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신년사, 세상 변화 못 읽고 체제선전만 몰두”

북한의 2017년 신년사 발표가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북한에서 신년사는 1년간 당(黨)·군(軍)·정(政)이 추진해야 할 정책 노선과 방향을 제시하는 주요 지침이다. 김정은이 직접 ‘무엇을 하겠다’는 다짐은 없고 경제·사상·군사·과학기술·대외관계 등 부문별로 달성해야 할 과업만 제시하는 셈이다.

김정은 입장에서는 신년사 앞 부문을 주로 전년도 성과와 치적을 추켜세우는 데 할애한다는 점에서 체제 선전 효과도 기대해 볼 수 있다. 

물론 이후에는 ‘최고지도자의 방침’에 따라 신년사에서 제시한 국정목표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다. 북한은 올해 신년사에서 ‘핵 개발’ 언급 없이 ‘남북관계 개선’을 강조했지만, 정작 김정은은 신년사 발표 후 불과 5일 만에 4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또한 경제강국 건설과 인민생활 향상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웠지만, 연이은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로 국제사회의 제재에 직면하면서 되레 신년사로부터 역행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북한 주민들에게 신년사는 어떤 의미일까? 일단 북한에서 신년사는 한 해를 여는 중요한 ‘1호 행사’로, 주민들은 1월 1일 아침 일찍 회관이나 교양실에 모여 앉아 김정은이 신년사를 읽는 영상을 시청해야 한다.

전날 한 해를 마무리하며 가족들과 술 한 잔 기울일 법도 하지만, 대체로 아침 9시에 시작하는 신년사 시청을 위해 술은커녕 ‘경건한’ 마음으로 일찌감치 집을 나서야 한다는 것.

이후에는 약 한 달간 신년사 학습도 진행된다. 북한 당국이 주민들의 충성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신년사 암송을 지시하고, 전문을 암송한 사람을 ‘모범’으로 추켜세우며 선전하는 것이다. ‘신년사 관철’ 정신을 다지기 위한 각종 결의 모임 및 궐기대회도 한 달 가량 각 시·도 곳곳에서 진행된다. 그동안은 각종 구호와 선전물이 거리와 마을, 학교, 직장에 도배되다시피 한다는 게 탈북민들의 증언이다.

하지만 강제적인 신년사 시청 문화를 겪으며 당에 반감을 갖는 주민들도 많다는 게 탈북민들의 설명이다. 실질적인 민생 개선 방안은커녕, 거창한 수사로 가득한 신년사를 외우며 역으로 당의 무책임함에 비판 의식부터 갖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주민은 허리띠를 조여야 하는 상황에서도 전년도 성과를 늘 ‘승리와 영광의 해’였다고 평가하는 걸 보며, 김정은의 인민애 선전이 허울뿐이라고 인식하는 주민들도 늘고 있다고 한다.

평안북도 출신의 한 탈북민(54)은 30일 데일리NK에 “신년사에선 늘 ‘생산이 늘어나고 경제강국 건설의 전망을 열어놓는다’는 둥 거짓말을 늘어놓기 때문에 신년사의 가치는 날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신년사보다 더 귀 기울여 듣는 건 점쟁이의 말일 정도”라면서 “신년사를 새겨들을 바에는 차라리 장마당 환율 가격을 계산하는 게 더 이로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 탈북민은 이어 “매년 나오는 신년사를 보면 이전에 나왔던 내용과 거의 유사해 한 번 암송하면 다음해 신년사를 미리 외운 격이 된다”면서 “그만큼 신년사는 주민들의 변화하는 삶과는 동 떨어진 체제 선전 구호이자 이론일 뿐이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함경남도 출신의 다른 탈북민도 “김정은은 2012년 첫 신년사에서 인민들이 다시는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게 하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그 말을 누구도 믿지 않았다”면서 “그런 빈말이라면 누군들 못 하겠나. 신년사라 해놓고 매년 허황된 계획만 반복할 게 아니라, 실질적인 정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북한 신년사는 1946년 김일성이 ‘신년을 맞으며 전국 인민들에게 고함’이란 제목으로 시작해 1994년까지 매년 1월 1일 계속돼 왔다. 이 때까지 신년사는 통상 아침 9시경 시작해 약 40~50분간 진행됐다. 그러나 1994년 김일성 사망 후 김정일이 집권하면서는 단 한 번도 육성 신년사를 발표하지 않았으며, 이를 노동신문 등을 통한 ‘공동사설’로 대체해왔다. 북한 주민들이 도통 김정일의 육성을 들을 기회가 없었다는 얘기도 여기서 비롯된다.

이후 2012년 신년사는 김정은 집권 후 처음으로 발표되는 것이라 형식과 내용에 이목이 쏠렸으나, 이 해에도 김정은은 아버지 김정일 시대처럼 당보·군보·청년보 등 3개 신문에 공동사설을 싣는 것으로 신년사를 대신했다. 다만 2013년부터는 육성으로 신년사를 발표해, 4년째 계속돼 오고 있다.

김정은이 첫 신년사에 나섰을 당시 걸음걸이나 복장, 동작, 목소리 등이 할아버지 김일성과 매우 유사해 일찍이 이미지 정치에 나선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 바 있다. 다만 김정은은 2016년 신년사를 오후 12시 30분(평양시 12시)에 조선중앙TV 녹화방송으로 공개하는 등 매년 같은 시간에 신년사 발표에 나섰던 김일성과는 상이한 모습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