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공동성명’ 승자는 북한이다

▲ 미소를 지으며 출국하는 북측 대표 김계관

한 차례 휴회(休會)하며 ‘2단계 회담’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냈던 제4차 북핵 6자회담이 공동성명을 채택하며 막을 내렸다. 5차 회담은 11월 초 개최될 예정이다.

회담결과에 대한 관련국들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의장국인 중국은 스스로 말을 아끼면서도 외부에서 “중국의 승리”라는 칭찬을 받고 있으며, 대립의 한 축인 북한은 김계관의 표정을 통해 ‘만족감’을 드러냈고, 다른 한 축인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훌륭한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가장 크게 만족하고 있는 국가는 ‘중재자’를 자임했던 남한으로, 노무현 대통령은 예정과 달리 국무회의를 직접 주재하며 희색이 만연한 얼굴로 “오늘은 기분이 좋다”고 기뻐했다. 정동영 통일부장관 겸 NSC의장은 이번 회담 결과를 “한국 외교의 승리”라고까지 표현했다.

회담결과에 대한 ‘보증인’의 역할을 담당했던 일본은 “환영한다”는 내용의 담화를 발표했고, 러시아는 벌써부터 주판알을 튕기며 대북 원자로 제공에 참여할 뜻을 밝혔다.

‘정치 회담’ 성격 두드러져

그렇다면 이번 공동성명은 윈-윈(win-win)인가? 모두가 만족하는 이번 회담의 결과는, 이번 회담이 그만큼 ‘정치적 회담’이었음을 드러내고 있다.

무엇보다 미국의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에서의 혼전, 이란 핵문제 위기 고조, 허리케인 카트리나 피해 등으로 인해 지지율이 급락하고 있는 형편에서 어느 곳에서 하나라도 ‘시원스럽게 뻥 뚫리는 듯한 소식’이 들려오기를 기대했고 북핵(北核)을 그 제물로 삼은 듯하다.

남한 또한 마찬가지다. 지금 남한에서 6자회담에 대한 평가에는 거품이 꽤 많다. 바로 오늘, 공동선언문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북한이 “경수로를 제공하면 NPT 복귀와 IAEA 협정을 이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한의 호들갑과는 달리 북한은 내심 미소를 감추면서 진득하게 ‘제2라운드’를 준비하고 있다. 사실 이번 회담의 최대 승자는 북한인데도 말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6자회담의) 성공적 마무리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마치 ‘큰 일을 다 마치고 잔가지를 치는 일만 남았다’는 식이거나, ‘토대가 다 닦였으니 일사천리로 성(城)만 쌓으면 된다’는 식의 표현이다. “북한의 경제발전을 도울 수 있는 포괄적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발언까지 했다.

그러나 지나온 역사적 경험은 ‘북한과의 모든 합의는 더 크고 새로운 전투의 시작’이라고 말해주고 있다. 만족감에 젖어 있을 때가 아니라 우선 회담 결과를 냉정하게 되돌아볼 때다.

북한의 최대 노획물은 ‘시간’

이번 회담 결과는 한마디로 ‘북한의 판정승’이다. ‘KO승’은 아니더라도 ‘심판 전원일치 판정승’이라고 할만하다. 북한이 얻으려고 했던 모든 것을 얻었기 때문이다.

북한이 얻으려고 했던, 급기야 얻게 된, 가장 큰 노획물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시간’이다.

북한 핵의 성격에 대해서는 두 가지 상반된 견해가 존재한다. 하나는 ‘핵무기 보유 자체가 목표’라는 견해이고 다른 하나는 ‘경제적 보상을 받기 위한 협상수단으로서의 핵’이라는 견해다. 사실 답은 ‘둘 다’ 이다. 애초에 핵무기 보유 자체가 목표였지만 1990년대 중반 1차 핵위기를 통해서 핵이 경제적 갈취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지금은 ‘장기적으로 꾸준히 핵무기를 축적해 나가되 그 과정에 경제적으로 얻을 것은 충분히 얻는다’는 전략을 세워둔 듯하다.

1차 핵위기의 전리품인 ‘제네바 합의(Agreed Framework)’를 통해 북한은 대략 7~10년의 시간을 벌었다. 북한에 제공하기로 한 경수로의 핵심부품이 도착할 즈음에나 과거 핵에 대한 사찰이 가능하도록 합의했기 때문이다. 그 합의의 그림자 뒤에 숨어 북한은 고농축우라늄(HEU)에 의한 핵개발을 시도했으며, 그것이 발각되자 거리낄 것 없다는 듯 핵보유를 선언했다.

지금 북한이 목표로 하는 시간은 언제일까? 그것은 우선 부시 행정부의 임기가 종료되는 때까지다. 길게 보아 3년 여 정도 남았지만, 퇴임 1년 전부터의 레임덕 현상을 감안하면 북한의 입장에서는 2년 남짓만 버티면 된다.

