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북자 문제에 韓-日 따로 없어요”

▲ <납북자가족협의회> 최우영 회장

북-일 간에 가짜 유골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일본 납북자 관련 단체들이 대북제재를 요구하는 대규모 집회를 개최한다.

일본 납북자 단체들은 24일 도쿄 히비야 공회당에서 “고이즈미 수상의 (경제제재)결단을 요구하는 국민대집회”를 열고 대북 경제제재를 강력히 축구할 예정이다. 이번 집회에는 <납치피해자 가족연락회>(대표 요코타자)를 비롯해 3개 관련단체 주최로 시민 2천5백여 명이 참가할 예정이다.

지난해 12월 24일 일본 호소다 관방장관이 “북한 측이 신속하고 성의 있는 대응을 하지 않을 경우, 일본 정부로서 어려운 대응을 취하지 않을 수 없다”고 언급한 지 4개월이 돼 가는 시점. 여전히 북한이 성의 있는 대응을 하고 있지 않다고 판단, 관련 단체들은 제재 촉구 목소리를 높일 계획이다.

일본 납북자 국민대집회 참가, 한일연대 강화

이번 국민 대집회에 한국에서는 최우영 <납북자가족협의회> 대표와 <6.25 납북자 가족협의회(이사장 이미일)> 이성의 대변인이 참석할 예정이다. 최우영 대표는 지난 1999년부터 5년 동안 매년 이 집회에 참석, 한-일 납북자 단체 간의 연대를 강화해오고 있다.

23일 일본으로 출국 예정인 최 대표를 만나 활동계획을 들어봤다. 최우영(35세) 대표는 지난 87년 납북된 동진 27호 어로장 최종석 씨의 딸이다. 납북된 최종석 씨는 아직도 생사확인이 안 된 상태. 북한 당국은 최씨에게 간첩혐의를 씌워 일체의 신상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최근에 아버지에 관한 소식을 접한 것이 있는가.

전혀 없다. 여전히 생사도 알 수 없는 상태다. 같은 배에 탔던 선원 10명에 대해서는 신상이 알려졌다. 그러나 선장 이승근 씨와 아버님만은 생사확인을 해주지 않고 있다.
-아버지와 함께 납북됐던 ‘동진 27호’ 선원 임국재(54세) 씨가 지난 2월 구명 요청을 한 후 탈출을 시도하다 붙잡혀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런 사건을 접할 때마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

임국재 씨 사건, 정부 진상파악 나서야

▲ <납북자가족협의회> 최우영 회장

뭐라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심정이다. 무슨 말을 하겠는가. 임국재씨가 현재 곤경에 처했다면 우리 정부가 나서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정부는 구체적인 대안이 없다. 북한에 서신이라도 보내 생사확인이라도 정부가 해줬으면 좋겠다. 이런 것은 꼭 회담장이 아니어도 가능하지 않은가.

-24일 일본 납북자 관련 단체가 개최하는 ‘국민 대집회’에 주최측의 초청을 받아 참가할 예정으로 알고 있다. 일본에서 어떤 활동을 계획하고 있는가.

23일 출국할 예정이다. 그날 납치 피해 가족들과 만남을 갖고 일본 납치자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한∙일 공동 기자회견을 가질 계획이다. 우리는 일본 납북자 단체의 입장을 적극 지지할 생각이다. 다음날 ‘국민 대집회’에 참석한다. 그곳에서 납북자 문제 해결을 위한 한일연대 강화를 위해 연설이 예정돼 있다.

-어떤 내용으로 발언할 계획인가.

한∙일 양국 납치문제는 이제 세계적인 차원에서 북한인권문제로 자리를 잡아야 한다. 납치문제는 일본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한국인 문제도 함께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어떤 문제도 인권을 대신할 수 없다. 일본인 납치문제 해결을 위해서 한∙일 연대를 계속 강화해 나가자고 말할 생각이다. 지금 한-일 간의 문제가 매우 민감하지만 납치문제에 대해서는 협력구도를 강화해야 한다.

납북자 가족문제, 일본 국민 관심 크다

-지난 5년 동안 일본 납북자 관련 단체와 교류를 계속해온 것으로 안다. 일본 내에서 이 문제에 대한 관심과 참여는 어느 정도인가.

납치자 문제의 진실을 알게 된 일본 국민들의 반응은 대단하다. 일본에서는 납치자 가족들이 국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납치 피해자 가족들의 고통을 진심으로 어루만져 주고 있다. 자기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 이상 애정과 관심을 주고 있다고 본다.

