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어제와 오늘] 독재자 히틀러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나?

북한에서 세계사 교육은 어떤 모습인가. 일단 북한에서는 자국(自國) 외에 다른 나라의 역사에 대한 그 어떤 단행본도 출판할 수 없다. 즉, ‘중국 역사’나 ‘포르투갈 역사’와 같은 서적은 존재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러시아 공산주의 혁명이나 스페인 내전과 같은 역사 사건에 대한 단행본도 없다.

외국사에 대한 출판물의 허용된 구성 방식은 ‘세계사’와 같은 총괄 단행본 또는 백과사전이다. 이 때문에 북한 학자들은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의 정권과 제2차 세계대전과 같은 비극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우선, ‘김정일은 히틀러를 좋아했다’는 설은 근거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브레즈네프 시대의 소련 영화들에서 짐작해 볼 수 있다. 북한은 이 영화를 다수 구입하였고 심지어 더빙까지 했다.

이 영화들의 핵심 메시지는 매우 간결해 보인다. ‘나가자 나의 조국아 정의의 싸움에 // 히틀러의 검은 무리를 족치는 싸움에 // 증오야 불타올라라 심장아 뛰여라 // 그렇다 인민의 싸움 정의의 싸움이다’는 노래에서 핵심 내용이 짐작된다고 할 수 있다. 즉, 북한은 주민들이 히틀러에 대한 매우 부정적으로 생각하도록 노력하고 있는데, 김정일이 ‘히틀러의 팬’이었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또한 북한 백과사전에도 히틀러 시대를 서술하고 있는데, 소련 담론을 받아 김일성주의에 맞도록 수정했다고 볼 수 있다.

우선 북한에서 나치당을 ‘파쇼’ 세력이라고 한다. 파쇼주의는 원래 이탈리아의 베니토 무솔리니의 사상이었고, 히틀러의 인종주의와 달리 국수주의의 일종이었다. 그러나, 소련에서 나치들을 ‘파쇼 세력’이라고 호칭했다.

나치 권력 장악 과정 서술에서도 소련의 영향을 볼 수 있다. 현재 역사학자들은 주로 독일에서 민주주의가 파괴되고 히틀러 독재가 수립된 핵심 사건으로 1933년 3월 24일에 수권법(Ermächtigungsgesetz)을 채택을 본다. 하지만, 소련도 북한도 수권법 채택보다 독일 국가의회 의사당 화재 사건 직후에 발령된 2월 28일에 ‘독일 인민과 국가를 보위에 대한 대통령령’을 주목한다. 이 대통령령으로 독일 공산당을 강제 해산했는데, 왜 공산권 국가들이 이 부분을 강조하는지 짐작된다.

게다가, 소련도 북한도 국가의회 의사당 화재 사건을 나치들이 일으켰다는 음모론을 지지했다. 마리누스 판 데어 루베(Marinus van der Lubbe)가 직접 방화를 시도했다고 시인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또한 당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제2차 세계대전의 원인으로 ‘자본주의의 위기’ 등 경제적인 부분을 부각하고, 정치나 사회적인 부분을 과소평가하였다. 북한 도서에서도 이런 태도를 볼 수 있다.

아울러 1930년대 말기의 유럽 역사 서술에서도 비슷한 양상이다. 소련-핀란드 사이에 벌어진 ‘겨울 전쟁’을 스탈린 선전 그대로 서술했다. 평화를 사랑한 소련 정부가 핀란드에 국경 수정으로 제안하였지만, 핀란드 패당이 제안을 거절해 소련을 먼저 공격했고 소련이 같은 날 ‘장의 반격’을 했다는 식이다. 북한의 6.25전쟁에 대한 담론과 상당히 비슷하다.

체코슬로바키아 붕괴 과정의 출발점인 뮌헨 협정(Münchner Abkommen)은 북한 백과사전에 자세히 서술돼 있다. 당시 영국과 프랑스 정부의 실수가 더 컸다는 인식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1939년 8월에 폴란드를 소멸한 독소불가침조약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없다. 아울러 소련이 나중에 위반한 소일(蘇日) 중립 조약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또한, 소련에서도 북한에서도 홀로코스트, 즉 유대인 대학살을 비중 있게 다루지 않고 있다. 서양에서 이를 히틀러 정권의 핵심 범죄로 보지만, 소련도 북한도 히틀러 범죄 중 하나에 불과했다고 간주한다.

