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北회담 ‘첫고비’ 넘었지만 갈길 멀어

양자접촉으로는 4년 만에 열린 미북 관계정상화 실무회담이 적대 관계 청산을 위한 ‘첫 단추를 순조롭게 뀄다’는 평가 속에 6일(현지시각) 공식 종료됐다.

미국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사진 右)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회담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양국은 2·13합의의 초기이행 목표가 달성될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기대감을 갖게 됐다”고 밝혔다.

북한측 대표인 김계관(사진 左) 외무부 부상도 회담을 마친 뒤 숙소인 맨해튼 밀레니엄플라자 호텔에서 기자들과 만나 “조미(북미) 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한 여러 현안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며 “분위기는 좋았고, 건설적이었으며 진지했다”고 말했다. 8시간 진행된 회의에서 양국 대표들은 ‘할말은 모두 했다’는 반응이다.

물론 이번 회담이 상호 탐색전 성격이 강했던 만큼 양국이 하고 싶은 말을 한 것이라는 냉정한 평가도 나온다. 핵 폐기 초기이행에 대한 양국의 이행의지가 강한만큼 이번 회담도 별 장애가 없었지만, 갈길이 아직 멀다는 지적이다.

◆ 미북 관계정상화 언제쯤 가능한가 = 이번 회담에서 가장 관심을 모았던 미북간 관계정상화를 위한 논의는 예상처럼 빠른 시일 내에 관계정상화를 바라는 북한과, 북핵 폐기가 우선돼야 한다는 미국측의 입장을 확인하는 자리가 됐다.

힐 차관보는 외신기자회견에서 “우리는 가능한 한 빨리 (북핵 폐기를) 진행하기를 바란다. 빠를수록 더 확고하게 (관계정상화가) 진행될 것”이라며 “하지만 북한에서 최후의 핵물질이 제거될 날이 언제인지는 예측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양국) 수교이전에 양측이 각국 수도에 연락사무소를 두는 것은 미국과 중국과의 수교협상에서 나온 성공적 모델”이라며 “하지만 북한은 이런 방식을 받아들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들은 바로 외교관계로 가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북 관계정상화 협상일정과 관련 “만약 6개월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문제가 생긴 것이다. (향후 일정은) 수개월 단위로 진행되는 것이지 연단위가 아니다”면서 “(수교문제는) 비핵화 문제와 확고히 연결된 문제라는 점을 분명히 말해두고 싶다”고 못박았다. 북한의 핵폐기에 대한 일정한 가시적 조치 없이 북한이 원하는 외교관계 복원은 불가능 하다는 것.

미국과 북한은 지난 1994년 제네바합의서를 통해 양국의 관계 정상화를 위해 통신, 금융거래 및 무역 투자제한을 완화한 뒤 쌍방의 수도에 ‘연락사무소’를 개설하기로 합의했었다.

그러나 북한이 이번 회담에서 연락사무소 개설을 거부한 것은 미국 공관의 개설이 가져올 내부 정치적 파장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뚜렷한 실익이 없는 조건에서 공관 개설은 내부적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것 같다.

반면 미국의 경우 관계 정상화에 대한 정치적 부담 없이 평양에 연락사무소 건설을 통해 관계개선의 상징적 조치를 취하고 북한 실정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 테러지원국 삭제·대적성국 교역법 종료는? = 테러지원국 삭제와 대적성국 교역법 종료 문제는 그동안 북한이 미국에 가장 우선적으로 요구해온 사안이다. 이번 회담에서도 양국은 테러지원국 명단과 관련해 정치적 측면뿐만 아니라 법률적 측면, 납치자 문제까지 다양하게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힐 차관보는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삭제 논의에 대해 “구체적인 대화내용을 말하지 않겠다”면서도 “하지만 북한이 일본과의 좋은 관계를 이루는 과정에서 이문제가 중요하다는 점에 대해 북한측이 이해했다”고 밝혔다.

미국은 이 문제와 관련해 워킹그룹 회의 첫날 법적 제재의 해제를 위한 절차문제를 북측에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제재는 미 행정부 재량사항으로 법적 요건을 만족시켜야 해제가 가능하다.

또한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의 경우 6개월 간 테러지원 증거가 없고 향후 테러지원을 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두 제재 모두 정치적 성격이 짙다. 관계정상화가 법적 요건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1979년 트리폴리 국제공항 방화사건으로 테러지원국이 된 리비아의 경우 2003년 12월 핵 포기 선언을 한 후 6개월 만에 연락사무소 개설 등 실질 외교관계 복원에 성공했다. 이어 2004년 9월 대적성국교역법에 따른 자산동결 조치도 해제됐다.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는 핵 포기 후 2년 6개월 만인 2006년 5월 대사관 개설 등 국교정상화와 함께 이뤄졌다.

북한이 테러지원국 삭제와 대적성국 교역법 종료를 진정 바란다면 염두에 두어야 할 대목이다.

◆ 북한이 먼저 HEU 문제 해결 거론한 배경은 = 북한이 존재 자체를 부인하고 있는 HEU 문제는 2·13 합의 이후 북핵 폐기 과정에서 최대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돼 왔다.

미국은 HEU 문제와 관련해 북한이 원심분리기와 알루미늄 튜브 등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물질들을 비밀리에 사들인 증거를 제시했고, 북한은 이에 대해 “증거가 없다”며 반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북한은 먼저 ‘HEU 문제 해결 용의’ 의사를 밝혔다. 이와 관련 힐 차관보는 “HEU 문제에 대해 긴 논의를 했다”며 “북한의 최종적인 핵프로그램 신고 전에 이 문제를 상호 만족할 수준으로 해결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 대해 논의했다”고 말했다.

관계개선 실무회의에 앞서 김계관 부상은 뉴욕에서 열린 비공개 토론회에 참석, “미국의 관심분야를 인식하고 있으며 HEU 문제도 명확히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와 관련, 힐 차관보는 또 HEU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북미 양측이 전문가회담을 갖기로 했다고도 밝혔으나 전문가 회담이 언제 어떤 형태로 열릴 것인지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HEU문제를 제외하고는 북한의 비핵화 과정에 들어갈 수 없다”며 ‘선(先)HEU 규명, 후(後) 비핵화 돌입’을 역설, HEU 핵프로그램 문제를 미심쩍은 상태로 남겨놓은 채 영변핵시설 등 플루토늄 핵프로그램만을 대상으로 불능화에 나서지는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북한의 초기단계 조치 이후 모든 핵과 시설의 범위를 신고할 때 HEU 문제에 대해 성실한 신고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2·13합의는 당장 시련을 맞게된다. 그러나 미북 양국 모두 기존 태도를 고수하면서도 협상 여지를 남기고 있어 절충 가능성도 적지 않다는 관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