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김정은이 잠행 20일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북한 정권의 치밀한 계산인지 모르지만 김정은은 자신의 건재를 증명이라도 하듯 공개장소로 비료공장 준공식을 택했다. 인민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지도자로서의 이미지 연출이라면 그보다 더 좋은 장소는 없었을 것이다. 준공식 사진에 내걸린 구호를 보면 곳곳에 ‘정면돌파와 자력갱생’이 강조됨을 알 수 있다.
실제로 5일자 노동신문은 순천인비료공장 준공과 관련해 “장엄한 정면돌파전의 첫 승전포성”이라며 치켜세웠다. 이어 7일자 노동신문 ‘인민경제 선행부문에서 생산적 앙양을 일으켜나가자’ 제목의 사설에서도, “정면돌파전의 첫 승전 포성을 울린 소식은 지금 전체 인민에게 필승의 신심을 북돋아주고 있다”고 언급했다.
준공식 사진에서 보는 공장의 외형과 실제 북한의 상황이 큰 차이가 있다는 점은 명확하다. 북한의 열악한 경제 상황과 물자 부족으로 인해 실제 공장이 정상적으로 가동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비료공장 준공식 사진을 보며 필자가 지난해 봄 압록강변에서 찍은 한 장의 사진이 오버랩되었다.
봄의 문턱에 들어선 4월이었지만 압록강변의 칼바람은 뼛속을 에일 만큼 추위는 여전했다. 그 추위에 아랑곳없이 한 여성이 압록강에서 허리를 숙인 채 무언가를 줍고 있었다. 잠시 물 밖으로 나온 어미가 홀로 강변에 앉아 있던 아이를 잠시 안아주는 광경이 애처로웠다. 그때 필자의 눈에 띈 것은 강변 주위에 이리저리 널린 빨래 더미와 비닐포대였다.
물자가 부족한 북한에서 비닐포대 한 장도 쉬이 버릴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그런데 처음 사진을 찍을 때는 몰랐는데 나중에 확대해서 보니 비닐에 희미하게 새겨진 글자가 한눈에 들어왔다. 바로 “요소비료”라 쓰인 글자였다. 북한에서는 “요소비료”라는 표현 대신 “뇨소비료”로 쓴다. 한국에서 지원한 비료 포대로 추측되는 대목이다.
우리가 대북 비료 지원을 마지막으로 추진한 게 2015년경이니 대략 5년이나 지났다. 하지만 2015년 대북 비료 지원은 2010년 5.24조치로 인한 대북 비료 지원이 중단된 지 5년 만에 민간단체에서 15톤 정도의 소규모로 지원한 것에 불과하다. 우리 정부의 대북 비료지원 시 사용한 포대라면 10년은 족히 넘은 것이다. 그런데도 북한 주민은 그때 비료 포대를 아직도 생활물자로 사용하고 있었다.
김정은은 “오늘 우리에게 부족한 것도 많고 없는 것도 적지 않지만, 자력갱생의 기치를 높이 들고 나가면 뚫지 못할 난관이 없으며 점령 못 할 요새가 없다”라며 자력갱생을 강조한다. 북한 정권이 말하는 정면돌파와 자력갱생은 비료 포대 하나조차 햇볕에 말려 근근이 사용해야 하는 억척스러운 삶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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