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北노동자, 하루 20시간 중노동에 이빨 다 빠져”

러시아에 파견된 북한 건설 노동자들이 매달 북한 당국에 최대 1000달러(일명 계획금) 이상 바쳐야 하며, 계획금 마련을 위해 하루에 20시간 이상 중노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달 초 데일리NK 특별 취재팀의 현지 취재에 의하면, 북한 노동자들은 월급의 수배에 달하는 계획금을 매달 상납하기 위해 최소한의 수면 시간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중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해당 기업소의 지배인이나 간부들이 국가에 바치는 계획금이 일정한데도 불구하고 경기가 좋거나 노동자들이 일을 많이 할 경우 계획금을 고무줄처럼 늘려, 노동자들의 임금을 착취하고 있다는 것이 소식통들의 지적이다. 

현지 소식통들에 따르면, 현재 북한 건설 노동자들에게 지급되는 월급은 평균 300달러 내외에 불과하지만 매달 상납해야 할 계획금은 수백 달러에서 많게는 1000달러에 달한다. 때문에 노동자들은 계획금을 마련하기 위해 낮에는 조직적으로 파견된 건설 현장에서 일을 하고, 밤에는 조별 또는 개인별로 청부(請負)를 받아 집수리나 인테리어 일을 해야 한다. 노동자들은  계획금을 상납하고 남은 돈을 자신들이 가질 수 있기 때문에 하루에 20시간 이상 노동을 한다는 것.



▲이 달 초 러시아 우수리스크 지역 아파트 건설 현장서 포착한 북한 노동자 모습. 사진 속 건설 현장에서는 노동자들을 감시·감독하는 북한 측 관리자도 만날 수 있었다. 관리자는 ‘북한에서 왔냐’ ‘북한 노동자들이 (건물) 안에 있냐’는 질문 등에 부정하진 않았지만, ‘일 없다(괜찮다)’고만 말했다. / 사진=데일리NK 특별취재팀

이 달 초 취재진이 우수리스크 지역에서 접촉한 한 북한 건설 노동자는 “4월에 내야 했던 계획금이 무려 6만 루블(약 950달러)에 달해 미처 다 못 낸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이라면서 “이 때문에 2주 전부터는 직장일과 청부받은 일을 합해 하루 22시간씩 일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월급의 2, 3배에 달하는 계획금이 너무 많다고 생각해 본 적 없냐는 물음에 이 노동자는 “모르겠다. 당이 내라고 하면 내야 한다”며 말을 아꼈다.

이어 그는 “3년 전 처음으로 청부를 받아서라도 계획금을 채워오겠다고 했을 땐 무조건 2인 1조로 다니라고 했지만, 얼마 지나자 혼자 돌아다니며 러시아인들 집에서 일하고 와도 아무 제지를 안 하더라. 돈만 모아서 가져다 내면 된다”면서 “청부를 받기 위해 밤새 러시아어 책을 암송해 공부하고 벽 바르고 색칠하는 것도 익혀야 했다. 밤에도 일을 하려면 재주라도 있어야지, 할 줄 아는 게 없으면 빚(밀린 계획금)만 늘어난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해당 노동자를 소개시켜 준 현지 협조자는 “얼마 전 목격한 한 북한 노동자는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몸을 하도 혹사 당해서 치아가 거의 다 빠져 있었다”면서 “하루 20시간 이상 일하는 북한 노동자들에게 ‘그렇게 일 하다가 가족들에게 돈도 못 쥐어주고 죽을 수도 있다’고 이야기해줘도, 이들은 그저 밀린 계획금 갚아나가는 데만 혈안이 돼 있다. 그마저도 갚지 못하면 돈 한 푼 받지 못한 채 본국으로 송환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소식통에 의하면, 계획금은 북한 당국이 정해 지시를 내리지만 현지 간부들이 중간에 돈을 가로채기 때문에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가령 계획금이 1000달러라면 이중 500달러가 북한 당국에 송금되고 나머지는 기업소 간부들이 나눠 갖는다는 것이 소식통의 설명이다.

