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이 씨가 데일리NK에 인터뷰 의사를 밝혀왔다. 이 씨는 천안함 사건 합동조사단이 명확한 증거를 내놓았음에도 국내에서 의혹이 끊이질 않는 모습에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고 한다. 여기에 북한 국방위가 28일 ‘천안함 사건이 날조’라고 주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더 이상 침묵하기는 어려웠다고 말했다.
이 씨는 31일 서울 모 호텔에서 데일리NK를 만나 정찰국 근무 경험을 토대로 천안함 사건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거침없이 털어놨다.
이 씨는 북한 국방위가 28일 기자회견에서 ‘(천안함을 공격한 것으로 추정되는) 130톤 연어급 잠수정을 보유하지 않고 있다’는 주장부터 반박하고 나섰다.
이 씨는 “130톤 연어급 잠수함을 수 차례 직접 목격했다. 로미오급부터 극소형 잠수함까지 조타 훈련을 받았다. 연어급은 유고급을 개조한 것으로 보면 된다. 유고급은 어뢰 발사관을 가지고 있지만 연어급은 발사관이 없다. 대신 좌우에 중어뢰를 직접 거치하고 전기 충격을 가해 어뢰 공격을 감행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함경남도 마양도 해군 4전대에 잠수함 수리소가 있다. 이곳에 수리를 하러 들어가면 북한 잠수함 집합소 같은 느낌을 받는다. 여기서는 대수리, 중수리, 소수리를 나눠서 함정을 수리한다. 이곳에서 130톤급을 비롯해 로미오급까지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씨에 따르면 북한은 로미오급, 상어급, 연어급, 유고급이라는 명칭 대신에 대형, 중형, 소형, 극소형이라는 명칭을 쓴다고 한다. 130톤급은 소형에 해당한다.
그는 “130톤 잠수정이 1.7톤 중어뢰를 싣고 ‘ㄷ’자형으로 기동해서 공격하고 복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북한 국방위의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이 씨는 “130톤급이 동해에서 단독으로 항해해 서해로 침투하고 복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어선으로 위장한 모선과 함께 움직인다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고깃배로 위장해 서해 근해까지 침투한 다음 잠수함을 침투시키면 남측에서 적발하기도 쉽지 않다. 북한은 이번 합조단의 발표처럼 일반 어선으로 위장해 백령도 근해까지 왔다가 잠수정을 침투시키는 방법을 사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합조단도 “천안함 공격 2. 3일 전 일부 소형 잠수함정과 모선이 서해 북한 해군기지를 이탈했다가 복귀한 것이 확인됐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는 북한에 있을 당시 고깃배로 위장시키고 내부를 잠수함 탑재용으로 개조한 모선을 직접 봤다고 말했다.
북한은 함경남도 락원군(퇴저군) 세포리에 정찰국 3기지 ‘모선-자선’ 부대를 두고 있다고 한다. 이 씨는 이곳을 방문했을 당시 북한이 직접 건조한 위장 모선을 봤다. 그런데 기능적으로 하자가 있어서인지 다시 개조한다는 말이 나온 후로 1996년 9월 남파됐기 때문에 완성된 모선은 보지 못했다고 한다.
이 씨는 천안함 사건이 터지자 마자 북한 소형 잠수함의 행위라고 직감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대형 잠수함의 어뢰 공격은 소음 때문에 발사 즉시 그 위치가 드러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씨는 “잠수함에서 발사되는 어뢰는 고성능폭약 1톤이 넘기 때문에 이를 압축공기로 밀어낼 때 발생하는 소음이 엄청나다. 공기 압축으로 밀어 내고 프로펠러가 돌면서 추진체를 운반하게 돼있다. 일단 어뢰를 쏘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발각되기 쉽다. 대남 침투공격은 은밀성이 최고인데 북한이 바보가 아니고서야 그런 방법을 쓰겠는가?”라고 말했다.
기뢰 가능성에 대해서도 “음향식 기뢰 설치가 극히 어렵고 기뢰 폭발력이 이번 어뢰의 5배가 넘기 때문에 파괴된 천안함 상태로 봤을 때는 그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봤다”고 말했다.
이 씨는 우리 합조단이 결정적 근거로 제시한 ‘1번’이라는 글자에 대해서도 북한의 행위를 밝히는 핵심적 증거라고 평가했다.