그러나 홀로코스트를 전혀 부인하지는 않았다. 예컨대, 조선대백과사전은 아우슈비츠 소멸 수용소에 대한 언급도 있고, 이 수용소 수감자들이 유대인이었다고 서술하고 있다.

다만 북한의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인식은 완전히 ‘소련식’은 아니었다. 차이점을 살펴보자.

첫째, 북한 당국은 1960년대부터 김일성의 ‘조선인민혁명군’이 일본 제국을 쳐부수었다고 주장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조선인민혁명군’은 실존한 조직이 아니기 때문에 소련 역사 책엔 당연히 언급하지 않고 있다.

게다가, 북한에서 미영(美英) 연합군을 소련보다 훨씬 부정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소련도 미영 연합군의 의미를 과소 평가하지만 대체적으론 긍정적인 요소도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과 영국을 ‘악한 자본주의 세력’으로 보여 준다. 그들이 나치들보다 덜 나쁘지만 본질적으로 제국주의 국가에 불과했다는 식이다.

예를 들면 북한의 ‘조선대백과 사전’을 보면 ‘악명 높은 살인장군 맥아더(1880-1964)의 미제침략군은 동부뉴기니아를 비롯한 여러 섬들을 강점하였다’ 등 소련에서 있을 수 없는 주장을 볼 수 있다.

특히 연합국이 조선의 독립을 약속한 카이로 선언도 북한은 ‘식민지 예속화’ 계획으로 평가했다.

“특히 선언은 일본세력을 그가 강점한 모든 령토에서 몰아 내며 적당한 시기에 조선의 자유와 독립을 실현할 것을 지적하였다. 이것은 미제가 조선인민의 자유와 독립의수호자로 가장하며 적당한 시기라는 애매한 문구 아래 일제를 대신하여 제놈들이 조선을 영구히 식민지예속화하려는것으로서 이것이야말로 미제의 교활성을 보여 주는 흉악한 모략극이였다.”

그리고 북한에서 보면 하나의 독일어 단어가 어려움을 주고 있다는 점이 발견된다. 바로 나치 독재 시대의 히틀러의 호칭인 Führer다.

독일어에서 Führer는 ‘수령’ 또는 ‘지도자’ 아니면 ‘영도자’라는 뜻이었다. 아래에 그림에 볼 수 있는 것처럼, 1933년에 식민지 조선 매체는 히틀러 수상 당시 히틀러를 ‘國粹黨 受領’(국수당 수령)이라고 호칭하였다.

물론 북한에서 ‘수령’을 김일성에게만 썼기 때문에 히틀러에 대해 쓸 수 없었을 것이다. 소련 영화의 북한 더빙판은 보면 나치 관료들은 히틀러를 ‘나의 수령님’(Mein Führer)이 아니라 ‘총통각하’라고 부른다. 일부러 오역했을 것이다.

동아일보 1933년 1월 31일자 1면.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Führer는 원래 히틀러 친위대 계급 이름 중 일부였다. 예컨대, Oberscharführer 또는 Reichsführer-SS이었다. 한국에서는 보통 이를 직역한다. 즉 Oberscharführer은 ‘상급분대지도자’이며 Reichsführer-SS는 ‘국가지도자’ 또는 ‘제국지도자’이다. 하지만 북한에서 ‘지도자’라는 말을 되도록 쓰지 않게 하기 위해 친위대 계급을 일반 군사 계급으로 번역한다. 예컨대, 하인리히 히믈러의 Reichsführer-SS이라는 계급을 ‘나치스 “친위대” (SS) 대장’으로 번역했다. 히믈러 자신이 이 사실을 알았으면 기분이 좋지 않았을 것이다. Reichsführer-SS은 대장급 아니라 야전 원수급 직위였기 때문이다.

또한 흥미로운 점은 북한 출판물에서 Führer라는 단어를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독일어로 출판하는 북한 도서들에는 김일성, 김정일 그리고 김정은을 Führer라고 호칭한다. 물론, 이 선전물의 대상자들이 외국인이기 때문에 상황은 다를 수도 있다.

북한 매체가 김정일을 ‘Führer’라고 호칭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사진=내나라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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