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발전 일궈낸 한국이 6·25전쟁 승자”

“6·25전쟁의 승전국은 없다고 누가 말했던가? 한국이 전쟁 이후 경제, 사회, 정치적 자유와 평화를 얻은 반면 북한은 오늘날까지도 독재가 지배하는 땅이다. 어떤 기준에서도 한국은 전쟁에서 승리했다.”



6·25전쟁 당시 중공군의 ‘인의 장막’으로부터 임진강 전선을 지켜내기 위해 사투를 벌였던 영국 29보병여단의 이야기를 다룬 책 ‘마지막 한발(원제 To The Last Round)의 저자 앤드루 새먼(44·사진) 씨는 “한국의 성공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그 혹독했던 시절의 나락 또한 이해할 필요가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영국 더타임스의 특파원으로 서울에서 12년째 살고 있는 새먼 씨를 3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에 위치한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지금까지 6·25전쟁에 관한 책은 많이 출판됐지만 참전 병사들의 이야기를 다룬 책은 없었다”며 “전쟁을 둘러싼 이데올로기 보다는 그 안의 사람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책에는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피어나는 한 줄기의 인간애가 담겨 있다.



영국군 병사들은 목숨이 왔다갔다는 하는 와중에서도 전쟁 고아들을 거둬 군복을 줄여 입히고, 크리스마스 파티 때는 산타클로스로 변장해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줬다. 아껴뒀던 럼주를 나눠 마시며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는 순간 들려온 대포소리는 여기가 전장의 한 복판임을 일깨워줬다.



그는 이 책을 완성하기 위해 지난 몇 년간 영국 곳곳의 전쟁 박물관 서고를 뒤졌고, 참전병사들의 육성 증언을 수집했다. 특히 임진강 전투에 참가했던 노병 50명을 직접 인터뷰 해 당시 치열했던 전투의 현장을 그대로 재현해냈다.


“잊혀진 전쟁’으로 기억되는 ‘6·25전쟁’…냉전 이후 첫 ‘혈전'”



‘임진강 전투’는 1951년 4월 22일부터 사흘간 주로 영국군으로 이뤄진 29보병여단이 중공군 26개 사단과 북한군 1개 군단의 남하를 저지한 전투를 말한다. 29보병여단은 결국 후퇴 명령을 받지만 영국군 글로스터 대대 750명은 퇴로가 차단됐고, 생사를 건 전투 끝에 50여명만이 극적으로 탈출에 성공했다.



새먼 씨는 “임진강 전투는 2차대전 이후 영국군이 가장 많은 희생을 치른 전투”라며 “최근 6년간 아프가니스탄에서 숨진 병사보다 임진강 전투 때 숨진 병사가 더 많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유엔 회원국 16개국이 참전하고 50여만 명의 사상자를 낸 6·25전쟁은 전쟁사(史)에서도 ‘잊혀진 전쟁’으로 기억되고 있다. 새먼 씨는 “6·25전쟁은 유엔이 처음으로 참전한 전쟁이자 냉전시대에 벌어진 첫 혈전(血戰)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지만 지금껏 제대로 조명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 지난해 임진강 전투 기념일날 글로스터
대대원이었던 데이비드 바인딩 씨와 함께
찍은 사진 <사진제공=앤드루 새먼>


그는 그 이유로 우선 6·25전쟁이 2차 세계대전 직후에 벌어졌다는 점을 꼽았다.


2차 세계대전에 지쳐있던 사람들은 어느 진영의 승리도 아닌 ‘정전협정’으로 결론 난 이 흐지부지한 전쟁에 흥미를 잃어버렸다.



또한 2차 세계대전에서는 스탈린이나 히틀러같은 ‘공공의 적’이 존재했던 반면, 6·25전쟁을 일으킨 마오쩌둥과 김일성은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국제 여론의 관심과 단결이 높지 못했다.



6·25전쟁이 ‘잊혀진 전쟁’이 되버린 것은 전쟁의 상흔을 온 몸으로 겪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는 “전쟁 이후 우파 정권이 국민들에게 전쟁에 대해 암울한 선전을 많이 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때문에 386세대들은 오히려 이에 대한 반발심을 갖게 된 것 같다”고 평가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한국 특파원 생활을 경험했던 새먼 씨는 당시 한국인들 사이에서 북한보다도 일본에 대한 반감이 훨씬 크다는 점을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북한이 아닌 일본과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인식이 많았다. 그러나 일본이 2차 세계대전 이후 많은 변화를 겪은데 반해 북한은 그 이후로도 아직까지 똑같은 정권이 유지되고 있다. 오히려 50년대에 비해 더욱 군사적이고 호전적인 정권이 되었다. 남북이 한민족이기는 하지만 가치관과 생활 면에서는 한국과 일본이 비슷한 점이 훨씬 많지 않은가.”



그에게는 북한을 대하는 한국인들의 무관심한 태도도 이해할 수 없는 모습 중의 하나다.


“北에 대한 무관심 이해 안 돼…후대위해 전쟁 기록해야”



“북한에 대한 한국 사람들의 무관심이 안타깝다.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와 못 사는 나라가 같은 민족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슬프기까지 하다. ‘크로싱(탈북자 문제를 다룬 영화)’은 ‘킬링필드(캄보디아 크메르 루주 정권의 대량 학살을 다룬 영화)’만큼 중요한 영화인데도 한국인들은 관심도 없더라. 개인적으로는 ‘크로싱’을 보는 동안 많이 고통스러웠다.”



새먼 씨가 이번에 만난 참전 병사들 중에는 지금도 전쟁의 상처로 인해 고통 받는 사람이 많았다. 전후 직후에는 참전 병사들의 이러한 정신적 증후군에 대한 연구가 많이 이뤄지지 않았지만, 이들은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악몽이나 환영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노병이 되어버린 참전 병사들은 전쟁의 비극 속에서 신음하던 한국이 60년 만에 일궈낸 눈부신 성장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며 가슴 벅찬 감동을 느끼고 있다. 한국의 발전상을 본 후 삶의 활력을 되찾은 사람까지 있다고 한다.




그는 “전쟁의 끔찍했던 기억을 상기하고 싶지 않아 한국으로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는 분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한국이 성장한 모습을 보고 자신의 참전이 가치 있었던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 전체적으로는 이 전쟁에 대해 관심이 별로 없다. 외국에서 6·25전쟁에 대해 쓴 책도 있지만, 가장 고통을 느꼈던 한국 사람들이 6·25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해줬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새먼 씨는 특히 “참전 병사들이 살 수 있는 날이 길지 않은 만큼 너무 늦기 전에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해야 한다. 학교나 정부 등 여러 기관은 참전 병사들의 이야기를 전달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며 “그 얘기의 일부에는 유엔군이나 영국군에 대해서도 포함돼야 한다. 후세대를 위해서는 기록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한국인들은 자신의 스스로 빚어낸 이 성공을 자랑스러워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마도 많은 한국인들은 가장 위대했던 시대로 처음 한국을 통일한 신라시대를 떠올리수도 있지만 전쟁 직후 50~70년대 한국을 재건한 세대의 땀을 기억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