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訪中 목적 과거와 정반대로 달라져

북한 김정일의 중국 방문이 임박했다. 그의 이번 방중은 경제난과 북핵문제 등에 따른 국제적 고립, 천안함 사태 등 남북관계 악화에 따른 체제유지용 방문이라는 관측이 주를 이루고 있다. 


과거 김정일은 4차례의 방중을 통해 북·중 협력관계 강화, 중국 개혁개방 성과에 대한 학습 등 나름의 목적을 갖고 중국을 방문한 바 있다. 그러나 이번 방문은 이전과 정반대라는 지적이다.


김정일은 1983년 김일성과 함께 중국을 방문한 바 있으나 김일성 사망 이후 첫 방중은 2000년(5.29~31)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남북정상회담을 보름 남짓 앞둔 5월 29일 김정일은  베이징을 극비 방문,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과 회담했다.


당시 김정일은 이 회담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중간 의견 조율과 북·중 협력관계 강화, 경제원조 문제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 주석과 김정일은 각자 자국의 정치 및 경제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했으며, 장 주석은 “김 위원장의 지도 아래 힘들고 독자적인 투쟁을 벌여 북한 주민들이 국가건설 과정에서 이룩한 성과를 보게 돼 매우 기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일도 “17년 만에 다시 중국을 방문해 매우 기쁘다”면서 “양국 간 전통적인 우호관계를 공유하고 과거 지도자들이 일궜던 우호관계를 계속 발전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듬해 1월 방중(1.15~1.20)의 목적은 중국 개혁개방 성과에 대한 학습이었다.


김정일은 상하이에서 푸동(浦東)지구와 상하이 증권거래소, 창쟝(長江)하이테크 개발 지구, 미국 제너럴 모터스(GM)와 일본이 출자한 NEC, 미국과 합작으로 설립한 상하이 벨(Bell)공장, 순처우 현대농업개발구를 차례로 방문했다.


그는 장 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상하이의 발전 상황에 깊은 관심을 표명하면서 “상하이가 천지개벽”했다며 “개혁개방이 중국의 경제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음이 충분히 증명됐다”고 발언했다.


이후 2002년 김정일은 북한경제에 자본주의 요소를 일부 도입한 7·1경제개선조치를 내놓았다. 또 2002년 9월 신의주를 경제특구로 지정, 현대아산과 협상 중이던 개성공단지구법도 제정하는 등 북한 경제 변화를 이끌어냈다.


2004년(4.19~21) 그는 후진타오(胡錦濤) 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을 비롯한 중국 제4세대 출범이후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했다.


김정일은 당시 후 주석을 비롯한 권력 10위권의 고위 인사들을 두루 만난 것으로 알려졌는데 “우리는 앞으로 계속 인내심과 함께 융통성을 발휘해 적극적으로 6자회담에 참여하고 회담이 성과를 거두도록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며 “북한은 최종적인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견지하고 있으며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한다는 기본입장에 변화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당시 그의 발언은 두 차례의 6자회담이 가시적인 진전을 보지 못한 상황에서 기대를 갖게 하는 대목이었다.


가장 최근인 2006년 방중(1.10~18)에서 김정일은 중국의 대표적인 개방지역인 광둥성과 후베이성의 여러 도시를 방문, IT산업을 중심으로 첨단산업을 집중적으로 시찰한다. 


특히 중국식 시장경제 발전의 상징으로 꼽히는 상하이 푸둥(浦東)지구를 방문한 그는 “천지가 개벽했다”는 말로 중국의 발전에 대해 놀라움을 표시했다. 
 
당시 강석주 제 1부상을 제외하고는 김정일의 경제정책을 설계하고 집행하는 경제브레인들을 대동했던 그는 “급속히 변모된 남방지역의 발전상과 약동하는 중국의 현실은 우리에게 잊을 수 없는 깊은 인상을 남기었다”며 “고도 기술 분야에서 달성한 빛나는 성과들에 대하여 참으로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한편 전문가들은 김정일의 이번 방중 의도와 관련해 천안함 사건에 대한 해명에 주력할 것이라고 예상하면서, 대북지원, 6자회담 재개에 대한 입장조율도 가능성도 크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