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고위급접촉 무산…대북전단이 문제였을까?

2차 남북 고위급접촉이 결국 무산됐다. 정부는 2일 통일부 대변인을 통해 “남북 고위급접촉이 사실상 무산된 것으로 본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표명했다. 정부가 같은날 통일부 대변인 성명에서 “소위 그들(북한)의 최고존엄만을 생각하는 비이성적 행태”라는 직설적인 표현으로 북한을 비판한 것으로 볼 때, 당분간 남북대화의 가능성을 접은 것으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이로써, 10월 4일 황병서 일행의 인천 방문으로 마련되는 듯 했던 남북 간 대화 분위기는 일단락됐다.


대북전단 살포가 문제였나?


고위급접촉이 무산되는 과정에서 표면적으로 드러난 충돌의 이유는 대북전단 살포 문제였다. 북한은 대북전단 살포를 중단시켜야 남북대화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고, 우리 정부는 민간단체의 활동을 정부가 법적으로 규제할 수 없다는 원칙을 견지했기 때문이다. 결정적인 파국의 계기가 된 1일 조평통 성명과 2일 통일부대변인 성명에서도 전단 문제는 남북이 충돌하는 핵심 이슈였다.


하지만, 한 가지 이상한 것이 있다. 남북 간 최대 현안이 돼 버린 듯한 대북전단 살포는 이미 10년 전부터 계속돼 온 사안이기 때문이다. 대북전단 살포가 최근 시작된 일도 아닌데, 갑자기 전단 문제가 최대 현안처럼 부각됐다면 전단 문제가 부각된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닐까?


대북전단 문제는 북한의 전반적인 대남전략 차원에서 봐야


일설에 의하면, 김정은 제1비서가 9월 추석 무렵 원산 지역 시찰을 나갔다가 전단을 직접 주워보고 격노해 대책 마련을 지시하면서 북한이 대북전단 문제에 목을 매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정부 측 관계자는 전단이 원산에 날아갔다는 날에 김정은은 원산에 있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 추석 무렵에는 북쪽으로 바람이 불지 않았기 때문에 전단을 날려보냈어도 북쪽으로 날아가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게 우리 정부 측 생각이다.


전단 문제는 사실 특정 사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기 보다는 북한의 전반적인 대남전략 차원에서 바라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박근혜 정부 들어 북한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5·24 대북제재 조치의 해제와 금강산관광 재개를 요구해 왔다. ‘한반도신뢰프로세스’를 주창한 박근혜 정부의 의중을 탐색하면서 실질적인 남북관계 개선의 첫 걸음으로 5·24 조치 해제와 금강산관광 재개를 상정했던 것이다.


하지만, 북한의 이러한 의도는 남한 정부에 의해 잘 수용되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는 남북 간 신뢰구축을 얘기하면서도 농업과 모자보건, 문화예술과 스포츠 교류 확대 등 작은 협력을 먼저 추구하고자 했고, 북한이 주장하는 5·24 조치 해제 같은 ‘근본문제’에 대한 명확한 답을 주지 않았다. 5·24 조치가 물론 천안함 문제에 대한 매듭 없이는 해제될 수 없는 것이라는 점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정부가 정말 5·24 조치를 해제할 의사가 있기는 있는 것인지에 대해 명확한 메시지가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북한식 논리로 보면, 남한 정부가 북한과 진정으로 관계개선을 할 의지가 있는 지 의문을 가질 법한 상황이었다.


北, 박근혜 정부의 ‘남북관계 개선’ 의지 탐색


북한은 지난 9월부터 대북전단 문제를 제기하면서 ‘상호 비방과 중상을 하지 않기로’ 한 올해초 남북 고위급접촉 합의를 들고 나왔다. 남북 간 합의는 당국간 비방중상 중지에 관한 것이었던 만큼, 북한이 민간단체의 전단살포를 고위급접촉 합의와 연계시킨 것은 다소 억지스러운 것이었지만, 북한이 전단살포를 매개로 남북간 합의 문제를 제기한 것은 남한 정부가 북한과 잘 해 볼 생각이 있는 것인 지 의중을 타진하는 성격을 담고 있었다.


황병서 일행의 전격적인 인천 방문에서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표출한 북한은 서해 NLL, 육상 군사분계선에서의 충돌과 연천에서의 고사총 사격 등을 통해 남북간 군사긴장 문제와 대북전단 살포 문제를 주요 현안으로 부각시켰다. 2차 고위급접촉이 예정된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북한과의 관계개선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냐를 타진하려 했던 의도로 보인다. 


하지만, 정부는 “5·24 조치도 남북 간에 논의할 수 있다”는 선 이상으로는 나가지 않았다. 정부 고위당국자도 기자들과 만나 “2차 고위급접촉이 열리게 되면, 남북 간에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주고 받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원론적인 말만을 반복했다. 전단살포를 제한하는 것이 우리 체제의 속성상 불가능한 것이라면, 북한에게 다른 부분에서 관계개선을 시도할 수 있다는 신호를 줬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다. 북한 입장에서는 당연히 2차 고위급접촉에 나온다고 해서 무엇을 얻어갈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을 가졌을 수밖에 없다.


정부, 보다 명확한 메시지 줘야 
  
북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남북만의 관계개선이 무한정 이뤄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정부가 지금과 같은 북핵 교착 상황에서도 남북관계 개선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어느 지점까지 남북관계를 개선시킬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목표를 설정하고 거기에 맞는 메시지를 적절히 북한에 표출해야 한다. 북한이 남한 정부의 의도를 종잡을 수 없게 하면서 ‘일단 만나서 얘기해보자’라는 식으로 문제를 풀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남북 간 협상은 아직은 ‘신뢰’보다는 ‘주고받기식’ 계산이 우선되는 상황임을 인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