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밖 북한] 연평도 포격 10주기와 평화로 가는 길

23일 연평도에서 열린 포격 10주기 추모행사에서 참석자들이 헌화하고 있다. /사진=강동완 동아대 교수 제공

11월 23일, 필자는 그날을 기억하고 싶었다. 이에 연평도 포격 도발 10주기를 맞는 그 현장을 찾아가기로 했다. 하지만 연평도로 들어가기조차 쉽지 않았다. 이틀이나 풍랑주의보가 내린 바다는 쉽게 뱃길을 열어주지 않았다. 이틀을 인천항에서 머물다 겨우 연평도에 발을 디뎠다.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망향정이었다. 이곳에서 북한의 석도까지는 3km에 불과하다. 김정은이 직접 현지지도했다는 장재도까지는 7km 거리로 육안으로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연평도는 제1, 2 연평해전과 함께 2010년 11월 23일 북한의 포격으로 인해 분단의 상처로 얼룩진 곳이다. 당시 북한의 포격은 6·25전쟁 이후 처음으로 대한민국의 영토를 직접 공격한 도발이자 만행이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연평도 곳곳에는 당시의 치열했던 교전 현장과 피폭 자욱이 그대로 남아 있다. 북한의 도발과 만행을 절대 잊지 않기 위해 그날의 선명했던 흔적들을 남겨 놓았다. 하지만 우리들의 기억 속에 11월 23일은 무수히 많은 날 중 하나로 잊혀져 간 건 아닐까.

연평도 포격 도발 10주기를 추모하는 행사가 연평도 평화공원에서 열렸다. 특별히 이 자리에는 고(故) 서정우 하사와 고 문광욱 일병의 유가족분들이 참석했다.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의 마음을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유가족은 아들이 전사한 그 현장을 더듬으며 흐르는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 그 순간만큼은 하늘도 바다도 바람도 숙연했다. 주위의 모든 이들도 함께 눈시울을 적셨다. 아들의 흉상을 손수건으로 직접 닦으시며 슬픔을 애써 감추시는 어머니의 손길은 너무도 가녀렸다. 북한의 최소한의 사과라도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며 떨리는 목소리로 울분을 토했다.

전역 3개월을 앞두고 휴가길에 나섰던 고 서정우 하사는 배를 타기 직전, 연평도가 화염에 휩싸이는 것을 보고 다시 부대로 발길을 돌렸다. 무사히 다녀오겠다던 어머니와의 약속을 끝내 지키지 못했다. 어머니는 조국에 바친 아들이 자랑스럽지만 사람들이 그날을 점점 잊어간다며 아들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11월 23일, 우리는 어떤 자리에 있었는지 묻고 싶다. 대통령은 한가로이 휴가를 떠났다. 유가족의 한 맺힌 슬픔을 위로하지 못했고 자랑스러운 군인의 죽음을 애도하지 않았다. 통일부 장관과 국방부 장관은 추모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그토록 평화를 외치며 남북 간 화해협력을 바라는 정부라 하지 않았던가. 판문점에서 이벤트나 하며 평화롭다 외칠 게 아니라 군사적으로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며 교전이 발생했던 이곳 연평도에서 평화의 발걸음을 내딛는 게 좀 더 진정성이 있어 보인다.

평화는 과거를 지우고 외면하면서 결코 절로 찾아오는 게 아니다. 10년이 지났다고 그냥 묻어둘 일이 아니다. 북한이 연평도 포격 도발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다시는 불행한 분단의 상처가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남북한이 서로 대치하는 사이에 NLL(서해북방한계선)은 중국 어선들의 차지가 되었다. 연평도를 비롯한 서해5도 주민들의 이중고는 날로 커지고 있다. 지척에 어장을 두고도 바다에 나가지 못한다. 국민의 재산과 안전을 지키는 일, 그리고 조국을 위해 목숨 바친 영웅들의 유가족분들을 위로하고 기억하는 일 그게 국가가 할 일이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 유가족분들에게 죄송하고 미안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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