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서도 미투 운동?…”성폭행 피해자에 오히려 손가락질”

#1
어느 날, (보안서)감찰과 과장이 다른 사람들은 모두 일을 내보내더니 제게는 밥을 만들라고 시키더라고요. 사람들로부터 떼어놓은 것이죠. 저는 그저 ‘내가 오늘의 식사 당번이구나’ 하는 생각했는데, (사람들이 사라지자) 저를 다른 방에 가둬놓더군요. 그 후로는… 여자가 남자를 힘으로 이기려 해도 쉽지 않아요. 저도 어떻게 해서든 버티려 했지만 도저히 과장을 이길 수 없는 상황이었죠. 결국 그 자리에서 강간을 당했습니다.

– 2009년 북송된 김찬미 씨(국민통일방송, ‘라디오 北인권기록보존소’)

#2
양강도 보천군 보위부 정치부장 이창주 상좌는 마 씨의 안해(아내)를 조사하는 과정에 “내가 마음만 먹으면 너를 당장이라도 내보내 줄 수 있다. 내가 이렇게 도와주면 너는 나한데 머를 줄 수 있느냐”며 성상납을 강요했다. 위협과 회유로 수차례의 성폭행을 했고, 여성을 풀어준 다음에는 집으로 가서 성폭행을 하는 악랄한 행동을 보여줬다.

– 국가권력 기관 인권유린 실태 폭로(본지, ‘북한인권 내부고발’)

#3
2011년 1월 중순에 OO보안서로 넘어가서 한 달 정도 갇혀 있었습니다. 새까만 방에 한 10평 되는 방에 40명이 같이 있었는데 쪼그려 자고 그랬는데 때리거나 그런 건 없었습니다. 한 달 정도 그냥 앉혀놓는 거예요. 하루 종일 앉혀놓고 어떨 때는 계속 일 시키는데 일이 그렇게 강도 높진 않았습니다. (다만) 보안원들이 성추행하는 것이 있더라고요. 초보니까 문건 작성할 게 있다하고 나오라 해서 갔더니 문건작성을 이렇게 하면 될 거라면서 만지지 말아야 할 곳도 만지고 자기를 어떻게 하달라든지 안마해달라고 하든지 주물러 달라든지 그런 형태로 성추행 당했습니다. 나 말고도 다른 사람들한테도 그렇게 했었던 것 같아요. 말 들어보면 당한 이들이 많은 것 같아요. 한 달 정도 있었던 그 당시에 반복적으로 3, 4번은 그런 행동을 했어요.

– 양강도 출신 손 모 씨(북한인권정보센터(NKDB), 2017 북한인권백서)

북한 여성들은 강간, 성폭행, 성추행 및 성희롱 등 성적 폭행에 많이 노출돼 있다. 특히 구금 시설 및 정치범수용소, 단련대 등에서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는 성폭행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진다고 한다.

북한 형법에 강간죄(제279조) 및 폭행죄(275조)가 명시되어 있고 또 여성권리보장법 제46조에는 가정폭행에 대해서도 금지 및 보호조치를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법제도는 제대로 동작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법망을 교묘히 피해 비법적인 성폭력이 빈번하게 벌어지고, 이는 이 같은 법제도를 수호해야 할 관료들의 부정부패에 기인한다. 예를 들어 북한 여성들이 선호하는 직업, 배치 받고 싶어 하는 직장이 있는데, 당 간부나 직장 상사들은 이러한 여성들을 노려 허가를 미끼로 성적 대가를 요구하기도 한다.

또한 성 의식에 대한 교육의 부재도 주요한 원인으로 지적된다. 이에 대해 평안남도 출신 양 모 씨는 8일 데일리NK와의 통화에서 “여학생을 위한 실습시간이 있었는데 성(性)은 생리에 대한 부분만 다뤄지고 했었다”면서 “성에 대한 각성이 생길 수 없는 사회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한 번은 마을 잔치에서 13살 난 여자 아이의 봉긋 솟은 가슴을 주물러대는 성인 남성을 목격하기도 했다”면서 “부모까지 이 남성의 행동을 별로 문제 삼지 않는 등 전반적으로 성희롱 의식이 낮은 수준이다”고 덧붙였다.