블라디보스토크 지역서 북한 노동자들과의 접촉이 잦은 한 소식통은 “상납해야 할 계획금 액수를 당(黨)에서 어느 정도 정해주기는 하나, 지배인들이 중간에서 가로채기 위해 더 크게 부풀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면서 “심지어 지배인들은 ‘머리가 길면 500루블’ ‘복장불량 500루블’ ‘난동 피우면 5000루블’ ‘청파지 입으면 1000루블’ 등 말도 안 되는 규칙을 만들어놓고 노동자들을 트집 잡아 돈을 뜯어내기도 한다”고 소개했다.

소식통은 또 “북한 노동자들은 계획금을 채워오라는 독촉에 잠도 못 잔 채 청부를 받아 야간작업에도 나가야 하는 실정인데, 이렇게 야간작업을 허가 받기 위해선 직장장이나 지배인들에게 뇌물을 바쳐야 한다”고 전했다.

그는 또 “당 간부들은 지배인들의 계획금 횡령을 눈치 채고 있지만, 지배인들이 돈을 빼돌린 뒤 그 중 일부를 당 간부에게도 뇌물로 쥐어주기 때문에 이런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라면서 “다단계 형태로 이뤄지는 부정부패 가운데서 결국 가장 밑에 있는 노동자들만 죽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 러시아 우수리스크 지역 아파트 건설 현장. 현지 관계자들에 따르면, 우수리스크와 블라디보스토크 등 북한과 인접한 러시아 지역 건설 현장 대부분에 북한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고 한다. 실제 취재진이 사전 정보 없이 찾아간 아파트 및 빌라 건설 현장에서도 북한 노동자들을 쉽게 목격할 수 있었다. / 사진=데일리NK 특별취재팀

월급의 대부분을 계획금으로 상납하느라 북한 노동자들이 수중에 쥘 수 있는 돈은 극히 적음에도 불구, 이마저도 제 날짜에 지급하지 않고 파견 기간이 끝날 때까지 체불하는 기업소도 상당수인 것으로 확인됐다. 노동자들에게 월급을 실제로 지급하는 대신 장부에 월급을 받았다는 서명만 하게 해놓고, 이들이 북한으로 돌아가기 직전까지 월급을 갖고 있다가 당 창건일이나 김일성 생일 등 각종 명분으로 돈을 가로채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 현지 소식통의 설명이다.

하바롭스크 지역서 접촉한 현지 선교사에 따르면, 실제 2년 전 모스크바에서는 파견 기간이 끝날 때까지 북한 노동자들의 월급을 대신 관리해주겠다고 약속한 지배인이 돈을 들고 사라지는 일이 있었다. 당시 금전적 피해를 입은 여섯 명의 북한 노동자들이 3년간의 노고가 한 순간에 사라지자 크게 분노, 북한 대표부를 찾아가 항의하자 이례적으로 이들에 대한 보상이 이뤄진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에 터졌다는 게 선교사의 증언이다. 체불됐던 월급을 받아 북한으로 돌아간 노동자 여섯 명이 러시아 현지서 북한 대표부를 향해 항의를 했다는 이유로 ‘난동죄’로 체포,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갔다는 것이다.

이 선교사는 “러시아 현지 곳곳에서 선교 활동을 돌며 많은 북한 노동자들을 만났는데, 신기하게도 이 사건을 모르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면서 “알고 보니 또 다른 집단행동이나 난동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해당 사건을 일부러 소문내 ‘불만을 품으면 정치범수용소 행’이라는 엄포를 놓은 것이다. 그러니 처참한 처우에도 반항도 못한 채 ‘아무도 원망하지 않는다’는 유서를 쓰고 분신자살하는 노동자까지 생기는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본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 지원을 받아 작성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