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정권안보는 미국이 아니라 주민들의 손에 달렸다

지난 12일 싱가포르 센토사 섬의 카펠라 호텔에서는 역사상 처음으로 미북정상회담이 열렸습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체제안전 보장, 보다 정확하게는 김정은의 정권안보를 맞바꾸는 합의를 이뤄냈습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CVID, 즉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 원칙을 언급하지 않으며 김정은에게 많은 부분을 양보하는 대신 완전한 비핵화 약속을 받아냈습니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과 북한의 오랜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새로운 미-북 관계를 수립키로 노력한다는 내용을 공동성명에 포함시켜 북한의 체제안전에 대한 불안감을 불식시켜주려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김정은 정권의 안전 여부는 미국이 아니라 북한 주민들이 결정하는 것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약속은 그간 북한 당국이 줄기차게 요구해왔던 적대시 정책을 철회하겠다는 의미일 뿐입니다.

지난 2011년 10월 리비아의 최고지도자 카다피는 미국이 아니라 리비아 시민군의 손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카다피가 몰락한 이유는 핵을 포기해서 미국의 침공이 수월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이전 해인 2010년 12월 튀니지에서 시작돼 중동을 휩쓴 이른바 ‘아랍의 봄’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기 때문입니다. ‘아랍의 봄’은 튀니지뿐 아니라 이집트, 리비아 등에서 오랜 기간 철권통치를 펼쳐온 독재자들을 하야시키는 계기가 됐는데요. 이 물결의 영향으로 리비아에서도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카다피는 반정부 시위대를 무차별 진압했고 이 과정에서 200여 명이 사망하자 국민들이 무장 봉기를 시작하면서 사태는 내전으로 확산됐습니다. 이에 유엔 안보리는 2011년 3월 리비아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군사 개입을 승인하는 결의안 1973호를 만장일치로 통과시켰습니다. ‘국민보호 책임’이라는 국제규범에 따라 미국이 개입했지만, 카다피를 사살한 것은 미군이 아니라 리비아 국민들로 구성된 시민군이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카다피 정권의 운명을 결정한 것은 철권통치에 반대하여 일어선 리비아 국민들의 힘이었습니다. 김정은의 정권안보도 미국이 아니라 북한 주민들이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김정은과 북한 당국은 핵을 포기했기 때문에 체제안전이 무너졌다며 미국에 대해 비핵화의 대가로 확실한 체제보장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죠. 앞으로 북한 당국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미연합군사훈련의 중단과 주한미군의 철수까지 요구하며 그것을 미국의 체제안전 보장 노력으로 간주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주민들에게 직접적인 수혜가 되는 경제제재의 해제 약속은 이번 정상회담의 공동성명문에 담기지 않았습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밝혔듯이, 대북제재의 해제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이뤄진 다음에야 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김정은이 자신의 정권안보를 유지하려면 주민들의 인권개선과 실생활 향상을 통해 주민들의 마음을 먼저 얻어야 할 것입니다. 이번 미북정상회담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인권 문제에 관해 김정은에게 짧게 언급했고, 김정은도 “의지가 있다”고 밝혔다고 합니다. 이 얘기가 빈 말이 아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김정은은 이번 미북정상회담에서 ‘세계가 새로운 변화를 보게 될 것’이라고 장담했는데, 그와 같은 발언이 현실로 이어질 수 있도록 행동으로 보여줘야 할 것입니다. 안으로는 정치범 수용소를 모두 폐지하는 조치를 포함해서 인권을 혁명적으로 개선해야 하고, 밖으로는 미국과 약속한 완전한 비핵화를 반드시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미북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에게 실로 ‘담대한 양보’를 했습니다. 이젠 김정은이 그에 화답하여 과거와 결별한 새로운 북한을 보여줘야 할 것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약속한 북한의 밝은 미래는 북한의 근본적인 변화를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