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내부 인권유린 행위 기록 법안 추진

▲ 동독에서 서독으로 건너가다 숨진 이들을
기리기 위한 십자가

한나라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북한인권법안’이 준비 중이다. 그 중 김문수 의원이 대표발의할 것으로 알려진 ‘북한주민의 인권개선에 관한 법률안’에는 ‘북한인권 기록보관소’(10조)를 신설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이 법안의 10조 1항에는 ‘북한 내에서 인권유린사례를 체계적으로 수집, 보관하기 위하여 통일부 산하에 북한인권 기록보관소를 둔다’고 명시하고 있다. 2항에는 ‘북한인권 기록보관소에 등록될 자료는 정보당국이 지금까지 수집한 북한의 인권유린사례관련 정보, 민간단체들이 수집한 정보, 그리고 탈북자들의 증언 등을 토대로 한다’고 되어 있다.

‘북한인권 기록보관소’는 옛 서독의 ‘중앙범죄기록소’를 모델로 한 것이다. ‘북한인권 기록보관소’는 한국판 ‘중앙범죄기록소’인 셈이다.

서독 ‘중앙범죄기록소’ 설치, 동독에는 ‘공포’

1961년 8월 동독에 의해 일방적으로 베를린 장벽이 설치된 후 국경 수비대에 의해 최초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이에 대응해 서독은 그해 11월 동독 접경 지역인 니더작센州 잘츠기터(Salzgitter)에 법무부 산하로 ‘중앙범죄기록소’를 설치했다.

기록소는 동독이 저지르는 정치적 폭행사례의 증거를 수집하고 기록의 보관을 담당했다. 이는 비록 당장은 동독에 효력을 미치지 못하더라도 통일이 되었을 때, 관련자들을 기소하거나 처벌하기 하기 위한 ‘근거자료’를 확보하기 위함이다.

실제로 이 자료는 통일 후 구동독 체제 청산, 인권유린자들에 대한 형사 처벌의 근거,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의 근거로 활용되었다.

독일 통일 후 중앙범죄기록소에 의해 확인된 희생자수는 916명(1997년 최종)에 이른다. 30여 년 동안 동독이 저지른 약 42,000건의 살인ㆍ불법 구금 등의 범죄 자료가 기록으로 남았다. 기록소는 독일 통일 후 1991년 ‘잘츠기터 보고서’란 제목으로 자료집도 발간했다.

기록소의 탄생은 단순히 사후 처벌의 효과만을 가져온 것은 아니다. 통일 이전에도 충분히 실효성을 가졌다. 이는 무언(無言)의 경고를 통해 동독 정권이 가급적 인권 침해를 자제토록 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중앙범죄기록소’ 긍정적 효과 증명

서독에서의 기록소가 분단 상태에서는 동독의 인권침해를 억제하는데 기여했고, 통일 이후에는 구동독 체제 청산인 ‘역사바로세우기’를 제대로 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데 일등공신의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관련 기록의 수집 통로는 다양했다. 돈을 지불하고 직접 인도 받은 정치범, 동독 탈출자, 동독 방문 서독인, 동독의 신문 방송 등에 보도되는 사건 등을 통해 인권 침해 사례를 모았다. 인권침해를 당한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 묻는 질문서에는 가해자의 성명, 주소, 연령, 인상착의 등을 자세하게 기록하는 난이 포함돼 있었다.

기록소의 한 예로, 마지막으로 베를린 장벽을 넘다 총격을 받은 동독 주민 크리스 귀프로이와 가우디안이 있었다. 총격으로 귀프로이는 사망하고 가우디안은 중상을 입고 체포되었다. 서독 정부는 가우디안을 위해 보석금을 지급한 후 서베를린으로 신병을 인도받았다.

통일 후 베를린 지방검찰청은 귀프로이와 가우디안을 사격한 병사를 기소하였다. 재판결과 한명은 무죄, 다른 한명은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통일 이후라도 기록소가 존재 하지 않았더라면 이들을 기소조차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러한 기록소가 동독 정부에게 반가울리 없었다. 동독은 기록소 존재 자체를 ‘내정간섭’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이 기회가 되면 우리의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했던 것처럼 동독은 기록소의 폐지를 요구했다. 하지만 서독은 이에 굴하지 않았다.

동독 정부에게 기록소 존재 그 자체가 ‘공포’였다. 호네커는 기록소 관계자들에게 형사적 처벌을 물어 10년 징역형을 내리겠다는 엄포를 놓기도 했다. 동독은 1980년대에 들어 기록소 해체를 더욱 노골화 하였고, 이에 사민당(SPD)은 1984년 기록소 해체를 요구하는 안건을 의회에 제출했다. 연방정부와 기사당(CDU)이 이를 부결시킨 일도 있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모르쇠 일관

대한민국 정부는 북한을 자극하고 현재의 남북관계를 저해한다는 이유로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해 언급을 회피하고 있다. 지난 3월에 있었던 북한 회령에서의 공개처형 동영상에 대해서도 우리 정부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북한의 인권 유린 실태에 대해서는 1990년대 후반부터 탈북자가 늘어나면서 그 증언이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다. 과거 베일에 감추어져 있던 정치범 수용소 실체가 바로 대표적 예이다.

더불어 정부는 지난 4월에 있었던 UN 인권위원회에서 3년 연속 결의된 ‘북한인권결의안’에 기권했다.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해온 정부 여당이 북한 내부에서 일어나는 범죄행위를 기록하는 것에 찬성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박상봉 독일 통일 정보연구소장은 “‘북한인권 기록보관소’의 신설로 범죄행위를 문서로 기록하면 범법 행위자는 심리적 압박감을 받게 된다”면서 “공개처형도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이어 “현재의 정부가 민노당과 연정하는 상태에서 통과되기는 힘들 것”이라면서도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인권의 문제인 만큼 법안 통과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강창서 대학생 인턴기자 kcs@dia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