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내부민심 “김정일, 해준 게 뭐있나?”

▲ 인민군 병원장 출신 탈북자가 일본방송과 인터뷰하고 있다 ⓒTBS

한국으로 망명을 신청한 노동당 과학간부 출신 탈북자가 최근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제는 사상적으로 많이 자유로워졌다. 이젠 폭발할 때도 됐다”라고 말했다.

이 탈북자는 과학기술계 망명자로는 북한 최고위급으로 알려졌다. 그는 “북한 주민들이 이제는 체제에 대한 비판을 공개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의사와 (노동당)간부조차 살기 위해 탈북을 결심할 정도여서 조만간 북한체제에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증언했다.

이 탈북자와 동행한 인민군 병원장 출신 여성 탈북자는 “북한의 폐쇄가 계속되면 미래가 없다”면서 “그렇지만 개방화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해 탈북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또 “약품이 인민들 손에 들어가는 것보다 의사들도 배가 고프니까 약품을 내다팔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두 명의 고위급 탈북자는 하나같이 북한체제에 희망이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탈북자들의 이러한 주장처럼 북한 체제는 머지 않아 몰락의 길로 가는 것일까?

북한 체제는 김일성 사망에 이어 수백만이 굶어 죽고도 무너지지 않았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북한 지도부는 대외적으로 내구력(耐久力)을 인정받는 듯했다. 북한 체제는 앞으로도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다시 북한의 앞날을 비관적으로 전망하는 시각이 늘고 있다. 90년대까지는 외부사회가 북한 권력체제의 문제를 들어 몰락을 예고했지만, 지금은 북한 내부에서 ‘세상이 변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달라진 점이다.

식량난을 거치면서 북한 사회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국가안전보위부나 인민보안성 같은 북한 정권기관은 과거와 같은 도덕적 권위와 위엄을 잃어버렸다. 이제는 주민들의 피골을 빼먹는 부패한 집단으로 낙인 찍혔다. 정권기관뿐이 아니다. 지금 북한 사회는 돈으로 안 되는 일이 없고, 돈 없이는 되는 일도 없다는 인식이 팽배해졌다.

중국 단둥(丹東)에 나와있는 북한 무역일꾼을 만나보면 “조선은 사회주의가 아니다. 돈으로 뭐든 하는데 그것이 무슨 사회주의냐”고 말하기도 한다. 돈만 있으면 교도소에 들어간 사람도 빼올 수 있다.

식량난이 몇 해가 가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한 전투는 일년 내내 계속된다. 지난해 10월 식량배급을 재개한다고 했다가 3개월도 되지 않아 중단되자 당국에 대한 불신만 더욱 커졌다. 북한 방송에서 ‘뭐가 잘된다’고 해도 주민들은 도대체 믿지를 않는다. ‘그딴 소리 말로만 하지 말고, 직접 눈으로 보여달라’고 한다는 것이다.

군인이 민가에서 식량을 훔쳐가는 일은 이제 일상이 됐다. 보이는 가축은 어떻게든 잡아먹고, 식량은 보이는 대로 약탈한다. 저항하면 가차 없이 폭력을 행사한다. 당 기관에 뇌물을 주고 대규모 토지를 개간한 화교의 농장을 인민군대가 지켜주기도 한다. 이들은 지켜준 대가로 쌀을 받는다. 인민군대가 화교의 용병이 된 셈이다.

최근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은 노동당원이 되려는 의지가 많이 약해졌다는 것이다. 기업소에서는 당원은 말이 많고 요구도 많다며 오히려 쓰기를 꺼려한다. 돈이 최고인데, 당원이 되려고 몇 년간 기를 쓸 이유가 없다고 한다. 당연히 당을 우습게 아는 풍조가 만연했다.

북한 사람들도 가장 불만이 큰 것이 식량과 함께 자식 교육문제다. 자신은 이렇게 살아도 자식은 교육받아서 잘돼야 하는데, 학교 보내기도 쉽지 않으니 말이다. 소학교 출석률이 70% 이하다. 자신들 보다는 자식들을 위해서도 하루 빨리 변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식만 보면 김정일에게 울화통이 터졌다고 한 탈북자는 말했다. 한민족의 자식사랑이 북한의 변화를 갈구하는 셈이다.

무엇보다 북한 내 분위기가 어수선한 것은 김정일에 대한 불만이다. 일제시대보다 살기 어려운 세상은 결국 김정일 때문이라고 가족 내에서는 공공연하게 말한다. 병원장 출신 고위급 탈북자는 “(김정일이) 한 게 뭐가 있나? 술 먹고 계집질한 것 밖에 더 있나?”라고 말했다.

북한 내에서도 잘 아는 사람끼리는 김정일을 비아냥거리는 일이 공공연하다. “인민들 굶을 때 쪽잠에 줴기밥 먹었다면서 배는 왜 그렇게 나왔나?” “맨날 기차만 타고 다니는 겁쟁이” “아버지보다 정치 못한다” “키높이 구두신고 파마(뽀글이)하고 다니는 게 일인가?” “왜 자꾸 자기 칭송하는 노래만 짓고 부르라는 건가”라고 불만을 터트린다고 한다.

김정일 타도 격문이나 삐라가 뿌려지고, 김일성 동상 파괴 시도도 있었다. 요새는 사회기강도 해이해져 소위 ‘말 반동’은 엄격하게 처벌하지 않고 있다. 탈북자는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외부정보는 늘어난다. 한국 드라마가 인기다. 젊은 층에서는 반체제 성향의 라디오 방송도 많이 청취한다. 뇌물이 만연해 통행이 자유로워지면서 반체제 조직의 전국화도 가능해졌다.

북한 사회의 흐름을 세밀하게 지켜보고 있는 한 화교는 “미국이 조이면 1년 일찍, 풀어주면 1년 더 늦게 올 뿐,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했다.

김정일은 소수 권력 엘리트와 보위부를 통한 감시, 군대를 통한 무력으로 정권을 연명하고 있다. 이처럼 갈 때까지 간 북한을 두고 우리 정부는 북한이 무너질 가능성도, 무너져서도 안 된다고 주장한다.

북한 내부의 변화는 중국도, 핵무기로도 막을 수 없다. 어느 누구도 북한의 붕괴 시점을 예상하기 어렵다. 그것은 전적으로 북한 주민에게 달려있다. 다만, 조짐이 조금씩 무르익어 가고 있다는 점은 분명한 것 같다.

신주현 기자 shin@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