그는 “북한에서는 어뢰도 손수 정비를 한다. 정비를 하기 위해서는 어뢰를 분해한다. 이상 유무를 확인하고 녹을 제거하고 여타 정비를 한다. 정비하기 위해서는 분해해야 한다. 분해하다 보면 부품을 분실하거나 타 어뢰 부품과 혼동될 수 있다. 그래서 번호를 적어놓고 어뢰 별로 부품을 맞춰 놓는다. 예를 들어 이번에 사용된 음향어뢰 뇌관을 정비할 때도 이런 방식이 이용된다. 음향어뢰 뇌관은 3kg 중량이 나가는데 이것도 분리했다가 재 장착한다. 그러려면 한 두 개가 아닌 이상 번호를 써놔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잠수함을 부를 때는 ‘호’라는 명칭을 썼지만 어뢰 부품을 수리하기 위해 표시할 때는 일반적으로 번을 썼다”고 설명했다.
그는 북한이 천안함을 격침시킬 당시 완전범죄를 자신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말했다.
이 씨는 북한 당국이 그렇게 생각한 이유를 두 가지로 말했다. 하나는 동해나 서해로 침투한 잠수정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이 씨에게 “공식적으로는 1996년 강릉 잠수함 침투가 처음이자 마지막(체포됐기 때문에)이었겠지만 비공식적으로는 몇 번이나 남측 해역에 들어왔느냐”고 묻자 잠시 생각을 하다가 “말하기 어렵다”고만 답했다.
이어 “북한은 증거물을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장담했기 때문에 ‘오리발’ 작전이 가능하다고 봤을 것이다”면서도 “남측이 침몰된 함수와 함미를 대형 쇠사슬로 끌어올리고 쌍끌이 어선까지 동원해 증거물을 찾아내자 크게 당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1985년 함경남도 동해안 이원군 앞바다에서 수상함과 잠수함이 박치기를 해서 잠수함이 침몰해 시체가 내부에 있는데도 건질 엄두를 못 냈다. 당시 수심이 1998년 동해안 속초에서 북한 잠수함을 인양한 위치와 수심이 비슷하다. 그러니 자신들의 기술 수준에서 완전범죄가 가능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고 말했다.
이 씨는 이번 천안함 격침 부대는 정찰총국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해군은 전면전을 할 때 임무를 받아 움직인다. 또한 해군은 장비나 훈련 면에서 정찰총국을 따라가지 못한다. 작전을 성공하기 위해서 정찰총국이 움직이는 것은 당연하다. 실무지휘는 정찰총국장 김영철 상장이 했을 것이다. 그리고 김정일의 재가를 얻어야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강릉에 침투할 때도 당시 정찰국장이었던 김대식이 모든 작전과 훈련을 지휘 감독했다. 남쪽으로 파견되기 며칠 전에도 김대식이 직접 와 김정일 친필 서신도 읽어주고 양주를 따라주면서 ‘성공하고 돌아오라’고 말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씨는 정찰국을 지도해온 오극렬에 대해서는 “그가 정찰국을 지도한 사실은 전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 씨는 북한 인간어뢰 부대가 실제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는 “동해함대와 서해함대 해상저격여단 소속이다. 이곳에 한 개 부대씩 자폭 부대가 있다. 처음에는 잠수함에 적재돼 있다가 특정 시점부터 어뢰 운반체에 타서 추진력을 일정하게 받은 후에 조종하면서 목표물에 다가가 어뢰를 폭발시킨다. 어뢰 운반자는 탈출할 수 있다고 배운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렵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이 씨는 북한이 어뢰나 잠수함을 수출하기 위해 카달로그를 제작했다는 말을 북한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다만 북한 함경남도 신포 조선소 옆에 봉대보일러공장으로 위장한 잠수함과 공기부양정 건조공장에 쿠바 사람들이 방문한 모습을 보고 현장 관계자에게 물으니 “잠수함 수입 때문에 방문차 왔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천안함을 공격한 이유에 대해 ‘대청해전 때 당한 망신을 복수하기 위해서다’고 단언했다. 김정일은 남한에 복수해 군과 간부층에 자신의 권위를 과시하려 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 씨는 “북한은 서해 NLL 먹을 생각이 없다. 정찰국에 있으면서 ‘NLL을 수복하자’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긴장조성용이다. 그러다가 수상함으로 패배하니까 자신의 강점인 잠수함으로 복수한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천안함 격침사건 조사결과를 두고 여전히 의혹이 제기되는 현상에 대해 “물론 생각은 자유지만 좀 뭐랄까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많다. 남한 군 장병이 46명이 죽었으면 원인을 규명하고 그 행위를 저지른 자들을 벌해야 하는데 이런 데는 관심이 없고 정부를 의심하는 데만 관심이 있다. 북한 잠수함 운전수인 나도 납득이 가는 사실에 대해 왜 평범한 국민들은 납득이 안 가는지 모르겠다. 남한 사회가 지나치게 북한에 동정적인 생각이 많아서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