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질주’ 北정권 움직일 남은 카드는?…“원유차단·정보유입”

북한이 3일 역대 최대 규모로 6차 핵실험을 강행하면서 대북 압박의 핵심 수단인 경제 제재가 북한의 핵개발을 억지하는 데 극약처방이 되지 못한다는 게 재확인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대북제재 결의 2270호, 2321호, 2371호를 잇따라 채택하고 핵개발에 전용될 북한 통치자금을 바닥내는 데 주력했지만, 북한은 한층 진일보한 핵개발 수준을 과시하며 ‘제재에도 굴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행동으로 보여주기에 이르렀다는 것.

물론 유엔 비군사적 조치 역사상 초강경이라 불린 결의 2270호가 나온 지 1년 반밖에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제재무용론’을 거론하기는 이르다. 다만 북한이 시간을 다투며 핵무장을 향해 내달리는 상황에서 장기간에 걸쳐 효과를 발휘하는 경제 제재에만 모든 걸 걸 수도 없는 노릇이다.

특히 북한 정권이 핵개발을 단순 협상용이 아닌 ‘체제 존속’을 위한 수단으로 삼는 이상, 핵 억지 나아가 비핵화를 이루려면 결국 김정은 체제에 실질적 위협이 될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체제 존속을 위해서라도 핵을 포기할 수밖에 없도록 김정은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릴 카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 北에 원유 공급 끊을 시 3개월 내에 黨·軍·政 마비…남은 무기 체계도 무용지물

북한 체제를 겨냥한 최후의 ‘채찍’으로는 대북 원유 공급 중단 조치가 꼽힌다. 북한은 연간 150만~200만 톤(t)의 원유를 수입해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지는데, 원유 공급이 끊길 시 북한의 당·군·정(黨·軍·政) 모든 기관이 마비되는 ‘원유 대란’이 초래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주민들이 쓸 수 있는 전기나 가스도 부족해지기 때문에, 원유 부족 현상은 민심 이반을 극한으로 치닫게 할 수도 있다.

특히 원유 공급 중단은 북한 군의 손과 발을 묶어버릴 수 있다는 점에서 북한의 대외 전략을 뒤집는 결정타가 될 수 있다. 그간 북한은 이른바 ‘제재무용론’을 과시하기 위해 국제사회 경고에도 크고 작은 도발을 이어왔다. 하지만 원유 없이는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 만들어놓은 각종 무기도 전부 무용지물이다. 포차와 장갑차, 해군함선, 전투기 등이 전부 원유(디젤유 등)를 연료로 하기 때문. 군인들에게 지급할 후방물자도 이동시키지 못해 군인들 사기까지 추락하게 된다.

미국을 중심으로 대북 원유 공급 중단 조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북한도 지난 4월 연간 원유 수입량의 절반 정도인 석유 100만 톤을 비축하는 것을 목표로 세웠다는 보도도 나왔다. 2일 일본 도쿄신문은 북한 관계자를 인용해 김정은이 국무위원회에서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밝힌 바 있다.

관건은 중국의 동참이다. 북한이 수입해 사용하는 원유 중 90% 이상은 중국산이다. 중국이 북한 체제를 압박할 키(key)를 쥐고 있는 셈. 실제 지난 2003년 북핵 위기 속에서 중국이 대북 압박을 위해 사흘간 원유 공급을 중단하자, 북한이 6자회담으로 복귀했던 전례가 있다.

다만 중국으로선 원유 공급 중단에 따른 여파가 자국 내 불안정을 키울 것이란 우려를 지우지 못하는 모양새다. ‘초강경’이란 수식어를 단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에도 매번 대북 원유 공급 중단 조치는 누락돼 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난 달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 시험발사에 대응해 안보리가 대북 원유 공급 중단을 논의할 때도 중국의 반대에 부딪혀 최종 결의안에는 포함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반면 북한의 6차 핵실험으로 이제까지 중국의 대북지렛대가 극히 미약했다는 게 드러난 상황에서 중국이 마냥 국제사회의 원유 공급 중단 요구를 방관할 수는 없을 것이란 관측도 만만치 않다. 이미 북한의 6차 핵실험 직후 미국 조야에선 중국에게 송유관 벨브를 잠글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한층 커지고 있다. 미 정부도 중국에 대한 초강경 ‘세컨더리 보이콧’을 불사하면서라도 중국의 대북지렛대 강화를 유도하겠다는 구상으로 읽힌다.

◆ 北주민 겨냥한 ‘정보 폭탄’, 김정은 체제 흔들 핵심 비대칭무기

북한 주민을 대상으로 한 정보 유입도 한국이 가질 수 있는 핵심 비대칭전력으로 꼽힌다. 최근 북한 내부에서 감지되는 민심 이반과 체제 이탈 등을 계기로 북한 주민들과 엘리트들을 김정은에게서 분리시키는 게 핵심이다.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공사도 지난해 12월 기자간담회에서 “북한에 외부 정보가 유입되는 날 북한은 스스로 물먹은 담벼락처럼 무너질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일각에선 정보 유입만으로 주민들이 체제에 반기를 들 가능성이 현실적으로 낮다고 지적하나, 정보 유입은 김정은의 관심사를 핵개발 외에 내부 결속과 주민 감시로 분산시킨다는 데도 의의를 둘 수 있다. 실제 김정은은 외부 정보를 접한 주민들이 북한 체제의 실체에 눈을 뜰 것을 우려, 외부 정부 접촉 주민에 대한 감시와 처벌 수위를 높이는 등 극도로 예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북한 체제를 겨냥한 이른바 ‘정보 폭탄’을 비대칭무기로 삼기 위해선 정부와 시민단체가 대북 정보 유입을 강화해야 한다는 데 일치된 시각을 갖는 게 선행돼야 한다. 이미 미 국무부는 북한인권법의 핵심 조항으로 대북 정보 유입 방안을 다루고 있고, 영국 BBC도 9월부터 대북방송을 시작한다.

반면 그간 국내에서는 대북 정보 유입 사업이 민간 대북단체들 주도로 이뤄졌을 뿐, 정부가 공식적으로 대북정책이나 지원 방안으로써 이를 다룬 적은 없다. 지난해 9월 발효된 북한인권법이 북한인권재단 설립을 명문화하면서 민간대북방송사 등에 정부 지원이 이뤄질 것이란 기대가 컸지만, 재단 이사 추천 문제를 놓고 여야가 정쟁에 빠지면서 재단 출범 계획은 안개 속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