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영 피살’ 10년 추도식… “성혜랑 소식 기다려”

▲ 김정일의 처조카인 고 이한영 씨의 부인 김종은 씨가 추도사를 낭독하고 있다 ⓒ데일리NK

김정일의 처조카로 한국에 귀순한 이후 북한공작조로 보이는 괴한에게 살해된 고 이한영(본명 이일남) 씨의 사망 10주년 추도식이 열렸다.

피랍·탈북 인권연대, 탈북자 동지회 등 북한인권 관련 단체들은 26일 이 씨를 추모하는 기도회를 개최하고 다시는 이같은 비극적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촉구하는 자리를 가졌다.

고인은 김정일의 첫 동거녀 성혜림의 언니 성혜랑의 아들로 지난 1982년 스위스에서 어학연수중 한국으로 귀순, 1997년 2월 15일 자신의 집앞에서 북한 공작조로 보이는 괴한 2명의 총격으로 피살당했다.

그를 살해한 범인은 아직 잡히지 않았지만 고인이 당시 의식을 잃기 전까지 ‘간첩’이라고 말했고, 피격 현장에서 북한 간첩들이 많이 사용하는 권총탄피가 발견됐다는 점에서 북한공작조에 의한 테러로 추측돼 왔다.

고인이 북한에서 귀순 후 자신의 신분을 공개하고 김정일과 가족, 측근들의 생활을 적나라하게 담은 책 『김정일 로열패밀리』(시대정신·원제 ‘대동강 로열패밀리 서울잠행 14년’) 펴내는 등 북한 최고위층의 실상을 증언한 것에 대해 ‘보복’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날 추모식에는 탈북자동지회 홍순경 회장, 북한민주화운동본부 강철환 전 대표와 박상학 대표 등이 참석해 고인의 넋을 기렸다. 또 이 자리에는 부인 김종은 씨를 비롯한 고인의 가족들이 참석했다.

김 씨는 지난 2003년부터 고인의 서거 6주년을 맞아 고인의 명예회복을 위한 국가배상청구 소송을 제기중이다. 재판부는 2005년 12월 ‘보호 의무를 소홀히 한 국가에 배상 책임이 있다’며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김 씨는 추도문을 통해 “3년 넘게 걸린 재판의 일심, 2심 승소로 고인의 명예를 되찾는 일이 눈앞에 와 있다”며 “지난 10년간 고인과 가족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들이 이 세상 정의 구현에 기름진 거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 씨는 기자들과의 만남에서 “남편은 사고 전 무슨 일이 생겨도 포기하지 말고 죽음을 헛되이 하면 안 된다는 말을 자주 했다”며 “죽음을 예감하듯 했던 말이 지금은 유언이 됐다”며 고인에 대한 애절함을 표했다.

김 씨는 유럽에서 은신중인 고인의 어머니 성혜랑의 소식을 묻는 질문에 “아이(딸 예인 양·고1) 할머니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다”며 고인의 가족을 만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아이도 크고 있고 어머님 연세도 많아지고 있어 어떤 식으로라도 연락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면서도 “지금 어렵게 그 분들을 만나고 싶지는 않다”며 현실적 어려움이 아직 존재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이어 “어디서 어떻게 지내든지 건강하고 안전하게 지내시길 바란다”며 우려스러운 마음을 밝혔다.

그는 국내 탈북자 문제와 관련해 “정부가 책임져야 할 부분에 대해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황장엽 북한민주화 동맹 위원장에 대한 살해협박이 잇따르는 것과 관련 “정부는 한 생명 한 생명을 소중히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어떤 힘을 빌어서라도 그분들이 이 사회에서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안전장치를 해야한다”며 정부의 강력한 대응을 촉구했다.

한편 고인의 어머니 성혜랑은 성혜림과 함께 모스크바에서 거주하다 1996년 서방으로 탈출, 유럽의 한 국가에서 은신중으로 알려졌다. 누이 이남옥 역시 김정일에게 편지를 쓰고 유학길에 떠난 뒤 유럽에서 도피 아닌 도피생활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