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대 前차관]”김정일, 生死 벼랑끝 가야 核포기”

북한이 외무성 성명을 통해 핵보유를 선언한 지 한 달이 넘어가고 있다. 김정일은 왕자루이(王家瑞) 중국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을 접견하면서 회담 재개 조건으로 4가지를 제시했다. 이후 북한 당국은 외무성 비망록을 통해 적대시 정책 포기 등 구체적인 요구조건을 밝혀왔다.

중국을 비롯한 관련국들은 초반 탐색기를 지나 본격적인 회담 재개를 위해 긴밀히 협의하고 있다. 그러나 회담 재개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북한의 요구조건이 워낙 포괄적인 데다 미국은 더 이상의 양보는 없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의 동북아 방문이 큰 고비가 될 전망이다.

<데일리엔케이>는 한반도를 위기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는 북핵문제의 본질을 짚어보고 우리의 대응방안을 검토해 보기 위해, 93∼94년 1차 북핵위기 당시 대북정책을 수립하고 남북협상을 주도했던 대북문제 베테랑 3인을 연쇄 인터뷰했다.

그 마지막 순서로 김영삼 정부 시절 통일원 차관(1993. 3∼1996. 8)을 지낸 송영대(宋榮大) 전 차관을 만났다. 송 전 차관은 1차 북핵위기 당시 남북고위급 회담 대표로 북한과 직접 협상 테이블에 앉아 협상을 진행했다. 그는 공직에서 퇴임하고 현재 <평화문제연구소> 소장으로 연구와 집필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송 전 차관은 남북 정부 간 대화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산 증인이다. 1983년 남북대화사무국 상근대표를 시작으로 적십자회담 수석대표, 남북특사교환 수석대표, 고위급회담 대변인과 대표를 역임하며 역대 정권의 남북협상을 주도했다.

북한 핵보유 선언으로 한반도 안보가 총체적인 위기에 빠졌음에도 ‘평화적 해결’만을 강조하며 무기력하게 대응하고 있는 우리 정부에 이들의 풍부한 경험과 고언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김정일 정권이 핵보유를 선언하고, 6자회담 복귀 조건 등을 내걸고 있다. 핵보유 선언을 통해 김정일 정권은 궁극적으로 무엇을 노리고 있는가?

북한은 이번 핵보유 선언을 통해 네 가지를 노리고 있다. 첫째, 북한은 핵문제와 관련해서 미국으로부터 필요한 것을 모두 얻게 될 경우 핵개발을 포기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핵 보유국으로 가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즉, 이번 선언은 이러한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핵보유 선언은 실제 핵을 갖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

둘째, 6자회담을 앞두고 핵보유 선언이라는 초강수를 두면서 대미 협상력을 높이려는 의도가 있다.

셋째, 북한은 한반도를 둘러싼 미-중 간의 입장 차이를 이용해 미-중 간에 균열을 가져올 목적을 가지고 있다.

이번 선언으로 가장 당황한 쪽이 미국과 중국이다. 북한은 사전에 핵보유 선언을 중국에 알리지 않았던 것 같다. 미국으로서도 북한이 협상용으로 벼랑끝 전술을 쓰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공식적인 핵보유 선언을 단행할지는 몰랐다. 이러한 갑작스런 상황에 대처하는 데 있어서 미국과 중국은 입장을 달리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강경한 대응을 생각할 수 있고, 중국은 유화정책을 생각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는 내부 결속용으로 내놓은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년 말 이후 북한 내부에 권력 이상설이 떠돌았다. 김정일의 후계구도와 관련해서 잡음도 있었다. 그런데다가 북한 경제침체가 지속되고, 주민들 사기가 떨어지면서 핵보유 선언으로 주민들을 결속시키려는 의도도 있을 것이다.

-북한은 김정일의 핵보유 발언과 외무성 비망록을 통해 조건부 복귀의사를 표시했다. 일방적으로 핵보유 선언을 강행하고, 회담재개를 위해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나오는 북한의 전술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북한이 6자회담 전제조건을 제시한 것은 그들이 즐겨 사용하는 협상전술인 ‘조건환경개선론'(남북대화를 담당하는 남한 측 실무자들이 북한 협상전술을 일컫는 용어)에 입각한 것이다. 이 전술은 지난 70년대부터 지금까지 남북대화 과정에서 북한이 꾸준히 사용해왔다. 북측은 회담을 진행하다가 일방적으로 중단시킨 다음, 재개를 요구하는 우리 측에 조건을 들고 나왔다.

▲ 송영대 前 차관

북한의 ‘조건환경개선론’ 협상 전술에는 단호한 대응만이 최선

북한은 ‘회담을 진행하려면 분위기가 좋아야 한다’,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는 구실을 내걸고 툭하면 ‘주한미군 철수’, ‘국가보안법 철폐’, ‘한미합동 군사훈련 중지’ 등의 조건을 제시해왔다. 우리가 북한과의 협상에서 명심해야 할 것은 전제조건을 거부해도 북한 입장에서 회담재개 필요성이 있으면 회담장에 다시 나온다는 것이다. 북한은 조건환경개선론으로 회담을 중단시키기도 하고 다시 나오기도 한다.

-그렇다면 ‘조건환경개선론’ 협상전술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북한은 현재 6자회담의 전제조건으로 ‘폭정의 전초기지’ 발언 해명, 미국 적대정책 포기 등을 요구하고 있다. 회담 전제조건의 하나로 내세우고 있는 ‘체제안전보장 문제’는 6자회담 본회담이 열리면 거기서 논의해야 될 사항이다. 본회담의 의제 중 하나이며, 북한의 핵 폐기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북한의 전제조건 제시는 미국의 양보를 미리 얻어내겠다는 의도인데, 이것은 부당하다. 체제안전보장 문제는 회담장에서 논의할 문제이지, 회담 전에 이야기할 사항이 아닌 것이다.

