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덕수용소에서 만난 해군사령관 ‘방철갑 아저씨’

▲ 25일 오후 김일성광장에서 진행된 평양시 군중대회에서 방철갑 평양시 인민위원회 위원장이 연설하고 있다.

동해지구 해군사령관을 지냈던 방철갑씨가 평양시 인민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된 사실이 북한 조선중앙TV를 통해 알려졌다.

해마다 대대적으로 치르는 6.25 행사에 연설자로 나선 모습을 보니 옛 생각이 절로 떠오른다. 수용소에서 그 고생을 하고도 건강을 유지했다니, 역시 군 사령관의 체력이 다르긴 다르다고 생각된다.

70대 할아버지가 된 방철갑 전 사령관을 생각하면 지금도 20여 년 전 요덕수용소에서의 첫 만남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하다,

1980년대 중반 여름, 요덕수용소 ’10 작업반’ 옥수수밭 경비를 서던 나는 2 작업반 옥수수밭 경계선을 순찰하다가 키 크고 해군 장교 비옷을 입은 잘 생긴 경비원 아저씨를 만나게 됐다.

당시 나는 수용소 학교를 졸업하고 곧 노동에 동원됐다. 작업반장은 내가 키가 작고 일을 잘 못할 것 같다고 옥수수 밭 경비임무를 맡겼다. 방철갑씨도 옛 지위도 있고, 건강이 좋지 않아 2 작업반장이 특별히 배려해 경비원으로 동원됐다.

옥수수가 여무는 한 달 동안 경비병으로 근무하게 돼 내내 방철갑씨와 만나게 됐다.

‘반동놈’한테 경례는 무슨 경례야

“너는 10 작업반인 걸 보니 째포(재일교포를 비하하는 말)구나”
“예”
“왜 여기 들어왔니”
“할아버지 때문에 들어왔는데 무슨 죄를 지었는지 몰라요”
“그래?”
“아저씨는 누구예요?”
“나 몰라? 방철갑이?”

나는 그때 수용소에 파다하게 퍼졌던 동해지구 해군사령관 방철갑이 내 눈앞에 서 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았다.

현직 해군 사령관이 견장만 뜯긴 채 요덕수용소에 끌려오던 날 수용소 경비병들은 방철갑을 보고 경례를 붙였다. 중대장 급 군관(장교)들도 방씨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서 망설였는데 수용소 보위부 정치부장이 ‘반동놈’한테 무슨 경례냐며 경비병을 꾸짖으면서, 반동에게 선심을 베풀거나 경례를 하는 자는 용서치 않겠다고 엄포를 놨다.

그때부터 방 씨는 일반 수용자들과 똑같이 강제노동에 동원됐고, 수감 3개월만에 영양실조로 사망 직전에 이르게 됐다. 목에 들어간 힘을 뺀다며 보위원의 특별지시에 의해 죄수들의 집단 따돌림과 폭행, 강제노동을 당해야 했던 방 씨는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철저하게 망가졌다.

이런 방 씨의 처지를 딱하게 여겨 그를 살리기 위해 작업반장의 특별배려가 있었고, 죽으면 혹시 돌아올 후과가 있을 것 같아 보위원도 눈감아주었다. 수용소의 꼬마 소년과 해군사령관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됐다. 연령과 사회적 지위를 뛰어넘어 많은 시간동안 이야기할 기회가 생겼다.

방철갑 씨는 젊었을 때 군단 체육경기에서 1등한 ‘강철’같은 체력 이야기며, 잠수함 부대의 남한 침투 등 못하는 이야기가 없었다. 주로 자신의 무용담이여서 나는 정신없이 듣기만 했고 방씨도 답답한 시간을 때우기라도 하듯 줄곧 자신의 자랑을 늘어놓았다.

단 둘이 남아서야 ‘얼마나 고생 많으냐’며 눈물

꿈같던 옥수수 밭 경비생활도 끝나고 각자 작업반으로 돌아가게 됐다. 방철갑의 맏아들 방철은 인민군 특수부대 출신으로 철도성 사로청 지도원으로 근무하면서 출세가도를 달리다가 아버지 때문에 수용소에 끌려왔고, 평양 의대를 다니던 맏딸 정숙을 포함한 4명의 딸들도 줄줄이 요덕수용소에 끌려왔다.

1987년 우리 가족이 요덕수용소에서 풀려난 뒤 2년 후 방철갑씨의 가족도 수용소에서 풀려나 요덕군으로 배치 받았다. 그때 살아서 다시 만난 감격은 말해서 무엇하랴!

방 씨는 요덕군 도시경영사업소 창고장으로 임명됐다. 해군 사령관에서 창고장으로 처지가 너무 형편없었지만 살아나온 것으로도 장군님(김정일)께 감사해야 했다. 그의 친동생 방철호가 당시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군단장 급 고위간부로 재직하고 있어 요덕군당 간부들도 방씨를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방철호 씨가 형을 만나러 요덕군까지 찾아왔다. 그는 형을 만나는 첫 대면에 “당의 믿음을 그렇게 저버리고…형이 부끄럽소”하며 큰 소리로 나무라는 것이었다. 옆에 간부들이 쭉 늘어서 있으니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단둘이 있을 때는 얼마나 고생했느냐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김정일 정권하에서 한자리 해먹기도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차하면 사령관이고 뭐고 수용소에 끌려가 노예생활을 해야 하니 벼슬자리가 높은들 언제 한번 마음 편하게 살 수 있을까.

그래도 죽지 않고 살아남아 평양시 인민위원회 위원장으로 승진한 방철갑 전 사령관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 통일되는 그날까지 살아남아 다시 만나길 기대한다.

강철환(요덕수용소 출신)/ 북한민주화운동본부 공동대표

※ 강철환 대표가 DailyNK에 보내온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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