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 당국이 각 시(市)·군(郡)의 당 및 행정기관 지도원급 이상 간부들에게 지난 3년간의 부정부패 행적을 기록한 ‘자기비판서’를 제출하라는 지시를 하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조치는 당내 부정부패 척결을 위한 간부 자기검열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12일 데일리NK 함경북도 소식통에 따르면 함경북도 당위원회는 이달 초 도내 시·군 당 및 행정기관 간부들에게 직권 남용과 부도덕한 행위가 상세히 기록된 20장 분량의 자기비판서를 제출할 것을 지시했다.
도당은 비판서를 작성할 때 ▲금품 및 고급 주류, 수입 식료품 등 뇌물 수수 여부 ▲공금 유용 및 횡령 ▲기업소나 농장 및 장마당 책임자로부터 사적 접대나 연회를 제공받은 사실▲성 접대 등 비도덕적인 행위 등 내용을 구체적으로 서술하라고 주문했다는 전언이다.
그러면서 추후에 스스로 밝히지 않은 비리가 적발될 경우 가중 처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간부들은 자신의 비리를 솔직하게 다 밝힐 수도, 밝히지 않을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에 놓였다고 한다.
소식통은 “이전에는 비판서를 쓸 때 당의 유일적 영도 체계 확립 10대 원칙과 당 규약 등을 자세히 쓰고 자기비판 부분은 두루뭉술하게 작성해 대충 넘어가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분량도 5장 정도 쓰면 최고로 많이 쓴 것이었는데, 이번엔 건별로 세세히 쓸 것을 요구하고 있고 또 20장이나 써야 해서 간부들이 고민에 빠졌다”고 말했다.
북한에서 당이나 행정기관, 사법기관에 검열이 내려오면 해당 간부들은 기본적으로 5~6장 분량의 자기비판서를 작성하는데, 이는 일반적인 일로 간주된다. 그래서 북한 간부들에게 자기비판서 작성 자체는 의례적인 절차로 인식되지만, 이번처럼 분량도 많고 어떤 내용을 담으라고 일일이 짚어주는 경우는 드물다는 게 소식통의 설명이다.
소식통은 “기존에는 자기비판서를 쓸 때 문제가 될 꼬투리를 잡히지 않으려고 명백한 증거가 들어가는 내용은 쓰지 않았다”며 “위에서 솔직히 털어놔야 손해가 없다고 아무리 감언이설로 어르고 달래도 작은 흔적이라도 남기면 나중에 문제가 될 게 뻔해 비판서를 형식적으로 작성했는데, 이번에는 세부 항목을 제시하니 간부들이 빠져나갈 여지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간부들이 자기비판서를 20장씩이나 써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주민들은 ‘올라갈 데도 없고 내려갈 데도 없는 노동자가 상팔자’라는 말까지 하고 있다”고 전했다.
간부들이 작성한 자기비판서는 시·군당이 일차적으로 검토한 뒤 중대한 비리가 확인될 경우 도당이 이를 직접 조사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30차 비서국 확대회의에서 남포시 온천군과 자강도 우시군 간부들의 부정부패 행위를 강하게 질타하며 “당이 제일 경멸하는 당내 부패와 온갖 규율 위반 행위들을 주동적으로, 적극적으로 제압하는데 규율 조사 부문에서 기본 과녁을 정하고 엄격한 규정과 세칙에 근거해 ‘저격전’·’추격전’·’수색전’·’소탕전’을 강력히 전개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 때문에 자기비판서 작성으로 시작된 이번 간부 자기검열이 대규모 숙청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