따라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당사국들은 북한의 전제조건을 단호히 배격하면서 ‘조건 없는 회담재개 원칙’을 견지해야 한다. 조건 없는 방향으로 밀어야 북한의 태도변화를 촉구할 수 있다.

-6자회담이 재개되지 않고, 설사 재개된다 하더라도 성과가 없으면 북핵문제는 유엔안보리로 갈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북한은 북핵문제가 유엔안보리까지 갈 것을 예상하고 핵보유 선언을 한 것인가?

물론 북한은 예상했을 것이다. 1차 북핵위기 때도 한, 미, 일 3국이 협의해서 안보리에 상정했다. 그런 전례가 있기 때문에 북한은 핵보유 선언을 하면 미국이 중심이 돼서 안보리까지 갈 것으로 예상했을 것이다.

안보리 통과를 위해서는 중국의 동의가 필요하다. 1차 위기 때도 안보리에서 대북제재를 논의했지만 중국의 반대로 초기에는 지지부진했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현재 북한에 대한 제재를 배제하고 있다. 유엔안보리에서 중국이 견제를 하기 때문에 별 효과가 없을 것으로 보고 핵보유 선언을 강행한 것으로 봐야 한다.

-6자회담 재개 전망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지금 중국을 비롯해 미국과 한국은 6자회담 성사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김정일이 만족해 할 수는 없겠지만, 회담에 나올 수 있는 명분을 제공하려고 할 것이다. 또한, 회담재개를 요구하는 국제여론이 높기 때문에 북한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회담이 열리는 것 자체가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다. 회담이 재개되어 협상이 타결되겠는가, 핵문제가 해결되겠는가가 본질적인 문제다. 여러 가지 의제들이 협상이 되고 타결되는 것이 중요하지 절차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6자회담이 재개되면 예상 쟁점과 타결 전망은?

첫째는 북한이 농축우라늄(HEU) 핵개발 계획을 갖고 있느냐, 없느냐다. 이 점에 관해 미국은 북한이 농축우라늄 핵개발 계획을 갖고 있으며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미국은 여기에 관한 광범위한 증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북한이 98년 이후 파키스탄으로부터 우라늄 농축을 위한 원심분리기를 수입한 사실과 6불화우라늄을 리비아에 수출한 증거를 확보했다. 그러나 북한은 이런 사실을 전면부인하고 있다.

두 번째는 핵을 폐기한다고 할 때 그 범위와 대상 문제다. 북한에는 영변, 태천 등 여러 곳에 핵 관련 시설이 있다. 과연 어느 범위까지 핵 시설들을 폐기하느냐, 여기에 대해서 북-미 양국이 접점을 찾기가 어렵다.

▲ 송영대 前 차관

세 번째는 핵사찰 방법이다. 미국으로서는 이미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방식으로 철저히 사찰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IAEA 사찰단이 들어가서 의심나는 곳은 다 사찰하려 할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땅굴이나 군사기지도 확인하려고 할 것이다. 북한이 여기에 어느 정도 호응을 해올 것인가가 문제다. 사찰을 받는다 하더라도 극히 제한범위 내에서 사찰을 허용할 것이다. 이것이 큰 문제다.

네 번째는 북한에 대한 체제보장의 수준 문제다.
미국은 북한의 체제보장과 관련해서 ‘북한을 침공하지 않겠다’고 하고 있고, 핵을 완전 폐기하면 경제제재를 해제하고 미-북 수교까지 허용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북한은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북한은 여기에 북한인권문제에 대해서 간섭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까지 포함하고 있다. 미국은 핵문제가 해결되면 그 다음 의제로 북한인권문제를 거론하겠다는 입장이다. 체제 보장의 수준 내용과 관련해서 미-북 간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봐서 6자회담이 재개된다 하더라도 이러한 쟁점을 놓고 보면 타결의 가능성보다 결렬의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미국은 중국을 지렛대로 북한을 회담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북한이 회담을 계속 거부하면 미국은 어떻게 대응할 것으로 보는가?

미국으로서는 회담 재개의 명분을 축적하면서 일정기간 기다릴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생각하는 기한을 넘길 경우 제재의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있다. 또 설령 북한이 6자회담에 나와도 결렬의 상황으로 갈 경우도 마찬가지다. 일단 유엔안보리 결의를 통한 외교적, 경제적 제제를 취할 가능성이 높다.

다음으로는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을 실천에 옮길 것이다. 북한 선박이 미사일, 무기, 위조달러, 마약 등을 가지고 제3국으로 수송할 때 미국을 비롯한 연합국이 이 배를 나포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조치를 취하면서 6자회담에 참여한 다른 5개 국에 대해 공동 제재를 요구할 가능성이 많다.

중국도 결국 대북제재에 참여하게 될 가능성 높아

-공동제재를 미국이 요구할 때 관련국가들이 모두 동의하겠는가?

노무현 정부 입장으로 봐서는 대북 압박을 반대할 것이다. 중국도 일단은 대북 제재를 반대할 것이다. 러시아도 초기에는 부정적 입장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 일본은 미국의 입장에 적극 동조할 것이다. 초기에는 압박과 관련된 5개 국 간에 공동전선 형성이 상당히 어려울 것으로 본다. 이럴 경우 미국은 PSI나 유엔안보리 제재에 있어서 가능한 국제적인 지지를 확보하는 데 주력할 것이다.

대담: 손광주 편집국장
정리: 신주현 기자 shin@dailynk.com

이어지는 기사

[송영대 前차관 인터뷰] 美-中, 대북제재 공동합의 가능성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