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46용사 잠든 현충원 묘역 앞에 서다

천안함 피격 1주기를 앞둔 지난 19일 천안함 46명의 용사와 故한주호 준위가 잠들어 있는 대전 국립현충원을 찾았다. 천안함 장병들의 묘역 앞에는 오랜만에 찾아온 완연한 봄 날씨 덕인지 젊은 대학생들부터 아이와 함께 온 가족들까지 다양한 참배객들의 발길로 북적였다.


참배객들이 하나, 둘 사라진 느즈막한 오후 故한준호 준위와 46용사들의 묘소를 천천히 살펴볼 수 있었다. 내 시선을 가장 먼저 잡아 끈 것은 故안동엽 병장의 사진이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안 병장의 곁을 어린 시절의 사진과 성경책들이 지켜주고 있었다.


故이상준 중사 묘역 앞 유리 상자 안에는 가족 사진과 고인이 사용하던 염주, 손목시계, 핸드폰 등이 담겨 있었다. 또 홍익대학교 학생이었던 고인의 공로를 기리는 대학교 명예졸업증서와 해군 제2함대 사령부의 훈장증도 당당히 자리잡고 있었다. 이 작은 상자 안에 한 사람의 생(生)과 사(死)가 다 담겨 있다고 생각하니 순간 울컥한 마음이 들었다.


故이상민 하사의 묘역에는 그리운 가족들이 찾아왔다. 조그마한 케익과 꽃다발을 안고 고인의 묘 앞에 선 가족의 얼굴에는 그리움이 가득해 보였다.눈시울을 붉히던 이들은 차마 걸음을 떼어지지 않는 듯 한참이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들이 떠난 묘 옆에는 ‘상민아 사랑해 – 엄마’라고 쓰여진 꽃바구니가 놓여 있었다.


천안함 피격 1주기를 앞둔 주말이어서인지 이날 묘소를 찾는 유족들이 많았다. 몇몇 유가족들은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어깨를 토닥이기도 했다. 너무나 큰 아픔을 함께해서 일까. 굳이 긴 말을 나누지 않아도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와 의지가 되는 듯 했다. 이들에게는 46명 천안함 용사들 모두가 사랑하는 내 아들이자 조카, 동생일 것이다. 


천안함 용사 묘역을 뒤로 한 채 추모 특별 사진전이 열리고 있는 보훈 미래관으로 발길을 돌렸다. 보훈 미래관 2층 한켠에는 장병들에게 메시지를 남기는 추모 게시판이 마련되어 있었다.


벽 한 면을 가득 채운 게시판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우리를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2011년 3월 19일’이라고 적은 초등학생의 순수한 마음부터 가족·친구 등 일반 방문객들의 추모글까지 46명의 용사를 위로하는 메시지들이 가득했다. 


“용상이형… 나 형 동생 상진이야. 오늘 형 생일이라서 현충원 왔어. 잘지내고 있지? 벌써 1년이 다 되가네.. 거기서도 잘지내고 앞으로 자주 찾아올께! 생일 축하해! 사랑해~ 2011년 3월 2일”라는 메모에는 채워지지 않은 그리움이 느껴지는 듯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2010년 3월 26일 그날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를 생각해봤다. 희생 장병들이 나와 비슷한 또래였기 때문이리라. 어쩌면 나와 함께 캠퍼스를 거닐며 청춘과 고민을 함께 나누었을 친구들이 한 순간에 꽃같은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은 지금도 나에게는 멀게만 느껴지는 일이다.


평범한 대학생인 나에게 어쩌면 천안함 사건은 ‘뉴스 속의 사건’, ‘타인의 아픔’이었을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일상과 함께 잊고 살아 왔던 것 아니었을까. 일년이 흐른 지금에야 비로소 이들의 묘소 앞에 선 나는 묘역을 찾은 유가족들의 뒷모습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안타깝게 희생된 장병들과 남아있는 사람들의 눈물을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은 차마 꺼낼 수 없을 것만 같다. 다만 이들이 왜 희생되었으며, 또 이들의 죽음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무엇인지, 이들의 희생이 무의미하지 않도록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를 이번 천안함 1주기를 통해 잊지 않고자 한다.


천안함 46용사와 故한주호 준위! 당신들의 헌신에 부끄러움과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또한 당신들을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