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야 잊을 수 있을까…” 연평도 주민들의 그 후 1년

연평도 포격 1주년을 이틀 앞둔 21일 오후. 연평도 주민들은 그 날의 상처를 모두 씻은 듯 평온한 표정이었다. 꽃게잡이를 마친 주민들은 그물 정리에 여념이 없었고, 겨울을 앞두고 김장 준비에 나선 주민들의 손은 바빴다. 포격으로 파괴된 가옥과 창고, 대피소도 막바지 공사에 한창이었다. 


하지만 평온한 주민들의 내면에는 북한의 기습 포격으로 인한 ‘트라우마(외상후 스트레스장애)’가 자리잡고 있었다. 우리 군의 포격 훈련과 방송에도 그 날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듯 무섭고 놀란다고 주민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김용녀(81) 씨. /김봉섭 기자


김장 준비를 위해 집 앞마당에서 고추를 다듬고 있던 김용녀(81) 할머니는 “지금은 당시보다 괜찮아졌지만, 훈련 방송 소리만 나와도 여전히 불안하고 무섭다”고 말했다. 두려움 때문에 떠나고 싶어도 갈 곳도 없고, 생계를 이을 방법도 없어 떠나지 못한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김 할머니는 포격 당시 경찰의 도움으로 장화만 겨우 신고 허겁지겁 벙커로 이동했다고 한다. “한동안 벙커에서 거지처럼 보냈다”며 당시 고통스런 상황을 전했다.


마을 주민들은 포격 이후 중요한 물건은 가방에 넣어 보관하는 습관이 생겼다고 한다. 포격과 같은 북한의 공격이 또 발생하면 필요한 물건만 챙겨 언제든지 이동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연평도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한 번도 이 곳을 떠나본 적이 없다는 이용운(57. 남) 씨도 “지금은 많이 평온을 찾았지만 그래도 ‘쿵’ 소리가 나면 놀라고, 겁난다”고 말했다.


이 씨는 “군 부대에서 방송을 하지만 지금은 그 포 사격 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며 “이로 인해 주민들의 신경도 많이 날카로워지고 짜증을 내기도 한다”며 주민들의 불안한 심경을 전했다.


식당을 운영하는 한 주민도 포격 이후 “주민들이 아주 민감해졌다”며 이전과 같은 이웃 관계가 형성되기 어려움을 털어놨다. 포격은 주민들에게 전파되거나 반파된 가옥만을 남긴 것이 아니라, 주민들 간의 따뜻했던 ‘정(情)’ 마저 순식간에 앗아갔다. 


현재 연평도의 초·중·고 학생은 140여 명 정도다. 학생들이 포격 당시 느꼈을 두려움과 정신적 충격이 더욱 클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이들에 대한 심리적·정서적 치유가 시급한 상황이다.


연평초등학교 임노진 교감은 “현재는 아이들의 많이 안정을 찾았지만, 지금도 트라우마는 치유되지 않고 남아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학교차원에서 학생들의 심리적 안정을 치유하기 위해 특수교육지원센터를 통해 심리·정서적 상담활동과 음악치료, 꽃가꾸기 사업 등으로 정서치료를 병행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아동문학가들을 초청, 작가와의 대화를 통한 치료도 이뤄지고 있다.


반면 주민들에 대한 정부 차원의 심리 안정 프로그램은 운영되지 않고 있어 이들에 대한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60대의 한 주민은 당시 포격에 대해 “죽어야 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주민은 “지금도 외상 후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해 가끔씩 깜박깜박하는 경우도 생겼다”고 밝혔다. 연평도 포격은 주민들뿐만 아니라 동물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 주민들에 따르면 집에서 기르는 개들도 훈련 포 소리만 들려도 숨어서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옹진군은 지난해 포격 이후 연평도 내 7개의 대피소를 신설하거나 개조하고 있다. 연평초교 옆에 자리한 1호 대피소는 지하 2층 규모로 연평도 전체 인구 1천600여 명의 30% 수준인 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다. 또 연평면사무소 뒷마당에도 지하 1층에 벽면 두께 50㎝짜리 대피소가 들어설 예정이며, 지상 1~2층에는 연평보건지소가 들어선다.








▲연평면사무소 뒷마당에 공사 중인 대피소와 보건지소. /김봉섭 기자


새로 건설되는 대피소는 위급 상황 시 주민들이 장기간 불편 없이 지낼 수 있도록 시설을 완비할 예정이다. 최철영 옹진군 산업팀장은 “지금 새롭게 건설하고 있는 대피소는 유사시 취사는 물론, 운동(배드민턴·탁구), 세면 등 장기간 생활할 수 있도록 짓고 있다”고 설명했다.


포격 이후 유사시 군 부대가 면사무소를 통하지 않고 직접 마을 방송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대피 메뉴얼’도 추가됐다. 또 주민들의 자발적인 대피훈련 참여도 늘었다고 한다.


최 팀장은 “매월 해상 훈련이 계속되고 있지만, 포 소리가 들리기만 하면 불안해하고 있다”면서도 “(포격 이전에는) 군부대에서 포 사격 하루 이틀 전에 안내방송을 해도 대피훈련에 잘 참가하지 않았는데, 이젠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나마 안도감을 갖을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포격으로 서정우 하사와 문광욱 일병 외에도 민간인 건축업자 김치백 씨와 배복칠 씨가 사망했다. 당시 김치백 건설현장 반장과 함께 일했다는 도칠성(57) 씨는 “군 부대 독신자 숙소를 짓고 있었는데 1차 포격 후 나를 숙소에 데려다주고 다시 공사현장으로 가다가 참사를 당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도 씨는 “정말 착하고 성실한 분이었다. 내가 끝까지 못 가게 말렸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미안하다”며 착잡한 심정을 밝혔다. 


당시 포격으로 완전 파괴된 가옥은 총 45동. 이중 13동은 새로운 가옥으로 입주한 상태고, 나머지 32동은 빠르면 이번주 중으로 입주할 예정이다. 부분 파손된 가옥도 260여 채 정도다. 그러나 완파된 가옥은 새집을 지어주는 반면, 부분 파손 가옥에 대해선 지원이 미진해 정부에 대한 주민들의 원성도 높은 상태라고 한다. 








▲연평도 주민들이 밝은 표정으로 무를 다듬으며 김장 준비를 하고 있다. /김봉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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