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당국은 아직도 자신들이 ‘갑’이라고 생각하는가

한반도의 평화 분위기가 날로 무르익어 가고 있는 가운데 남북관계를 새롭게 정립하려는 한국정부의 의지와 노력에 북한 당국이 자꾸만 엇나가는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지난 2010년 북한 정찰총국의 주도하에 발생한 천안함 폭침 사건을 반박하고, 남북 간에 합의된 일정을 일방적으로 연기하는 등 한국정부를 무시하고 하대(下對)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지난 2일과 3일 <노동신문>은 “천안함은 미국과 보수정권의 조작 모략극”이라며 자신들의 소행임을 또 다시 부정했습니다. 특히 2일에는 한국 예술단이 특별 공연을 위해 평양을 방문 중에 있었는데, 통일전선부장인 김영철은 “남측에서 천안함 폭침 주범이라는 사람이 저 김영철입니다”라며 천안함 사건을 농담의 소재로 전락시켰고, 자신이 천안함 폭침의 주범이 아니라는 뉘앙스로 다시 한 번 한국인들의 마음에 상처를 줬습니다. 하지만 천안함 폭침 사건 당시 국제합동조사단의 조사 결과 북한 당국의 소행이라는 점이 명백히 드러났고, 지난 3일 미 국무부는 천안함이 북한 어뢰에 맞아 침몰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강조했습니다.
 
북한 당국은 한국과 이미 합의된 일정을 일방적으로 변경하는 행태로 한국 정부를 무시하는 일도 자주 드러내고 있습니다. 북한 당국은 지난 4일로 예정돼 있던 남북정상회담의 의전, 경호, 보도 실무회담을 전날 갑작스럽게 하루 늦추자고 한국 정부에 통보했습니다. 북측은 회담 연기의 이유에 대해선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습니다. 북한 당국의 이 같은 행태는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지난 1월 현송월 등 북한 예술단 사전점검단이 방한했을 때에도 하루 전에 일정을 갑자기 취소했었고, 2월에 열기로 했던 금강산 남북 합동 문화 공연도 북한 당국은 이유 설명 없이 일방적으로 취소했었습니다. 이번 한국 예술단 평양 공연 시간도 수차례나 변경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가다간 이번 달 27일로 예정돼 있는 남북정상회담이나 다음 달에 잡혀 있는 미북정상회담도 일방적으로 연기하거나 취소할지 모르는 노릇입니다.
 
북한 당국의 이런 행태는 남북관계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한 계산된 행동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한국과의 관계에서 자신들이 여전히 ‘갑’이고 한국은 ‘을’이라는 구도를 만들고 자신들의 뜻에 따라 남북관계를 끌어가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라는 것입니다. 북한 당국은 국제사회의 경제제재로 초래된 최악의 위기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남북관계 개선을 통한 돌파구 마련에 고심하고 있습니다. 북한 당국은 남북관계에서 주도권을 쥐고 경제제재의 해제와 경제지원을 끌어내려 한국에 대한 자신들의 우월적 지위를 과시하려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북한 당국의 계산은 역풍을 맞을 수도 있습니다. 한국정부나 미국정부는 김정은과의 정상회담을 북한 비핵화 문제에 한정해서 추진한다는 입장을 정해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4일 한국 청와대는 이번 정상회담 의제가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정착이며 남북경협은 이번 의제에서 제외된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북한 당국의 비핵화 의지가 확실하고 핵을 포기하기 위한 실천적 조치들이 뒤따를 때에야 비로소 남북경협이라든지 대북 경제지원을 생각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미국 정부는 여전히 의구심에 가득 찬 눈으로 북한 당국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과의 정상회담을 환영하고 기대하지만, 북한에 대한 최대의 압박과 제재는 계속 실행한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북한 당국의 비핵화 실천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북한 당국은 남북관계에서 우월한 지위를 차지하여 주도권을 쥐려는 얄팍한 계산을 하기 보다는 진정한 비핵화 의지로 국제사회를 설득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