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北, 17년 만에 ‘공채 발행’ 카드 꺼내나…자금난 심각한 듯

대북제재-코로나사태로 인한 외화난 극복 고육지책...소식통 "일부 기관과 돈주들 대상 한정"

2017년 4월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3기 5차 회의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 등이 당원증으로 표결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노동신문 캡처

북한 당국이 17년 만에 외화난을 극복하기 위한 목적으로 공채 발행을 계획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북제재와 코로나 사태 등 악재가 겹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공채 발행 카드를 꺼낸 것으로 보인다.

8일 데일리NK 북한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당국은 최근 고위급 간부들을 모아 놓고 공채 발행과 관련된 논의를 진행했다. 특히 지난 7일부터 화폐를 인쇄하는 상표인쇄공장(평안남도 평성시 배산동)에서 이전과는 다른 잉크색의 폐수가 방출되는 등 이상 징후도 포착됐다.

북한 당국이 공채를 발행키로 한 결정적 계기는 평양종합병원 등 국가대상 건설에 공급할 예산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재 수급에 필요한 자금을 제공할 수 없게 되자 채권을 발행하고 추후에 돈을 지급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북한은 지난 2003년에도 공채를 발행한 바 있다. 당시 북한은 2002년 7·1경제관리개선조치 이후 임금이 대폭 인상되면서 통화량이 급증하자 이를 다시 흡수하기 위해 공채를 발행했다.

2003년 북한이 발행한 공채는 일반적인 국채와는 다른 방식으로 운영됐다. 북한은 ‘인민생활공채’라는 이름으로 500원, 1000원, 5000원 세 종류의 10년 만기 채권을 발행해 일반 주민들에게 판매했다.

북한은 공채 매입을 독려하기 위해 채권에 복권의 성격을 결합해 1등에 당첨되면 액면가의 50배를 주는 상환 방식을 택했다. 또 100만 원 이상의 공채를 구매할 경우 ‘애국 표창장’을 수여하기도 했다. 사실상 공채를 주민들에게 반강제적으로 판매했다는 비판이 나온 이유다.

다만 지금은 약간 결이 다르다고 한다. 17년 전에는 팽창된 화폐량을 관리하려는 목적으로 공채를 발행했고 재원 확보라는 부수 효과를 노렸지만, 현재는 외화 흡수를 주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형태도 다소 차이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소식통은 “개인에게 공채를 강제로 사게 하는 과거 방식은 아니다”면서 “국가가 예산을 필요로 하는 기관에 공채를 발급하고 이 공채를 자재 생산 기업소에 현금 대신 지불하는 방식으로 운영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평양종합병원 건설을 주도하고 있는 8건설국이 시멘트를 확보하기 위해 내각의 계획위원회에 국가재정승인을 요청하면 당국이 재정지표를 제공한다. 이를 조선중앙은행에 가져가면 은행은 공채영수증을 발급하고, 이 공채영수증을 시멘트기업소에 현금 대신 지불한 후 자재를 가져가는 방식이다.

북한 중앙은행. /사진=서광 홈페이지 캡처

다만 발행된 공채의 60%는 이런 방식으로 국가 예산을 필요로 하는 기관에 발급하고 나머지 40%는 사업을 하는 개인에게 외화로 매입하게 한다는 계획이다. 주로 돈주라고 불리는 신흥부유층의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당국은 개인에게 공채 매입을 유도하기 위해 상업권허가증을 여러 형태로 발급할 것으로 알려졌다. 즉, 국가가 상업허가증을 주는 조건으로 돈주로 하여금 공채를 매입하게 하고, 공채를 대량으로 구매하거나 개인 사업에 필요한 자재를 달러로 산 사람들에게 일종의 ‘애국표창’과 같은 추천서를 발급할 예정이다.

북한 당국의 공채 발행은 국가 재정 지출을 채권으로 대신하고 동시에 부족한 외화를 흡수하겠다는 일거양득의 전략인 셈이다. 이번에 발행하는 공채 규모는 올해 예산의 약 60%인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돈주들이 당국의 이 같은 계획에 순순히 응할지는 미지수다. 당국이 추후에 원금조차 상환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공채 발행으로 인한 최대 피해자는 말단 기업소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소식통은 “종이 쪽지 한 장을 주고 생산물을 강탈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며 “자재를 생산하는 기업소의 재정난 악화가 우려되는 것은 물론 정상적인 소비유통이 멎을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이미 공채 발행 정보를 얻은 고위층들은 현화장사꾼(화폐상)을 통해 비밀리에 달러를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0일 예정된 최고인민회의에서 공채 발행이 공식화될 경우 달러 환율이 치솟을 것을 우려한 사전작업이라는 게 소식통의 얘기다.

2003년 당시 제10기 6차 최고인민회의에서 ‘여유화폐 자금을 효과적으로 동원 및 활용하기 위해 인민생활공채를 발행할 예정’이라며 공개적으로 결의한 바 있다. 그러나 이번엔 매입 대상자가 일반 주민이 아니라 일부 기업소와 부유층인 데다 외화로 판매할 계획이라는 점에서 최고인민회의에서 공개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다만 이번 회의에서 공채 발행으로 변경된 예산에 대한 결의가 포함될 것이라고 소식통은 관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