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6월 29일 새벽, 해군은 어둠을 틈타 서해상으로 침투하던 북한 간첩선을 나포하는 데 성공했다. 그로부터 32년이 지난 2002년 6월 29일 북한은 서해 연평도 인근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도발을 감행한다.
아버지는 해군이었다. 1970년 침투하던 북한 간첩선을 나포해 훈장까지 받았다. 아들은 그런 아버지를 따라 해군이 됐다. 반면 북한 공작원인 아버지는 당시 도주에 성공했지만 결국 숙청당했다. 그때의 상처를 안고 자란 아들은 북측 함장으로 도발을 진두지휘한다.
32년의 시간차, 2대(代)에 걸친 남북의 슬픈 악연은 교전(交戰) 중 두 아들이 사망하면서 끝맺게 된다.
영화 ‘NLL 연평해전’은 대한민국이 2002월드컵 3, 4위전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했던 6월 29일에 벌어진 북한 함정의 기습 도발로 인한 남북교전을 각색한 팩션(Faction. 팩트+픽션)이다. 소설 연평해전(최순조 著)을 모티브로 고(故) 윤영하 소령(해사50기)을 비롯한 6인의 전사자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영화를 연출한 김학순 감독(사진)을 지난 18일 만났다. 김 감독은 “11년 전 대한민국 해군 6명이 전사하고 18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참수리급 고속정 357호가 침몰하는 등 엄청난 피해를 입은 전쟁이었음에도 대다수 국민들이 기억조차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워 제작에 나섰다”고 말했다.
해군 출신임을 강조한 김 감독은 자신조차 연평해전에 관심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6·25의 비극적 역사는 대물림되어 계속되고 있다”며 “연평해전에는 한민족의 슬픈 역사가 들어있다”고 말했다.
영화는 3D로 제작된다. 사실감을 높여 당시의 처참함과 전사자들의 사투를 생생하게 관객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다.
김 감독은 “직·간접적 지원을 포함하면 100억이 넘어 간다”며 “블록버스터 급”이라고 귀띔했다. 대부분의 제작진과 출연진이 재능기부 형식으로 참여하고, 해군과 공군이 직·간접적으로 지원하면서 제작비도 상당부분 절감됐다.
특히 전투 장면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 감독도 가장 흥미진진한 장면을 꼽아달라는 질문에 “해군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다. 웅장한 전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인양 당시 조타키를 꽉 잡고 있는 한상국 중사의 모습, 박동혁 병장의 사투와 그의 시신을 안고 오열하는 어머니의 모습 등 유가족들의 슬픔을 관객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신경을 쓰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 감독은 영화에 대한 일각의 곱지 않은 시선에 대해서도 일갈했다. 그는 “조국을 위해, 내 아들이 싸우다 전사했는데 진보, 보수를 따지고 있다”면서 “영화를 통해 ‘조국’과 ‘애국’을 다시 한 번 생각해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2009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이른 새벽 아프간에서 희생된 미군 장병들의 유해를 맞이하기 위해 공군기지를 찾았던 사실을 거론하며 “우리는 왜 그런 게 안 되냐”고 했다. 영화를 제작하면서 적지 않은 맘고생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김 감독은 “(연평해전 당시) 대(大)를 위해 소(小)가 희생했다 치더라도 희생한 소를 위해 국가는 무엇을 해주었느냐”라며 “너무 소외됐었고 알려지지도 않았다. (희생자들에 대한) 예우와 존중이 필요했다”고 지적했다.
영화는 올 8월 개봉될 예정이다. 이번 영화의 주인공에는 해병대 수색대 출신 배우 정석원(고 윤영하 소령 역) 씨가 캐스팅 됐고 이 외에 오태경(고 한상국 중사 역), 노영학(고 박동혁 병장 역) 씨 등이 캐스팅됐다.
한편 제작사는 지난 11일부터 온라인을 통해 제작비 모금을 시작했다. 21일 현재 4천여만 원을 넘어섰다.
영화 후원은 ‘굿펀딩'(www.goodfunding.net)을 통해 최소 5000원부터 참여가 가능하다. 제작사는 후원 금액에 따라 시사회 초대권과 DVD 및 원작소설 제공, 제작진이 함께하는 감사모임 초대, 엔딩 크레디트 이름 게재 등을 계획하고 있다.
◆제2연평해전
2002년 6월 29일 2002한일월드컵이 막바지에 이른 시점에서 북한은 다시 한 번 북방한계선을 침범하여 무력 충돌을 일으켰다. 이날 오전 9시 54분부터 북방한계선을 넘기 시작한 북한 경비정들은 10시 25분 근접차단을 실시하던 대한민국 해군의 참수리 357호에 대해 집중사격을 가하면서 교전이 벌어졌다. 교전은 오전 10시 56분까지 31분간 진행된 후 북한의 SO·1급 초계정 등산곶 684호가 반파된 채 북으로 퇴각함으로써 종결되었다.
기습 공격을 받은 참수리급 고속정 357호가 침몰되고, 정장인 윤영하 대위를 비롯해 한상국·조천형·황도현·서후원 하사, 박동혁 상병 등 6명의 전사자와 18명의 부상자를 낳았다. 정부는 2008년 4월 ‘서해교전’으로 불리던 이 전투를 ‘제2연평해전’으로 명명하고, 추모행사도 국가보훈처 주관 하에 정부기념행사로 승격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