부시 행정부가 북핵문제를 안보리에 회부하고 설사 군사적 행동까지 한다고 해도 북한은 향후 1년~1년 6개월만 버텨도 된다. 천재일우(?)였는지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을 휩쓸어 부시 행정부의 ‘조기 레임덕’ 이야기까지 나오면서 북한은 더 이상 두려울 것이 없게 됐다.

탈무드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옛날 어느 나라의 사나이가 왕의 노여움을 얻어 사형을 당하게 되었다. 그런데 사형이 집행되려던 찰나, 왕에게 “제게 1년의 시간을 주시면 저기 백마(白馬)를 날게 할 수 있습니다”라고 했다. “만약 그렇게 하지 못하면 사지를 절단해서 죽여주시옵소서”라고 말했다. 그것은 왕의 애마였다. 왕이 생각해보니 자신은 특별히 손해 볼 것이 없었다. 그래서 반신반의하면서도 “감히 왕을 기만하면 능지처참 죽을 줄 알아라”며 그 제안을 수락했다.

사형집행을 면한 사나이에게 주위 사람들이 물었다. “그러다가 사기가 들통나면 어쩌려고 그러냐”고 말이다. 그러자 사나이가 말했다.

“어차피 죽는 몸, 목이 잘려 죽든 사지가 찢겨 죽든 마찬가지지. 그러나 나는 1년의 시간을 벌었네. 그 동안에 왕이 죽을지, 정변이 일어날지 누가 알겠나.”

여기서 그 사나이를 북한에 비유할 수 있겠다.

‘표현의 장막’ 속에 북핵 활로 뚫려

이번 6자회담의 합의결과를 살펴보자. 공동선언(joint statement)은 6개항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곰곰이 살펴보면 특별히 ‘합의했다(agreed)’는 표현은 별로 없다.

대개 재확인했다(reaffirmed), 약속했다(committed), 확인했다(affirmed), 진술했다(stated)는 표현이 주를 이루고 있다. 즉, 이번 공동선언은 ‘앞으로 무엇을 하기로 했다’는 것을 분명히 규정하고 강제하는 합의문이라기 보다는 ‘그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오갔다’고 정리한 문서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각국이 이런 재확인과 일방적인 약속, 확인, 진술에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음으로써 최소치(혹은 최대치)로 합의되는 부분을 명시한 의미는 있으나 너무나 포괄적이며 두루뭉실하다.

2003년 8월말 개최된 1차 6자회담이 중국의 의장국 요약문(Presidential Summary) 형식으로 막을 내린 바 있는데, 이번 공동선언은 당시 6개항의 요약문을 보다 구체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외교와 협상이라는 것이 한발 한발 나아가는 인내의 과정이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단순한 ‘확인’을 위해 2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는지 의아할 따름이다.

내용도 지금껏 각국이 원론적 수준에서 이야기했던 ▲북한은 핵무기와 핵관련 프로그램을 포기하고 NPT, IAEA에 복귀한다 ▲미국은 북한을 침공할 의사가 없다 ▲한국에는 핵무기가 없다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을 이행하자는 ‘당연한 이야기’의 재방송이다.

여기에 새롭게 삽입된 내용이 ▲북한이 평화적 핵이용권을 갖고 있다고 밝혔고 ▲여타 당사국이 그것에 대한 존중의 뜻을 표현했으며 ▲적절한 시기에 경수로 제공문제를 논의하는데 동의했다는 것이다. 북한이 평화적 핵이용권을 ‘갖는다’고 확실히 못박은 것이 아니라 ‘갖고 있다고 밝혔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인정한다’가 아니고 ‘존중의 뜻을 표현했다(expressed their respect)’, 또한 경수로를 ‘제공한다’가 아니라 ‘제공문제를 논의한다’, 나아가 ‘논의하는데 동의했다’는 식의 답답한 내용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표현의 장막’ 속에 북한은 이리저리 빠져나갈 통로를 넓게 확보해놓았다. ‘제네바 합의’가 북한에 7~10년을 버틸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해주었다면 이번 공동선언은 향후 6자회담을 최소한 3~5번은 할 수 있는 시간, 즉 최소 2년 정도는 충분히 버틸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해 주었다.

2004년 6월 3차 6자회담 이후 ‘폭정의 전초기지’ 발언 등을 핑계 삼아 13개월을 공회전했던 전례를 놀고 볼 때, 중간에 또 다른 핑계거리가 생기면 북한은 어렵지 않게 2~3년을 지연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이번 공동선언은 김정일에게 그만큼 시간을 벌어주었다.

