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北 싱가포르 회동, 08년 北核 분수령

미국과 북한이 7일 또는 8일 싱가포르에서 양자 회동을 가질 예정이어서 북한의 핵 프로그램 신고 지연으로 교착상태에 빠진 6자회담 진전 여부가 주목된다.

톰 케이시 국무부 부대변인은 4일 기자간담회에서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싱가포르에서 북한 김계관 외무성 부상을 만나려고 한다”면서 “회담은 7일 예정돼 있으나 8일에 열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회담 내용과 관련, “핵 신고 문제와 진행되고 있는 북한 핵시설 불능화 과정, 북핵 6자회담 다음 단계 등을 논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말로 예정된 핵 프로그램 신고를 계속 지연시켜온 북한이 이번 양자 회동에서 새로운 방안을 내놓을지가 관심이다.

미국과 북한은 지난해 6자회담 ‘2∙13 합의’와 ‘10∙3 공동선언’을 통해 지난해 말까지 북한은 영변 핵시설 불능화와 모든 핵 프로그램을 ‘완전하고 정확하게’ 신고하고 미국은 이에 대한 상응조치로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하는 절차에 들어가며 에너지 지원 등 정치∙경제적 인센티브를 제공키로 합의한 바 있다.

하지만 미국은 ‘모든 핵 프로그램의 완전하고 정확한 신고’의 요구안에 북한의 플루토늄 추출양 및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UEP), 시리아 핵협력 의혹에 대한 신고를 포함시키는 입장인 반면, 북한은 UEP 및 시리아 핵 협력 의혹을 부인하며 핵 신고를 거부하고 나서 6자회담이 3개월 이상 공전돼 왔다.

이후 미국과 북한은 지난달 ‘제네바 회동’을 통해 서로간의 입장을 전달한 후 뉴욕채널 등을 통해 입장차를 좁혀온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이번 회담을 통해 핵 신고 내용에 대한 최종문안을 도출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美-北, UEP·시리아 핵협력 ‘신고’ 합의 내용 따라 결과 달라져=미-북이 절충점을 찾을 경우 6자회담은 일정 기간 다시 활기를 띨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북한이 시종일관 부인해온 UEP와 시리아 핵 협력 의혹에 대해 어느 수준에서, 어떤 형식으로 합의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미국과 북한이 뉴욕채널 등을 통해 협상을 진행해왔고, 북한이 이번 싱가포르 회동에 적극적이었다는 점을 미루어 볼 때 핵 신고서에 플루토늄뿐 아니라 UEP와 시리아와의 핵 커넥션 의혹 항목을 포함시키는데 양측이 접점을 찾은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미국은 그동안 핵신고의 핵심 쟁점 사안에 대해 ‘비밀신고’ ‘분리신고’ 등을 포함한 간접신고 방식을 제안했고, 북한은 이를 검토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의장국인 중국은 ‘상하이 코뮤니케’ 방식의 신고방안을 제안, 미-북 양국을 적극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이 같은 간접신고 방식에 북한이 어느 정도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와 관련 유호열 고려대 교수는 힐 차관보의 ‘진전된 내용이 없으면 만나지 않겠다. 북한에 분명한 답을 들어야 한다’는 언급을 예로 들며 “싱가포르 회동이 결정됨에 따라 미북간 ‘합의’가 이뤄졌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이는 곧 북한이 미국이 제시한 (UEP와 시리아 핵협력 등에 대한)간접시인 방식을 받아들인 것”이라며 “미국은 합의 이후 곧바로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 등의 조치에 들어가 6자회담의 모멘텀을 이어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북한이 이번 회동을 먼저 요청한 것으로 볼 때 이번 회담이 진전 없이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며 “북한은 남한 총선과 한미 정상회담 전에 2단계 해결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는 모양새를 갖추기 위해서라도 변화된 입장으로 회담에 나설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UEP와 북-시리아 핵 커넥션 의혹 부분에서 미∙북 양측의 입장이 맞서 최종 문안 작성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진통이 예상된다.

UEP개발 의혹과 관련, 파키스탄으로부터 구입한 원심분리기와 러시아 등으로부터 밀수한 알루미늄관에 대한 자료를 축적하고 있는 미국은 북측의 성의 있는 해명을 요구해 왔다. 반면 북한은 관련 사실을 전면 부인해왔다.

케이시 부대변인도 이날 “형식보다 실체가 중요하다”면서 “실체가 있는 신고가 되기 위해선 전면적이고 완전한 신고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핵 신고서에 담기는 내용이 3단계 북핵 폐기단계에서 검증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낙관적인 기대를 내놓기엔 이르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신고 내용에 따라 북한군 시설이 모두 검증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점에서 그동안 ‘부인’으로 일관해온 북한이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케이시 부대변인도 “힐 차관보가 그의 서류가방에 완전한 핵 신고서를 갖고 귀국할 것으로 믿지는 않을 것이며, 이번 회담에서 최종적인 해결이 있을 것으로 고대하지 않는다”고 밝혀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6자회담, 진전이냐? 공전이냐?=만약 북한이 핵신고에 성의를 보인다면 미국은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등의 수순에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테러지원국 해제 여부는 북한이 지난 6개월 사이에 테러에 관여한 기록이 없고, 테러를 지원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반테러 관련 협정에 가입하면 언제라도 가능하다는 것이 미 부시 행정부의 입장이다.

다만, 미국과 북한이 어떤 수준에서, 어떤 방식으로 합의하느냐에 따라 미국 내 여론과 강경파들이 어떻게 반응할지가 큰 변수로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경우에 따라 테러지원국 해제와 관련, 미 의회에서 발목이 잡힐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또 그동안 북한이 보여온 대미 협상 과정을 분석해 볼 때도 지나친 낙관은 금물이다. 지난 3월 ‘제네바 회동’ 당시에도 미국과 북한은 “아주 훌륭한 협의”라고 할 만큼 분위기가 좋았으나 이후 북한은 UEP등 관련 사항을 또다시 전면 부인하면서 미국을 압박했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관계자는 “북한과의 협상은 다 되는 것 같아도 마지막 하나 때문에 깨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면서 “아직까지도 이견이 있는 부분이 한, 두 가지가 아니어서 해법이 마련될지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제네바 회동 당시에도 (UEP 등 문제에) ‘합의’에 이르지 못했으므로, 싱가포르 회담도 결과는 지켜봐야 안다”는 입장을 보였다.

만약, 2월 ‘베이징 회동’, 3월 ‘제네바 회동’에 이어 싱가포르 회동을 통해서도 미국과 북한이 실질적인 성과를 보여주지 못한다면 북핵 6자회담은 장기 공전 상태에 빠질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내 여론과 강경파의 비판이 거세지면 부시 행정부 임기 내 북핵 해결이 사실상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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