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포커스] 北노동자 이동과 3차 북미회담의 조건

지난 2월 중국 랴오닝성 단둥 해관(세관)을 막 빠져나온 북한 여성들. /사진=데일리NK

김일성 생일(4월 15일)을 전후로 북중 접경지역에서 북한 사람들은 보기 힘들다. 올해도 예년과 다름없이, 4월 10일을 기점으로 많은 북한 주민들이 채비를 하며 다음을 기약하는 이야기가 많이 들려왔다.

하노이회담(2019.02.28.) 당시만 하더라도 기대에 찬 그들의 목소리는 마치 새로운 북한의 시작을 알리는 축포와 같아 보였다. 그러나 김정은 위원장이 평양으로 되돌아간 후, 북중 접경지역의 통제를 강화한 분위기가 감지됐다. 이는 중국이나 러시아의 독자적인 국내 정치적 상황의 탓도 있지만, 북한과의 관계도 염두에 둔 듯 보인다. 현지에 북한 주민들의 행동 변화까지 감지됐던 것이다.

접경지역에서의 통제 강화 분위기는 행정처리를 비롯한 많은 업무 중단을 왕왕 발생시킨다. 외국인 입장에서 보면 피곤한 지루함인 셈이다. 필자는 이러한 피곤한 지루함을 잠시 벗어나고자 오히려 중국과 러시아의 접경지역 탐방길에 올랐다.

흔히 접경지역이라고 하면 중국과 북한의 접경지역을 떠오르지만, 러시아 접경지역에서 만나는 역사의 흔적은 또 다른 반가움이다. 이번 여행의 목적지인 우수리스크(Ussuriysk)로 향하는 버스 안에는 고려인과 조선족으로 보이는 사람들, 그리고 한국인 몇 명이 보였다. 중국과 러시아 해관(세관)으로 가는 버스 오른쪽은 두만강이, 왼쪽에는 중국과 러시아의 경계인 쏭화강(松花江)이 말없이 흐르고 있었다. 두만강 건너에 보이는 무산시와 쏭화강 건너에 이름 모를 러시아 도시는 필자에게 시공을 나누는 기분 좋은 착각을 주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북한의 경계가 강을 기점으로 나누고 있다는 것이었다. 또한, 토지의 경계를 알리는 철도망도 언제 세워졌는지도 모를 만큼 낡고 녹슨 모습이었다. 족히 50년은 넘어 보였다. 강은 퇴적과 침식을 통해 강길과 물살이 달라져 국경을 나누기는 적절하지 않음에도 아직까지 중국, 러시아, 북한은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관습에 익숙해진 걸까. 잠시 생각해 보았다.

두만강 너머 함경북도 무산 광산은 오늘도 하얀 연기를 뿜으며 그 위용을 초가지붕 위 연기처럼 날려 보냈다. 알 듯 모를 듯한 세 나라의 연대의식에 대한 생각과 여정의 지루함은 휴게소 음식의 만족감으로 인해 한 번에 날려버릴 수 있었다. 우수리스크에는 안중근에게 총을 구입할 비용을 지원한 최재형의 고택이 있으며, 발해시대 우리 조상이 만들었다는 거북이과 이상설유허비가 있다. 최재형 고택은 러시아 청년의 안내로 들어갈 수 있었고, 발해시대 거북상은 ‘금나라 거북상’으로 둔갑하여 또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인간의 이동은 구지 거창한 미사어구로 표현하지 않아도 될 만큼 다양하다. 이사, 이민, 유학, 취업, 그리고 탈출… 때로는 난민으로, 때로는 불법 이탈자라는 이름으로 불리지만 결국 생존과 희망을 쫓아 움직인다. 지난 25일과 26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비행기로 1시간가량 떨어진 사할린에는 북한의 건설노동자들이 많이 파견되어있다. 그들은 대개 3년 만기 90일 비자를 소지하고 있기 때문에 필자가 이용한 중-러 간 운행하는 버스는 그들의 비자갱신 수단으로 활용되곤 한다. 그들은 90일마다 변화하는 사람들의 모습, 간판의 글씨와 타인의 행세에 집중하며, 한국은 어떠한지 상상해 보는 듯하다. ‘한국의 한 달 월급은 얼마인지’, ‘정말 살기 힘든 곳인지’ 등 필자가 만난 북한의 건설 노동자들의에 대한 질문에도 한국에 대한 친근감이 묻어있다.

