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先조치’ 고수하는 美의 속내는 무엇인가

최근 북중미 간의 6자 회담 재개를 위한 물밑 작업은 과연 성공할까? 요는 미국의 의지에 달린 문제이긴 하다. 그렇다면 미국의 진의는 무엇일까? 언제까지 북한에게 ‘비핵화 조치 선행’, 다시 말해 ‘비핵화를 하겠다고 믿을 만한 조치를 먼저 취할 것’을 요구만할 것인가?


사실 지난 20년 간 ‘속아 온’ 미국의 속 터질 심사를 이해 못할 바 아니다. 북한에게 비핵화 의지란 공허한 수사뿐이란 걸 절감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미국 입장은 ‘비핵화’에서 ‘비확산’으로 진작에 넘어갔다고 보는 견해가 통설이다.


그렇다고 6자회담 폐기를 공식 선언하지도 않는다. 그저 북한의 신뢰(회복) 조치가 선행돼야 북미접촉이든 6자 회담이든 나서 보겠다는 명분론만 공식적으로 반복하고 있다. 이런 뒷짐지기 행태로 미국이 얻는 뜻밖의 (또는 의도한) 반사이익(효과)는 무엇일까? 


첫째, 대북 압박 그 자체다. 지난 세월 지켜지지 않는 약속으로 받은 일종의 피해자 의식이 정책결정자들의 뼛속 깊숙이 새겨진 마당에, 이렇다 할 돌파구도 없는 상황에서 미국이 먼저 손을 내밀 당위조차 희미해졌다. 작년 2·29합의 파기는 그 절정이었던 셈이다. 유일하고 일관된 대북 메시지를 통해 북한의 선택지는 좁아질 대로 좁아졌다. 여하간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원하는 북한으로서는 자신이 좀 상대에 맞춰줘야 하는 꽉 막힌 ‘외통수’에 직면한 셈이다.


둘째, ‘사고’만 치는 북한이 밉지만 버릴 수도 없는 이웃사촌, 중국에 대한 간접 압박이 된다. 적당히 중간에서 좌장역할로 행세 좀 하려는 훈수꾼인 중국에게 미치는 파급효과가 점점 커지고 있다. 중국이 약간은 미국에 보조를 맞춰 북한을 설득하게 하는 쓰리 쿠션 효과를 얻으니 말이다. 중국으로서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것이, 말 안 듣는 북한을 어느 정도 압박할 수 있는 고삐로 활용할 수 있으니 굳이 미국과 대립각을 크게 세울 필요가 없다.


셋째, 동맹국 관리의 안정성 제고다. 한국과 일본으로서는 향후 미국의 정책 방향성을 예측하기 용이하다. 특히 일본이 미국의 대북 메시지와 충돌하는 돌출행동을 자제하게 만드는 억지력을 내포한다. 가이드라인이 되는 셈이다. 지난 5월 아베 총리의 측근이라는 이지마 이사오 자문역의 평양 방문은 그의 화려한 전력(2002년, 2004년 북일 정상회담 수행한 일본 내 대표적 북한통)에도 불구, 한미의 싸늘한 반응에 소득 없는 해프닝으로 끝나고 만 것은 좋은 실례이다.


넷째, 단기적으로 미국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 세계 강대국 미국이라 할지라도 전세계 안보현안을 동시에 풀어낼 능력은 더 이상 없다. 냉전 이후 미 국방정책의 근간이었던 ‘두 개의 전쟁 동시 수행 전략’은 사실상 포기와 다름 없는 상태다. 미국으로선 지금 국내 문제와 시리아 사태만으로도 정신을 잃을 지경인데 ‘신뢰 확보 조치 우선’이란 짧은 명분 하나가 중동문제에 집중할 시간을 벌어 주고 있다. 6자 회담이야 언제고 미국이 마음만 먹으면 재개할 수 있으니 말이다.


다섯째, 의외의 결과는, 동북아의 핵심 이해당사국 중 하나였던 러시아의 고립을 불러왔다는 사실이다. 러시아로서는 15년 전 실패로 끝난 4자회담의 아픈 교훈이었던, 한반도 문제에서의 고립현상이 재현된 상황이다. 미국을 견제할 강력한 외교적 지렛대가 하나 사라진 양태다. 이것이 시리아 사태에 관한 러시아의 완강한 반미 노선으로 이어진 것일까? (러시아 전문가들이 연구해볼 만한 대목이다.)


미국이 애초부터 적어도 위 다섯 가지 효과를 예측하고 현재와 같은 대북 기조를 세운 것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다만 한가지 분명해진 것은 미국 내 정치적 이슈와 중동 문제만으로도 벅찬 오바마 대통령이 다시 ‘아시아로의 회귀’에 속도를 낼 것이란 기대는 현저히 낮아졌다는 점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국제문제 보다 국내 정책에 집중해야 한다는 최근의 미 국내 여론도 2007년 40% 보다 두 배 높은 83%로 상승했다. 지도자의 고민이 깊어지는 지점이다. 1783년 독립 전쟁 이후 지난 200년 동안 미국은 국제문제에 관해 고립과 개입을 주기적으로 반복해 왔다. 10년이 넘은 이라크 전쟁 이후 미국의 대외 견인력은 점점 지리멸렬해지고 있다.
 
이런 경향성이 동북아에서는 명분 뒤 숨어버리는 전술로 나타났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마침, 한국은 신뢰 ‘프로세스’라는, 신뢰 형성의 과정을 중시하는 대북기조를 원칙으로 천명했다. 미국이 한 줄 메시지로 신뢰를 말하고 있다면 한국은 그걸 풀어서 뒷받침하고 있는 모양새이다.


언제나 의외의 한 수로 판을 흔들어 온 북한 특유의 필살기가 김정은 시대에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과연 과거 김일성-김정일 시대에 풍미하던 북한식 벼랑 끝 외줄타기가 요즘 시대에 통할까? 아니 ‘통(通)’할 것이라고 믿고 싶은 걸까? 어쩌면 미국의 시큰둥한 반응으로 정작 북한의 고민이야말로 날로 더 깊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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