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밖 북한] 北을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

북한을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이 있다. 예를 들어, 여기 한 장의 사진이 있다. 언뜻 보면 화려한 네온사인이 건물마다 가득 드리워진 모습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사회주의제도 만세!>라는 선전구호에도 환하게 불을 밝혔다. 혹자는 이 모습을 보며 북한의 전기사정이 그리 열악한 수준은 아니라며 불야성을 이룬 밤 풍경을 자랑삼아 말하기도 한다.

북중 국경지역의 밤. /사진=강동완 동아대 교수 제공

여기 또 다른 한 장의 사진이 있다. 바로 똑같은 지역을 낮에 촬영한 모습이다. 밤에 보였던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무엇보다 밤에 휘황찬란 불을 밝혔던 곳은 바로 노동당 청사를 비롯한 공공건물과 선전화를 그린 대형그림판이다. 주민들이 사는 집(살림집)은 암흑천지로 불빛 하나 보이지 않는다. 북중 국경의 밤은 불야성이 아니라 북한 주민들의 아우성으로 채워지는 듯하다.

북중 국경지역의 낮. /사진=강동완 동아대 교수 제공

시간이 흐르면 그 모습이 달라질까? 앞서 본 모습과 달리 똑같은 지역을 다른 시기에 촬영한 모습을 보자. 이 모습은 불과 3일 전인 2019년 8월 29일에 촬영한 모습이다. 똑같은 건물의 낮과 밤을 담았다.

북중 국경지역의 낮과 밤. /사진=강동완 동아대 교수 제공
북중 국경지역의 낮과 밤. /사진=강동완 동아대 교수 제공
북중 국경지역의 낮과 밤. /사진=강동완 동아대 교수 제공
북중 국경지역의 낮과 밤. /사진=강동완 동아대 교수 제공

이 사진들의 공통점은 바로 선전을 위해 공공건물에만 불을 밝힌다는 점이다. 이 사진의 배경이 된 지역은 바로 북한에서 사회주의 지상낙원의 대표적인 사례로 선전하는 <3월 5일 청년광산> 마을이다. 1968년 3월 5일 김일성의 현지지도 때 직접 지시로 개발되었기 때문에 마을 이름도 <3월 5일 청년광산>이다. 김정일은 이곳을 “선군시대에 태어난 인민의 무릉도원이고 공산주의 선경이며 리상촌”이라고 불렀다. 김정은 시대에 들어서는 <조선속도로 세계를 앞서나가자>며 ‘조선속도’ 실현의 성과로 제시하는 곳이다. 북중접경 마을 중 가장 대표적인 선전마을이 바로 이곳이다.

북한 노동신문에 따르면 “이곳 주민들은 쌀, 물, 땔감, 전기 걱정이 영원히 사라졌고 남새(채소)와 과일은 이 마을의 처치곤란이라고 하니 얼마나 흐뭇한가”라며 선전한다. 새롭게 조성된 문화주택은 이 마을의 자랑거리다. 그런데 쌀, 물, 땔감, 전기 걱정 없이 살기 때문에 ‘우리나라 사회주의제도만세’를 외쳐야 한다니 참으로 기막힌 일이다.

우리는 북한을 보고 싶은 대로만 보려 하는 것은 아닐까. 평화경제라 이름 짓는 시대가 되다 보니 북한경제도 남한 경제와 너무 격차가 벌어지게 보여서는 안 되어일까? 북중접경 마을에 조금이라도 불빛이 보이면 북한경제가 나아진 증거라느니, 전기사정이 좋아진 결과라며 과장한다. 이 사진을 보면서도 북한의 산골마을에 밤에 불을 훤히 밝힐 만큼 전기사정이 좋고, 조선속도를 실현할 만큼 공장 가동율이 높다고 목소리를 높여댄다. 몰리브덴을 채굴하는 이 광산촌의 공장가동이 마치 북한 전체 공장의 원활한 가동이라도 되는 듯 과장한다.

필자 역시 북중접경 지역을 사진에 담으며 혹여나 왜곡된 모습으로 바라보지는 않을까 늘 노심초사한다. 사진은 사실을 담지만 진실이 아닐 수 있다는 말을 늘 가슴에 새긴다. 북중접경을 사진에 담으며 한 가지 약속은 눈에 보이는 사실 그대로의 모습을 결코 과장하거나 축소하지 않으려 한다는 점이다. 그게 최소한 북한을 연구한다는 학자의 양심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소한 한 달에 한 번은 꼭 이 지역을 답사하며 변화를 세심하게 살펴보려 한다.

압록강 2천리 북중접경 구간 중 <3월 5일 청년광산촌>과 같이 번듯하게 지어진 집과 마을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마치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고전 영화의 세트장 같은 너와집과 지붕을 엮어 만든 흙집이 대부분이다. 김일성과 김정일이 현지지도를 다녀간 선전마을 하나를 겉에서 흘려보며, 북한경제 상태를 평가하는 건 말 그대로 보고 싶어하는 북한만을 보기 때문은 아닐까? 압록강과 두만강 너머 보이는 북한 주민들의 일상과 삶, 그 황폐함과 고단함으로 점철된 사람들의 아픔이 정녕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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