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서도 북한주민 아픔 잊지 않아…통일에 투자할 것”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가 3만 명에 이르고 있다. 물론 정착 과정에서 어려움을 토로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고향을 떠나야 했던 아픔의 상처를 딛고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북한 체제의 억압에서 벗어나고자 사선(死線)을 넘어 온 이들은 한국의 품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도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차분히 한반도 통일을 준비하는 탈북민들도 있다. 특히 북한 특권층만 누릴 수 있었던 사장이라는 직책을 자유민주주의 세계에 와서 직접 맡아보면서 기업을 훌륭하게 일으킨 경우도 있다. 이처럼 기업경영의 경험을 축적하면서 통일 후 고향에 투자를 준비하는 탈북민들이 해외에서도 늘어나고 실정이다.



▲미국 버지니아주에서 6년째 생활하고 있는 탈북민 박호범(가명) 씨가 운영하는 세탁소 내부 모습. /사진=설송아 기자

“미국에 살고 있어도 고향을 잊어본 적이 없어요. 행복할수록 북한 주민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꼭 생각하거든요. 아껴서 저축한 돈을 통일 후 고향에 투자해서 국제시장과 연결된 대기업을 만들고 싶습니다.”

북한 평안남도에서 2008년 탈북, 미국 버지니아주에서 6년째 살고 있는 박호범(가명) 씨가 지난 7월 데일리NK 기자와 만나 밝힌 희망적인 메세지다. 그는 현재 미국 버지니아주에서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경영을 시작한 조그마한 가게는 지역 주민들의 신뢰를 확보하면서 올해는 크게 확장됐다. 함경북도 옷수선점에서 기술을 익혔던 아내의 알뜰한 바느질 솜씨 때문에 미국 현지인들은 ‘코레안 코레안 최고’라고 호평을 쏟아냈다고 한다. 

이런 성공적 미국 정착에도 박 씨는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때문에 그는 한국에서 직접 주문해서 가게 건물 중심에 한반도 지도가 새겨진 깃발을 내걸어 놓았다. 힘들고 지칠 때마다 대한민국 지도가 그려져 있는 깃발을 보며 힘을 내곤 한다는 것이다. 

[다음은 박호범(가명) 씨와의 인터뷰 전문]

-탈북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

고난의 행군(대량 아사 시기)이라고 말하는 1990년대 처음 빵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석탄 로를 설치하고 계란빵을 밤새워 구워 장마당에 내다 팔면서 생계를 이어갔다. 점차 장사요령이 생기면서 나름대로 돈은 적지 않게 벌었다. 2000년대 들어 저축한 돈으로 크게 장사를 해보고 싶은 마음에 단고기(개고기) 식당을 개업했다.

음식점이라 다른 장사보다 안정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보면 순진한 생각이었다. 식당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간부들의 노골적인 뇌물요구가 많았다. 모든 간부들에게 만족을 주지 못해서인지 어느 날 영업허가를 받지 않은 식당이라며 압박이 들어왔다.

식당이라면 번듯한 건물 안에 종업원도 몇 명 고용해야 했지만 당시 운영하던 식당은 부엌과 창고 부지를 이용해서 부부가 운영하는 수준이었다. 인민위원회에서 편의봉사 영업허가를 받으려면 적지 않은 뇌물이 필요했던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식당 영업으로 몇 년 동안 벌어들인 돈을 하루아침에 사기까지 당하고 말았다. 이런 북한 사회에서 더는 살지 못하겠다는 생각에 압록강을 헤엄쳐 도강(渡江)하고 말았다.

-미국에 오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탈북한 이후 중국 도문(圖們)에서 개 도살업자에게 고용되어 일했다. 신분이 없다는 약점 때문에 월급 200위안(약 3만 4000원)밖에 못 받아도 제대로 된 항의도 못했다. 더는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브로커를 통해 라오스를 거쳐 태국에 도착했다. 한국에 가고 싶었지만 미국이 더 궁금했다. 수십 년을 미제는 승냥이라고 교육받았기 때문이다. 궁금증을 해소하고 싶다는 단순한 이유였다. 

난민으로써의 지위를 인정받고 미국으로 떠날 때 비행기 티켓은 한국처럼 무료가 아니었다. 미국은 탈북민을 이민으로 받아준다. 티켓가격은 미국정착 후 3년 동안 분할해서 지불했다.
 
-미국정착기간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무엇이었나?

미국에서 처음으로 배운 것은 인내와 배려심이다. 차를 운전할 때나, 길을 걸을 때나 항상 상대에게 양보하면서 미소로 인사를 보낸다. 북한에서는 서로 경계하며 살았었는데, 정말 미국의 문명 앞에 그대로 녹아버렸다.

언어를 잘 몰라 처음에는 청소 일만 열심히 했다. 그러다가 언어를 공부해야겠다고 마음먹고 회사에 일하는 시간을 조정해달라고 하니, 흔쾌히 허락해줬다. 미국 사회는 이처럼 개인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최대한 보장해줬다. 북한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인권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다가 미국에서 자연스럽게 배운 것 같다.

특히 스시 식당에서 일할 때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러니까 근무시간 8시간 외 몇 분 몇 초 더 일하거나 야근을 할 경우 정확히 계산해 추가 비용을 받았다. 자본주의경제 시스템이 투명하다는 점을 깨달았고, 이런 점에서 때때로 월급을 받지 못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북한식 사회주의 경제를 다시 돌아보게 됐다.



▲탈북민 박호범(가명) 씨가 운영하는 미국 버지니아주에 있는 가게 건물에 한반도 깃발이 휘날리고 있다. /사진=설송아 기자

-가게건물 중심에 한반도 깃발이 휘날리는 걸 봤다. 어떤 의미인가?

미국에 처음 정착하면서 ‘나는 누구인가’를 생각하게 됐다. 정체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 부탁해 한반도 지도가 있는 깃발을 주문했다. 남북을 아우르는 한반도 깃발은 통일을 의미한다. 정착하면서 힘들 때마다 그 깃발을 보면서 힘을 얻었다. 깃발 안에 내 고향도 있다. 고향을 싫어서 떠난 것이 아니라 체제 때문에 떠난 것이 탈북자들의 마음이다. 김정은 체제가 무너지고 남북이 통일되면 반드시 가야 할 땅이라고 생각한다.

지난해 가게를 개업하면서 제일 먼저 한 일은 깃발을 높이 거는 일이었다. 당당히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가게가 부흥하면서 한반도 깃발을 보는 지역 주민들이 많아졌다. 또한 알뜰하고 꼼꼼한 아내의 바느질 솜씨에 ‘코레안, 코레안 최고’라는 호평도 자자하다. 말없이 남편의 뒤를 따라주는 아내가 고맙다.

앞으로 가게를 더 확장해서 부동산업을 함께 할 계획이다. 저축한 돈은 통일되면 고향에 투자해서 국제시장과 연결된 대기업을 꾸려보는 것이 내 인생의 마지막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