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용소 수인들의 ‘희망찾기’…’숙녀와 수용소’








▲’숙녀와 수용소'(2012년作, 감독:이다)./’숙녀와 수용소’ 스틸컷


북한 정치범수용소 완전통제구역은 죽어서도 나갈 수 없는 곳으로 악명 높다. 때문에 수감자들은 인간적인 삶과 희망을 포기한 채 하루하루를 연명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어느 날, 짐승같이 살던 수감자들이 깨끗이 세면하고 말끔해진 모습에 서로를 못 알아보고, 버려진 담배도 피우지 않는다.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제2회 북한인권국제영화제에 출품된 ‘숙녀와 수용소’ 영화의 한 장면이다. ‘숙녀와 수용소’는 로맹가리의 소설 ‘하늘의 뿌리’의 에피소드를 일부 발췌, 각색한 작품으로 희망이 없는 상황에서도 믿음과 신념이 있다면 인간은 가혹한 현실을 이겨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영화는 또 “사람은 말이지, 믿는 대로 행동할 필요가 있어”라는 외침이 수용소 안에서 희망과 인간다움을 되찾게 한다는 메시지도 보낸다.


영화의 제목은 ‘숙녀와 수용소’지만, 실제 숙녀는 영화에서 단 한 차례도 등장하지 않는다. 수감자들의 인간성과 희망을 회복시키는 매개체로 등장할 뿐이다. 수감자들은 자신들의 공간에 ‘숙녀’가 있다고 가정하고 ▲단정하고 품위 있게 행동하기 ▲막사청소 철저히 하기 ▲방귀 뀌지 않기 등 숙녀를 배려하기 위한 규칙을 세운다. 이 과정에서 수감자들은 잃어 버렸던 자신들의 인간성과 희망을 되찾는다.


영화제작을 총지휘한 이다 감독은 데일리NK와 인터뷰에서 “정치범수용소에서 벌어지는 여성들에 대한 성폭행, 극심한 고문, 인권유린 등 선정적인 내용을 그리는 것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믿음으로 현실을 바꿀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면서 “북한 정치범수용소는 영화로 많은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매력적인 소재”라고 말했다.


이어 “영화 속에서 실체 없이 등장하는 ‘숙녀’는 수감자들로 하여금 보이지 않는 믿음과 신념을 다시 일깨워주는 역할을 하고, 역시 실체가 없이 등장하는 코끼리는 수감자들을 억압하는 수용소를 짓밟고, 현실을 극복하는 힘을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영화 속 배우들의 북한말도 상당히 자연스럽다. 출연 배우들은 6개월간 영화 ‘코리아’ 드라마 ‘더킹 투 하츠’ 등에서 북한말 감수를 맡았던 백경윤 씨에게 북한말 교육을 받았다. 이 감독은 백 씨를 무작정 찾아가 북한말 감수를 부탁했다.


이 감독은 “어설픈 사투리로는 북한 정치범 수용소의 실상을 제대로 보여주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다”면서 “무작정 찾아갔는데도 백경윤 씨는 시나리오만 보고 배우들의 북한말 교육을 시켜줬다”고 말했다.  


한편 제2회 북한인권국제영화제에서는 정치범수용소를 소재로 삼은 배우 차인표 씨 주연의 ‘알바트로스(1996년作)’도 함께 무료 상영된다. 알바트로스는 개봉당시 최초의 탈북 귀환 국군포로 조창호 중위의 탈출기를 극화한 영화로 주목 받았다. 특히 ‘알바트로스’는 정치범수용소의 실체가 잘 알려지지 않았던 90년대 후반에 제작됐지만 사실에 근접하게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영화의 주인공 조경민(차인표 분)은 대한민국 육군소위로 6·25전쟁에 참전했다가 북한 인민군에 체포된다. 이후 휴전협정이 체결되고 조경민은 포로 송환을 통해 귀향을 기대하지만 북한은 국군포로들을 송환하지 않은 채 북으로 끌고 간다. 조경민은 이에 두 차례 탈출을 시도하지만 모두 실패하고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되게 된다.


강제노동과 굶주림, 사상전환을 강요받는 집요한 괴롭힘에도 불구하고 조경민은 탈출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그러던 중 조경민은 두만강으로 통하는 지하 탈출구의 존재를 알게 되고 정치범 수용소 탈출을 감행한다.


영화 ‘숙녀와 수용소’는 21일 이화여대 후문에 위치한 ‘필름포럼’관에서 오후 1시와 오후 6시 40분 무료상영되며, ‘알바트로스’는 20일 오후 3시, 21일 오후 2시에 무료 상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