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협정 당사자 미국, 北 납치시인 압박해야”







▲ 이미일 이사장은 정전협정 체결 당사자인 미국이 전시 민간인 납북자 문제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김소열 기자


27일은 정전협정(휴전협정) 체결 58주년이 되는 날이다. 북한은 6.25전쟁을 개전하고도 이날을 미제의 침략을 막아낸 ‘전승기념일’로 자축하고 있다. 개전 책임을 미국에게 돌리려는 의도다. 


60년이 지나도 북한의 태도는 변화가 없다. 이러한 북한의 태도에 눈물 흘리는 사람들이 남쪽에만 수만 명이다. 전쟁 기간 북으로 납치된 민간인들의 가족이다. 정전협정 당사자였던 미국과 북한은 10만 명에 달하는 납북 민간인 송환 문제 해결을 덮어둔 채 휴전회담을 종결했다. 


1953년 8월 정전협정 체결 한 달 후 정동 덕수궁.


“주여 사랑하는 아들과 남편을 빼앗기고 슬픔과 눈물로써 밤낮을 보내는 이 불쌍한 우리에게 당신의 인자스러운 손으로 끌려간 그들을 돌려 보내주소서”


‘피랍치인사 구출대회’에 참가한 한치진 박사의 부인 정복희 여사가 절규하며 기도했다. 그로부터 58년이 지난 오늘날 이미일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이사장 역시 “우리 가족에게 60년이나 이어진 비극을 이제는 끝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세월은 흘렀지만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이 이사장은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9월 북한 정치공작요원에 의해 아버지가 납치됐던 납북가족 중 한 명이다. 그는 “비극의 시작이고, 대재앙이었다”는 말로 58년이 지난 정전협정의 의미를 대신했다.


이 이사장은 22일 서울 청량리 사무실에서 가진 데일리NK와의 인터뷰에서 “2년여 동안 이뤄진 휴전협상에서 유엔 측은 ‘납치(kidnap)’라는 단어를 단 한 차례도 언급하지 않았다”고 통탄했다.


1천 페이지에 달하는 정전회담 제4분과회의(포로 교환에 관한 협정) 회의록을 낱낱이 살펴봐도 유엔 측이 납치라는 표현을 사용한 부분은 나오지 않았다고 이 이사장은 설명했다. 대신 북한은 ‘납치’라는 단어를 10여 차례 이상 사용해 미국을 협박한다.


유엔 측은 정전회담 중 ‘납치’라는 용어 대신 ‘붙잡고 있는 남한 민간인’ 등의 표현을 쓰다가 이후 납치의 의미가 완전히 사라진 실향민(displaced civilian)이란 단어로 대체했다.


반면 납치 민간인에 대한 송환 의사가 전혀 없었던 북한은 유엔측을 철저히 농락했다. 북한은 휴전회담에서 ‘북한 민간인 50만 명 납치’ 주장과 ’55명 외국인 피랍자 무조건 석방’을 조건으로 유엔 측이 남한 민간인 납치 문제를 거론조차 하지 못하게 차단하는 치밀한 전술을 구사한다. 북한은 월남한 북한 주민들에 대해 ‘유엔측이 핵위협으로 납치해 간 사람들’이라고 주장했다.


또 북한은 유엔 측이 제시한 55명의 외국인 피랍자 명단에 대해 “그들은 전쟁포로가 아니어서 현재 회담에서는 논외지만, 휴전협정이 조인되는 즉시 석방하겠다”고 말해 남한 민간인 납치 문제를 비껴갔다.


북한은 휴전협상 이후 고향으로 돌아가길 원하는 민간인에 대해서는 ‘전원 송환’을 약속했다. 다만 그 해석이 가관이다. 그들은 ‘북한에는 자발적으로 (북한에) 찾아오기 위해 고향을 떠난 사람들뿐이므로 송환해야 할 대상은 사실상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 전시납북자에 대한 송환은 단 한 건도 이뤄지지 않았다.


이 이사장은 “이제라도 바르게 기록해야 한다”며 “미국이 북한의 납치 행각을 지적하고, 시인할 수 있도록 압박을 가해야 한다. 그래야 납치되고 희생당한 분들이 덜 억울할 일이 된다”고 말했다. 정전협정 당사자인 미국의 노력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이와 관련 최근 미 하원의 찰스 랭글(민주, 뉴욕) 의원은 27일 채택을 목표로 전시 민간인 납북자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결의안 채택이 추진되고 있다.


결의안은 전시 민간인 납북자와 관련해 “이들의 수가 1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나 북한은 1명도 없다고 잡아떼고 있다. 조속한 송환이 필요하며, 이것이 어렵다면 가족상봉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결의안은 의원 외교차 미국을 방문한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이 초안을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고, 박 의원은 출국에 앞서 이사장과 이 문제에 대해 교감했다고 한다.


이 이사장은 “전시 납북자 문제를 거론했다는 것 자체가 매우 환영하고, 감사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유해는 말이 없다”며 북한이 자신들의 납치 행각이 공개가 될까 두려워 유해송환을 망설일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요즘 이 이사장은 특별법 제정 따라 정부가 올해 초 만든 ‘6·25전쟁납북진상규명위원회’에 참석하고 있다. 위원회는 8월 2일 전체회의를 열어 첫 납북피해 신고에 대한 심사를 앞두고 있다.


이 이사장은 “과거 납북자 명단에 있었던 분들이지만, 현행 특별법에 의해 그분들이 전쟁납북자로 기록되는 날이다. 61년 전에 납북된 전쟁납북자를 대한민국이 되찾아 온다는 느낌이 있어서 마음이 설랜다. 그 분들이 생존해 있다면 굉장히 기뻐할 것 같다”고 앞서 소회를 밝혔다.


특별법 첫 해인 올해 5월 말 현재 신고건수는 420여 건 정도로 아직은 미미한 수준이다. 10만여 건에 달하는 민간 납치자 중 서울 거주자들이 많아 서울에서 피해 신고가 많을 것으로 예상됐지만, 서울시와 시의회가 무료급식 문제 등을 놓고 다툼을 벌여 관련 조례가 이달 8일에서야 통과됐다. 서울시(市)·구(區) 실무위원회 구성이 늦어져 신고 절차가 원활히 이뤄지지 못했다.


이 이사장은 “피해 가족들조차 ‘지금 신고해서 무엇 하나’라는 생각을 가진 분들이 꽤 있다. 또 이들은 납북된 사실을 기억하는 것조차 고통스러워 하고, 한편 정부에 대한 불신과 노여움이 묻어있다”며 이들을 설득하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이 이사장은 마지막으로 정전협정을 기해 정부에 바래는 것이 있다고 말했다. 이 이사장은 “대통령께서 90대 고령인 납북자 부인들을 초청해 위로해 말을 해주셨으면 좋겠다. 대한민국의 국격을 높이는 일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60년 전의 사건이라서 납북자 부모의 경우 모두 사망한 상태고, 부인들조차 고령으로 거동이 불편하다. 대부분 휠체어 등에 의지할 수밖에 없고, 이렇게라도 움직일 수 있는 분은 다섯 분에 불과하다고 한다. 


사실 이 이사장은 지난해에도 6.25전쟁 60주년을 기해 전시 납북자 가족들을 초청해 위로해 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힌 바 있다. “대통령께 전달이 되는 건지 안 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동안 상처받았던 분들의 눈물을 닦아 주셨으면 좋겠다”고 재차 대통령의 관심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