일본 자민당 당사를 방문한 적이있는데 곳곳에 일본 납북자를 위한 모금함이 있었다. 플래카드도 걸려 있고 심지어 엘리베이터 내부에도 ‘납북자를 생각하자’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또한 일본인들은 납치자를 생각하자는 취지에서 ‘블루리본 달기 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고이즈미 일본 총리는 2004년 5월 22일 2차 방북에서 김정일 위원장과의 담판을 통해 북한이 납치한 자국민 5명을 직접 데리고 귀국했다. 우리 정부는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해 우회적으로 언급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고수, 일본과 대조를 보이고 있는데.

노무현 대통령이 북한에 대해 할 말은 하겠다고 해서 많은 기대를 하게 됐다. 인권변호사 출신이고, 대통령이 직접 납북자 가족들을 만난 적도 있다. 노 대통령이 약자를 위해서 살아온 만큼 기대가 있다. 납북자만한 약자가 어디 있는가. 과거에는 납북자 가족이라고 계속 감시 당하고 어디론가 끌려가서 고문까지 당했다. 그런 연장선에서 노 대통령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북한에)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다.

-2000년 9월 2일 비전향 장기수 63명이 판문점을 거쳐 북으로 송환됐다. 이들이 송환될 때 당시에 현장에서 ‘아버지도 남으로 송환해 달라’며 1인 시위를 벌였는데.

비전향 장기수 송환한 9월 2일을 ‘납북자의 날’로 지정해야

▲ <납북자가족협의회> 최우영 회장

6.15 정상회담 이후 석 달도 안 돼서 비전향 장기수는 북으로 송환됐다. 그렇다면 북한으로 강제로 끌려간 납북자들도 돌아와야 하는 것 아닌가. 그들을 보내면서 우리는 왜 돌려달라고 요구를 하지 못하는가. 올해로 비전향 장기수가 송환된 지 5년이 됐다. 비전향 장기수들이 송환된 9월 2일을 ‘납북자의 날’로 지정해야 한다.

-자국민 보호의무를 소홀히 하고, 납북자 문제를 이산가족에 포함시켜 해결하려는 국가를 상대로 2000년 2월 소송을 냈다가 패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항소계획은.

지난해 10월 판결이 났다. 판사가 ‘(정부가 북한에 납북자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것은)소탐대실의 우를 범하지 않는 고도의 정치적 고려이기 때문에 국가가 책임질 것이 없다’고 판결했다. 피해자 가족에 대한 연민이나 우려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자국민 수백 명이 북한에 억류되어 고통 당하고 있는데, 자국민을 상대로 소탐대실이란 말을 사용할 수가 있는가.

납북된 수백 명의 국민이 ‘소’(小)란 말인가. 마치 우리가 평화와 통일을 반대하는 사람처럼 묘사했다. 나는 당시 판결이 완전히 잘못되었다고 본다. 한 사람의 생명도 국가는 보호해야 한다. 그것이 국가의 의무이고 존재 이유다. 인권과 국민의 생명을 중요시 하는 현대사회의 흐름에 사법부가 정치권 눈치나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항소를 준비하고 있다.

정동영 장관, 납북자 문제 해결 적극 나서기로 약속

-지난해 11월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남북 당국자 간 회담에서 납북자 문제를 적극 제기하겠다고 발언했다. 정부에서 납북자 문제를 대하는 태도에 변화가 있었는가.

아직 진행된 것은 없다. 지금은 두 달에 한 번씩 통일부 담당 국장과 면담을 진행하고 있다. 당장 어떤 성과를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정부와 대화할 수 있는 통로가 일단 확보됐다는 것이 큰 진전이다. 가족들이 정부 당국자 바지를 붙잡고 하소연하고 있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 정부 정책에 반영될 수 있다는 기대를 가져본다.

-지금 관심을 갖고 하는 일은.

1970년대 초반 서해상에서 북한 경비정에 의해 납치됐던 휘영호와 오대양호 선원 등 납북어부 37명이 담긴 사진이 지난 2월 공개됐다. 74년 묘향산에서 단체로 찍은 사진이다. 이 분들이 북한에 계신다는 것이 확인된 만큼 이 분들의 송환을 위해 노력할 생각이다.

납북자를 위한 특별법 제정에도 나설 생각이다. 작년 국정감사에 납북자 관련 참고인으로 출석해 증언한 적이 있다. 그 자리에서 국회의원들이 이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초당적으로 협조하겠다는 약속도 해주었다. 그러나 특별법 통과는 여전히 안 되고 있다. 올해는 특별법 제정을 위해 노력하겠다.

한편, 올해 통일부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휴전 이후 납북자는 3,790 명이며 아직도 북한에 억류돼있는 숫자는 487명이다. 정부는 최근 김동식 목사를 납북자 명단에 포함시켰다. 일본 정부가 공식 발표한 납북자는 총 15명(북한 당국 13 명 주장)이다.

신주현 기자 shin@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