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을 게 없다고?…北, ‘최고 존엄’ 모독 택했다

체류 중인 우리 측 근로자가 전원 철수하게 되면 개성공단은 지난 2004년 가동 이후 9년 만에 ‘잠정 중단’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된다.


개성공단 잠정 중단은 북한이 ‘최고지도자의 존엄 훼손’ 등의 이유를 내세우며 지난 3일 개성공단으로의 출경을 제한한 데서 발단이 됐다. 이후 북한은 9일 북측 근로자 5만 3000명을 일방적으로 철수시키는 대남 압박 카드를 꺼냈고, 우리 정부도 식자재와 의료품 반입 차단에 따라 개성공단 근로자 전원 귀환 조치를 취하며 파국으로 치닫게 됐다.


일단 북한은 개성공단 잠정 중단으로 ‘잃을 게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안정적인 외화수입원이 차단되면서 김정은의 통치자금에도 일정한 영향을 미칠 것이고, 민심이반이라는 내부 ‘정치적 리스크’도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정부를 압박해 남북관계의 주도권과 김정은의 대내 통치 리더십 확보를 위해 개성공단 근로자 철수 카드를 꺼냈지만, 오히려 김정은 정권에 ‘자충수’가 됐다는 것이다.


북한은 29일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을 통해 “괴뢰 패당이 극히 도발적인 핵전쟁 연습을 벌이면서 극우보수언론을 내몰아 우리를 헐뜯는 속에서도 개성공업지구가 최악의 사태에 빠지지 않은 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자제력의 결과”라며 개성공단 중단의 책임을 우리 측에 전가했다.


이에 앞선 지난 27일 북한의 개성공단 실무기관인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 대변인은 우리 측의 피해 추정액수를 고려한 듯, “개성공업지구가 폐쇄되면 막대한 손해와 피해를 볼 것은 남측이며 우리는 밑져야 본전”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북한은 개성공단 근로자들을 통해 벌어들인 연간 8600만 달러 정도의 현금을 포기해야 한다. 여기에 개성공단 근로자 5만 3000명과 그들의 가족 약 20만 명 정도의 생계를 북한 당국은 떠안게 됐다.


특히 개성공단 근로자들은 출신 성분과 철저한 사상 검증을 거쳐 선발한다. 직간접적으로 ‘한국의 발전상’을 체득한 5만 3000명의 북한 주민들을 사상적으로 재교육해서 북한 체제에 편입시키는 문제 역시 만만치 않은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개성공단은 개성 주민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통로였기 때문에 근로자와 주민들의 불만이 고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개성공단에서 나오는 간식인 초코파이와 일회용 막대 커피믹스는 주민들 사이에서 ‘부수입’을 가져다준 최고의 인기 상품이었다.


개성공단 북측 근로자 철수 소식을 들은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는 “‘개성공단이 장난감도 아닌데 개성 사람들만 먹고살기 힘들게 됐다’는 걱정을 하고 있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게 탈북자들의 지적이다.


또한 지난 1일 최고인민회의에서 내각총리로 경제 관료인 박봉주를 임명했고, ‘핵무력-경제 병진노선’을 채택하면서 경제 문제 해결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기대 섞인 전망도 나왔다. 하지만 남북경협의 상징인 개성공단이 중단되면서 김정은 정권의 개혁·개방에 대한 주민들의 기대도 약화될 것으로 보여, 체제에 대한 결속은 더욱 느슨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오경섭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데일리NK에 “북한 내부에 경제 문제를 해결하려면 남북경협이나 북중경협이 잘 돼야 한다는 경제 내각 관료들이 직접 표현은 못 하지만, 심리적으로 비판적인 생각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오 연구위원은 이어 “개성 시민들의 민심이반이 발생할 수 있다”면서 “당장 움직임으로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지만, 안정적인 직장을 한순간에 잃었기 때문에 내부적으로 부정적·비판적 기류가 형성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당국 차원의 재교육이 실시되더라도 자본주의에 대한 환상을 쉽게 바꾸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영수 서강대 교수는 “근로자들은 인민반이나, 작업반으로 나뉘어 생활하기 때문에 집단적 (불만의) 힘을 갖기는 어려울 것”이라면서도 “잠재적 체제 불안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한 지난 27일 개성공단 근로자들이 귀환하면서 승용차 위에까지 제품을 가득 싣고 나오는 장면이 TV에 방송되면서 한국 내 북한 정권에 대한 여론 악화라는 불이익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그동안 남북교류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해오던 민주당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마저 개성공단 사태의 가장 큰 책임을 북한이라며 대화를 촉구한 것도 이 같은 기류와 무관치 않다. 


개성공단 잠정 중단 사태를 지켜보면서 기본적인 합의사항을 지키지 않는 북한에 대한 외국인 투자도 급감할 것으로 보인다. 투자에 대한 안정적인 보장이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누구도 투자를 하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다. 그동안 북한이 의욕을 가지고 투자 유치에 힘쓴 나선특구·황금평 개발도 차질이 불가피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29일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서로의 합의가 일순간에 물거품이 되는 상황에서 이제 세계 어느 누가 북한에 투자를 하려고 하겠는가”라고 지적한 것도 이 같은 기류의 반영이다.


‘최고 존엄 모독’을 이유로 남북관계의 최후의 보루로 여겨졌던 개성공단 폐쇄 카드를 꺼내 들었지만, 오히려 내부 민심 악화와 외국 투자기피, 남한 내 반북 여론 확산으로 ‘최고 존엄’ 김정은의 통치에 심각한 타격이 불가피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