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종합병원에 중국산(産) 의료설비를 들여오려 했던 북한 대외경제성 간부가 최근 처형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산 의료 설비를 설치하려 했던 당(黨)의 계획이 내각 실무자에 의해 변경되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격노한 후 관련자 처벌이 이뤄졌다는 전언이다.
23일 데일리NK 고위 소식통에 따르면, 지난달 말 평양종합병원에 설치하기 위한 수입 의료 장비 및 기구에 대한 준비 상황을 담은 제의서가 김 위원장에게 보고됐다.
제의서에는 4월 하순경부터 중국산 의료 설비 수입이 시작될 예정이며 이에 따라 올해 안에 준공 및 개원을 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고 한다.
평양종합병원에 독일 등 유럽에서 생산된 최상급 의료설비를 설치하라고 지시했던 김 위원장은 중국산 설비를 들여오겠다는 계획을 확인한 후 그 자리에서 크게 격분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에서 유학했던 김 위원장은 의료설비는 유럽산이 최상급이라는 생각을 품고 있고, 이를 위해 당에서 적지 않은 예산을 편성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평양종합병원 의료설비 구입을 위해 책정한 예산이 정확히 얼마였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유럽산 기기를 구매해서 운송하는 비용으로 충분한 금액은 아니었다는 게 소식통의 설명이다.
실무 부서인 대외경제성 수출입국과 보건성 등에서도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유럽산 의료 설비를 들여오기 위해 현지에 나가 있는 외무성 일꾼들을 통해 설비를 수입하기 위한 방안을 백방으로 모색했다고 한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인해 유럽에서 중국이나 아시아 제3국으로 설비를 운송하는 일도 쉽지 않은 데다 대북 제재로 인해 이를 북한으로 들여오는 방법을 찾는 것이 녹록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더욱이 지난해 10월 10일(당 창건일)까지 7개월여 만에 최고의 병원을 건립하겠다는 김 위원장의 공언과 달리 설비 부족으로 준공이 지연되자 하루라도 빨리 설비를 마련하라는 당국의 채근도 지속됐다고 한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실무진들은 저렴한 가격에 복잡한 절차 없이 들여올 수 있는 중국산 의료설비를 알아보기 시작했고 마침 중국 측에서도 북측이 제시한 조건에 맞춰 기기를 제공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여와 서둘러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는 김 위원장의 비준을 받기 전 실무진 선에서 중국 측 설비를 수입하기로 계약을 끝냈다는 것이었다.
소식통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만년부강 보건사업을 뗌때기(임시방편) 식으로 한다는 것은 일군(일꾼)으로서의 자격이 없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이라며 관련자들을 심하게 질책했다.
이후 대외경제성에서 수출입 업무를 담당하는 50대 초반의 부국장이 처형당했고, 보건성의 부장급 간부도 해임됐다.
일각에서는 이들보다 윗선이라고 할 수 있는 당 고위 간부가 중국산 의료설비 수입을 용인했지만 중간급 실무진이 모든 책임을 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가운데 ‘보건 사업은 원수님(김 위원장)의 인민들에 대한 당의 정책과 로선(노선)’ 문제라며 ‘사회주의 보건제도의 존립과 발전을 위해 해당 부문 일군들의 안일한 의식과 태도를 뿌리 뽑아야 한다’는 내용의 통보자료가 대외경제성과 보건성, 외무성 등에 하달됐다.
이 같은 통보문은 어떤 결정을 하든 당의 지시대로 따라야 한다는 점을 간부들에게 정치적으로 교양하기 위한 목적으로 해석된다.
한편, 향후 평양종합병원 의료 설비 반입 사업도 빠르게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당에서는 이미 중국 측과 설비 계약이 끝난 상황이기 때문에 일단 중국산 의료설비를 들여온다는 계획이다.
다만 김 위원장이 최소한의 병상이라도 유럽산 의료설비를 설치할 것을 지시해 외무성 및 대외무역성에서 유럽 의료장비를 들여오는 방안을 찾고 있다.
소식통은 “올해에는 무조건 평양종합병원 개원을 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면서 “잠시 우선 순위가 뒤로 밀린 것으로 보였으나 다시 우선적으로 지원이 이뤄지는 분위기”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