 희천공작기계공장(오른쪽 사진)에서 현지지도중인 김일성.
김일성은 1958년부터 본격적으로 전개한 천리마운동을 사회주의 건설의 총노선으로 내걸고 사상교양과 대중동원 운동에 박차를 가했다. 그는 당이 군중 속으로 들어가 집체적으로 토의하고 결정하는 방식으로 이 운동에 불을 붙였다.

이에 따라 각종 기업소나 농장을 방문하는 현지지도를 활발히 시행하게 된다. 김일성은 사망 때까지 약 8천번, 1만 8천 단위를 현지지도했다.

▲1960년 12월 체게바라와 만난 김일성(왼쪽)과 1986년 3월 카스트로와의 만남(오른쪽)
김일성은 또한 활동한 대외정책을 펼쳤다. 김일성은 우선적으로 중국과 옛소련, 동유럽 등 사회주의권과 제3세계 비동맹권과의 교류에 치중했다. 미국, 일본 등 서방권과의 관계개선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김일성은 또 공산주의 동맹의 두 축이자 서로 사회주의 패권을 다투던 중국과 옛소련 사이에서 교묘한 줄타기를 했다.

▲ 김정일의 보고를 받고 있는 김일성
1974년 김일성의 장남인 김정일(현재 북한 국방위원장)이 내부 권력투쟁에서 승리해 후계자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이후 김정일이 주요 권력기관과 정보기관을 실질적으로 장악하여 후계자 자리를 확고히 굳혔으며, 1980년대 중반에는 김일성을 제치고 사실상 최고 권력자의 위치에 올라선다. 이 때부터 김일성은 사실상 외교적 국가원수의 역할만 담당하게 된다.

▲김일성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기념궁전 본궁
북한에서 신과 같이 존재하던 김일성은 1994년 82세의 나이로 사망하게 된다. 북한이 극심한 식량난을 겪으면서 대량 아사자를 내던 시기였다. 김일성의 시신은 영구보존처리되어 금수산 의사당에 안치된다. 김일성의 시신을 보존하고 금수산 의사당을 치장하는데에 무려 9억달러를 투입한다. 그 당시 굶어 죽어가던 대부분의 북한 주민을 먹여 살릴 수 있는 큰 돈이었다.

김일성 사후에도 김일성을 북한의 영원한 주석으로 우상화하는 작업은 계속되고 있고, 태양절(4월15일.김일성 생일)이 되면 북한 주민들은 충성심을 의심받지 않기 위해 또다시 눈물을 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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