은폐에 여념이 없는 사회 구조도 문제다. 직장 내 가까운 사이에 성폭행 사건이 발생해도 오히려 피해자가 말을 아끼는 경우가 많다. 소문나면 피해자가 오히려 손가락질의 대상이 되는 사회 풍토가 반영된 것이다. 때문에 보안서나 부모님에게 성폭행 사실을 밝히는 것을 꺼려한다.

북한에서는 성폭행, 성폭력이란 표현은 존재하지 않는다. 문란한 성관계는 ‘부화 사건’으로 부른다. 일반적으로 성폭행은 강간이나 윤간죄에만 해당한다. 성희롱은 폭력이나 범죄의 영역으로 보지도 않는다고 한다.

북한에서 성폭력 사건은 신문이나 방송에 일절 게재되지 않는다. 성폭력 문제가 제기되면 사회적으로 혼란스러운 것처럼 비춰지기 때문에 공개하길 꺼리는 셈이다. 북한에서는 미투 운동이 확산될 수 없는 이유다.

북한 당국의 안일함도 지적할 수 있다. 전술한 바와 같이 북한 내부에도 여성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법률적 제도나 입법조치는 마련돼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이 같은 제도들을 선전만 할 뿐 제대로 실행하지 않고 있다.

NKDB 북한 유엔권고이행감시기구 관계자는 “평안북도 신의부 보위부 구류장 예심원이 성폭행 상습범으로 확인되고 있다”면서 “한 탈북민은 ‘저항하니 더 흥분된다’는 말과 함께 성폭행을 당해 소장에게 이 사실을 고했는데, 그 후 모든 잡일이 다 본인에게 몰린다는 사실을 느낄 정도로 강압적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증언한 바 있다”고 말했다.

피해자 보호에 대한 법제도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아 적극적으로 문제 제기할 수 없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된다는 지적이다. 모든 법은 최고지도자(김정은)의 지시로만 개정될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가 이런 부조리를 지속 방치하는 데 일조하고 있는 셈이다.

탈북자들에 따르면, 과거엔 성폭행범을 사형에 처한 경우도 있었다. 1970년대 초 청진에서는 40여 명의 여성들을 성폭행했던 30대 남성이 공개 총살됐다는 것. 그러나 이후 성폭력범에 대한 강력한 처벌은 거의 없었다. 피해자가 신소(伸訴)를 제기하고 문제를 삼지 않으면 강력 범죄로 취급당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이처럼 공안 기관들은 성폭력을 심각한 문제로 여기지 않는 분위기다. 수사 당국은 성폭력을 은폐하려 하고, 주민들도 피해자에게 손가락질을 하기 때문에 애꿎은 여성과 아동들만 그 피해를 고스란히 안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북한에서 일어나고 있는 성 관련 범죄는 국가의 방임 아래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관리소(정치범 수용소) 등에서 이뤄지는 성 범죄는 북한 당국이 주민들에 대한 인권보호 책임을 저버리고 있다는 점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노동당의 지방과 중앙 기관들, 검찰소와 사법부가 여성 인권 침해를 수행하는 데 있어 크게 관여했다는 것이다.

때문에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국제사회가 주민 인권 보호책임을 이행할 의지가 없는 북한 당국에 대항해서 해당 사태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외부의 평가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김정은 체제의 속성을 적극 활용해서 변화를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북한 여성 인권 문제를 추적해온 한 전문가는 “김정일 시대 땐 인권조사가 북한 내부에 어떤 변화를 일으킬까 의문이 들었었는데, 김정은 시대 들어서면서 ‘인권 침해’라는 말이 사회에서 많이 돈다는 증언이 지속 나왔다”면서 “외부에서 문제를 지속 제기하는 게 중요하다는 점이 분명해지고 있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그는 이어 “지도원 등 가해자 이름이 포함된 정확한 정보를 축적하는 게 중요하다”면서 “외부에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을 알리게 된다면 사회 전반적으로 ‘인권’ 의식이 확산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sylee@uni-media.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