3년 가까이 걸친 북한의 역전승

이번 공동선언의 또 다른 심각한 문제점 가운데 하나는 ‘북핵문제의 출발점을 모호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른바 ‘2차 북핵위기’는 2002년 10월 북한이 HEU를 통한 핵개발 프로그램의 존재를 시인하면서 출발하였다. 즉 북한의 ‘잘못된 행동’에서 기인했던 것이며, 6자회담은 이런 잘못된 행동을 ‘벌하는’ 성격으로 맞춰져야 옳다.

북한이 왜 처음에 HEU 핵개발을 시인했는지는 아직도 미스터리다. 하여간 문제가 심각해지자 북한은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냐’는 듯 완전히 말을 바꾸면서 ‘증거를 대보라’며 예의 적반하장 전략으로 나섰지만, 파키스탄 핵개발의 아버지 압둘 카디르 칸 박사의 증언,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의 확인 등으로 북한의 HEU 핵개발 시도는 명백한 사실로 보인다.

6자회담이라는 회담 틀은 ▲북한과 일대일 협상은 안되며 ▲반드시 증인을 두고 국제적 압박의 방식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교훈으로부터 나온 발명품이었다. 1~3차 회담은 대체로 이러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5개국이 ‘북한 핵문제’를 논의하는 모양새였다. 그런데 북한은 13개월의 공백 동안 ‘새 판’을 짜기 시작했다.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을 들고 나오기 시작했고, ‘전력문제’로 북한 핵문제의 본질을 가리기 시작했다. 그런 준비과정을 거친 끝에 열린 것이 4차회담이다.

‘평화적 핵이용권’이라는 새로운 논점도 만들어냈다. 북한의 잘못된 행동을 벌하고 원천적으로 재발을 방지한다는 이유 때문에 미국이 주장했던 ‘평화적 핵이용 불가’ 원칙은 “너무 가혹하다”는 역풍을 맞았다.

이번 회담의 결과를 보면 북한의 이러한 의도가 정확히 관철되었다.

▲제1항의 미국은 핵무기 또는 재래식 무기로 북한을 공격 또는 침공할 의사가 없다 ▲제2항의 북한과 미국, 북한과 일본은 상호주권을 존중하며 관계정상화 조치를 승낙한다 ▲제3항의 북한에 대한 에너지 지원 제공 ▲제4항의 한반도 영구 평화체제 헙상과 동북아의 항구적인 평화와 안정 등 모든 조항에 북한의 주장인 ‘대외안보위협과 전력문제 해소’ 문제가 포함되었다.

결과적으로 ‘북한이 잘못해서 소집된 6자회담’이 아니라 ‘미국이 잘못해서 소집된 6자회담’으로 모양새가 변질된 것이다. 한마디로 3년 가까이에 걸친 북한의 역전승이다.

김정일 정권 최고 도우미는 남한정부

북한의 이러한 의도를 관철시키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6자회담 참가국은 첫째로 남한이다. 남한 정부는 ‘북한의 핵무기를 제거한다’는 데 목표를 세운 것이 아니라 ‘눈앞에 놓인 현상적 북핵 위기를 제거한다’는 데 중점을 두는 듯했고 ‘뭔가 가시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 잡힌 듯했다.

북핵폐기를 강력히 촉구해도 부족할 판에 “북한의 주장에 일리가 있다”(2004년 11월, 노대통령 LA 연설)고 잘못된 신호를 보내는가 하면, 북한의 평화적 핵이용권에 대한 불가원칙에 대해서도 선후관계를 따져 국민들을 이해시킬 생각은 않고 “우리 정부의 생각은 미국과 다르다”며 다분히 인기를 의식하는 발언(2005년 8월, 정동영 장관)으로 북한의 입지를 계속 강화시켜 주었다.

북한에 대한 200만kW 전력지원 약속은 순진하게도 경수로를 대체하겠다는 의도를 갖고 있었지만, 오히려 북한의 경수로 제공 주장에 동조해 결과적으로 전리품을 확장시켜주는 효과를 낳았다.

남한이 이렇게 북한의 입장을 편들며 감싸고 도니 중국도 북한을 압박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고, 미국 정부 역시 국내외 문제로 인한 지지도 하락으로 인해 해결보다는 보류와 봉합 전략으로 이동하고 있는 듯하다.

결국 북핵문제는 남한의 북한 편들기와 중국의 동조, 미국 행정부의 성과주의로 인해, 공동성명 내용을 하나씩 뜯어보면 ‘북핵폐기’라는 실제 목적을 달성하기가 대단히 어렵게 되었다.

공동선언문이 채택되던 날, 김정일은 오랜만에 비밀파티를 소집했을 것이다. 향후 3~5년은 생존할 수 있는 ‘보증각서’를 획득한 날이기 때문이다.

이제 북한 핵문제를 비롯하여 포괄적인 북한문제 해결은 ‘북한 내부’에서 그 답을 찾을 수밖에 없는, 당연하지만 어렵고 장기적인 원점으로 되돌아왔다.

곽대중 기자 big@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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