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상황 반복돼도 연평도 주민 받아들일 것”

2010년 11월 23일. 북한의 기습적인 연평도 포격 이후 현지 주민 1천500여명은 황급히 섬을 빠져 나왔다. 6·25전쟁 이후 첫 피난민이 발생한 것이다. 육지로 떠밀려 나온 주민들 중 마땅한 거처가 없던 500여명은 인천 연안부두 대합실에서 그야말로 ‘오갈데 없는’ 처지에 놓였다.


당시 연평도 주민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접한 ‘인스파월드’ 박운규 회장은 아무런 조건 없이 주민들을 수용키로 결정했다. 인스파월드는 찜질방, 해수탕, 워터파크 시설을 갖추고 있는 인천 소재 대형 찜질방으로 최대 4천명까지 수용할 수 있다.


거처가 없던 연평도 주민들은 그해 12월 19일 임시 거처인 경기도 김포 미분양 아파트로 옮길 때까지 27일간 찜질방에서 생활했다. 찜질방에는 하루 평균 650여명, 많을 때는 1천300명의 연평도 주민들이 찾았다.









▲박성경 ‘인스파월드’ 경영기획팀장. /김봉섭 기자


당시 각종 언론의 사회면을 장식했던 인스파월드는 그 이후 1년간 각종 우여곡절을 겪게된다. 연평도 주민들에게 쉼터를 제공해 준 선의가 ‘상업적인 이용’으로 매도됐고, 옹진군과는 주민들의 숙식 제공 비용을 놓고 보이지 않는 갈등을 겪었다.


설상가상으로 올해 7월에는 건물 지하 주차장에서 원인 모를 화재가 발생해 한 달 넘게 영업을 중단해야 했다.


연평도 포격 1주년을 하루 앞둔 22일, 박성경 인스파월드 경영기획팀장을 만났다. 그는 박 대표의 둘째 아들이다. 박 팀장은 “연평도 주민들도 평소 고객이셨고, 수용 공간이 부족하다는 뉴스를 접하고 내부적으로 회의를 통해 결정하게 됐다”며 당시 결정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다시는 이런일이 발생해서는 안 되지만, 또 이런 상황이 온다면 그 때와 같은 결정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렇게까지 영업 활동이 힘들어질 줄은 몰랐다”면서도 “당시 결정에 후회는 없다”고 했다.


주민들이 장기간 찜질방에 머무르자 일반손님과 정기회원들의 발길이 끊기게 됐고, 이는 회사 재정난으로 이어지는 결과를 낳았다. 박 팀장은 “처음부터 오래 머물거라는 생각을 못 했기 때문에 중간에 나가라고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고 말했다.


또 당시의 행동이 ‘상업적 목적 때문 아니냐’는 왜곡된 시선도 감수해야 했다. 박 팀장은 “단기간 계실거란 생각에 좋은 일 하자는 취지로 결정한 일이었다”며 답답한 속내를 털어놨다.


인스파월드는 주민들에게 숙식을 제공한 비용으로 옹진군으로부터 4억6천만원을 지원받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옹진군과 예상치 못한 갈등을 겪기도 했다. 주민들이 김포로 거처를 옮겨진 이후 보상 문제가 얘기됐는데, 언론에 공개되면서 오히려 이 부분만 부각된 것이다.


박 팀장은 당시 주민들의 모습에 대해 “당황하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표정이었다”면서도 “아이들이나 어르신들을 먼저 배려하는 주민들의 모습이 너무 좋아 보였다”고 전했다. 또 “할머니들 경우에는 보통 일찍 주무시는데 그러시지 못하거나, 새벽에 깨있는 경우를 순찰 중에 여러 차례 봤다. 그때는 마음이 안 좋았다”고 말했다.


당시 찜질방에서 지냈던 연평도 주민들 중 일부는 지금까지도 가끔 연락을 한다고 박 팀장은 말했다. 그럴 때면 “그런 결정을 하기 잘했다고 생각한다”면서 “그 이후로 연평도를 찾아가지 않았는데, 기회가 되면 한 번 찾아뵙고 싶다”고 했다.









▲박 팀장은 “당시 결정에 후회는 없다”면서도 “이렇게까지 힘들 줄은 몰랐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김봉섭 기자


그는 연평도 포격에 대해 “포격으로 인한 주민들의 트라우마(외상후 스트레스장애) 증상이 여전하다. 국민들이 이런 부분을 더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다”면서 특히 “이 사건이 안보에 대해 다시금 생각할 수 있는 시발점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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