인간은 왜 이동하는 것일까? 근원적인 질문에는 우문이라고 느낄 만큼 뻔하거나 혹은 아주 다양한 이유가 존재한다. 학술적으로 풀어보면, ‘인간의 이동’은 정치적 유인과 경제적 유인이 존재하나 요즘은 정치적 동인이 경제적 동인을 유인한다는 데 전반적인 공감을 얻고 있다. 정치적 유인은 경제적 니즈(Needs)를 발생시켜 이동을 촉진하는데, 경제적 유인만으로 나타나는 이동의 현상은 정착이라는 목표가 아니라는 점에서 가변성이 상대적으로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북한 노동자들은 1970년대 우리가 그러했듯이, 파견국인 러시아입장에서 버릴 수 없는 경제유인책이다. 근면하고 저렴한 인건비와 더불어 자체 내 노동자들을 교육시키고 관리하여 중국인 노동자들의 생활문화적 특성에 의한 중국-러시아 간 영토문제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러시아, 중국과의 이데올리기적 연대만으로 기대하기 힘든 외교 수단을 활용한 김정은 위원장은 3차 북미회담에서 발생할지도 모를 미국의 영향력을 1/2에서 1/6로 축소시켰으며, 3차 북미정상회담이 양자 간의 회담이 아니라, 6자 회담 혹은 더 넓은 협상대상을 늘릴 수 있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한 것으로 필자는 판단하고 있다.

러시아 내 건설노동자들의 비자 연장 문제에서부터 노동자 규모 조정 등 경제적 유인을 동원하여 정치적 유인으로 인한 인구의 이동을 확대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어차피 미국과 중국 간의 무역협상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중국에서의 북한 이슈는 관리하는 대상 정도이기 때문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북한을 중국과 러시아와 수평적인 관계를 수립하여 경제적 동반자 관계를 구축한 반면, 미국-일본-한국은 수평적인 관계가 완성되었다고 보기 힘든 면이 있다. 미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과의 관계는 부문별 수직적 관계가 구축되어 회담에 대한 의제 교환 혹은 조율이 수평적으로 이루어지기 어려운 면이 있다. 수평적 특징을 가진 조직이 수직적 특징을 가진 상대와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업무별 분업이 조직화되어 있어야하며, 의제의 최종 목적이 구체적이고 현실가능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하노이 회담에서 미국의 수사에는 비핵화 협상을 위한 준비 혹은 자료가 충분하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하노이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빈손으로 갔지만, 트럼프 대통령 역시 김정은 위원장에게 던질 카드 한 장을 잃었다. 결국 상당기간 북미 간 비핵화회담은 모호하고 상이한 목적의 상정과 이에 대한 실행방안의 접점의 난제로 지루한 여정을 견뎌내야 할 것이다.

따라서 3차 북미정상회담은 6자회담 접근의 활용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한다. 수평적이고 이데올로기적 연대감이 주는 수평적인 조직을 상대하기에 수직적 조직은 회담방식과 회담의 깊이에 대해 미리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따라서 이러한 구조적 모순은 결국 촉매역할을 누가 담당하느냐에 따라 훗날 동아시아에서의 패권의 주인이 판가름 날 것이다. 결국 경제적 유인을 통해 정치적 유인을 자극하는 방식은 정치와 경제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고, 회담을 난항으로 이끄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3차 북미회담은 ‘비핵화와 비핵화 과정의 정의’와 ‘비핵화 대가에 대한 보증’이 구체화되어야할 것이므로 협상을 위한 관계의 방향을 재정비하여 회담에 대한 막연한 희망어린 기대를 경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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