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이산상봉 ‘거래’ 요구…정부, 두가지 원칙 확실하게

북한은 금강산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시작되자마자 남측의 ‘대가’를 요구하고 나섰다.

북한 조선적십자사 장재언 위원장은 27일 대한적십자사 유종하 총재와의 면담에서 “요번 이산가족 상봉은 북측에서 특별히 호의를 베풀어 재개한 것인데 남측에서는 화답을 생각해보지 않았느냐?”고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장 위원장이 거론한 남측의 ‘화답’이란 쌀․비료 등 대북지원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상봉행사가 시작되자마자 서둘러 남측의 지원부터 요구한 것은 그만큼 내부 상황이 어려운 탓이다.

북한 내부 소식통들은 올해 북한의 작황 사정이 2000년대 이후 최악이 될 것이라고 한다. 황해도 평안도 지역의 쌀농사는 평년작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주민들의 주식이라고 할 수 있는 옥수수 농사 역시 가뭄과 수해로 목표량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고 한다. 북부지역의 감자농사는 ‘150일 전투’ 동원 때문에 수확 시기를 놓쳤다는 소식이다.

최근 북한을 다녀온 김순권 국제옥수수재단 이사장은 “지난 12년간의 옥수수 작황 가운데 올해가 가장 나쁘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방북한 인도주의 지원단체 월드비전 관계자들 역시 비료 부족으로 들판의 벼 이삭들이 제대로 여물지 못한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북한 당국은 내부의 어려움을 설명하면서 인도적 지원을 요청하지 않고, 이산가족 상봉은 남측에 베푸는 ‘공화국의 호의’라며 합당한 거래(?)를 요구해왔다. 대가를 치루지 않는다면 앞으로 이산가족 상봉은 기대하지 말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장 위원장은 26일 환영사에서도 “반세기 이상 북과 남으로 갈라져 있던 혈육들의 유대가 다시 이어질 수 있는 것은 바로 6․15의 넋인 ‘우리 민족끼리’의 정신 때문”이라며 “6․15선언과 10․4선언의 이행만이 이산가족의 앞날을 보장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이러한 습성은 지난 10년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남긴 잘못된 학습효과 때문일 것이다. 그동안 이산가족 상봉과 쌀·비료 지원을 ‘패키지’로 묶어 처리하다보니, 모든 인권문제 중에서도 근본이 되는 혈육이 다시 만나는 자리에서도 주판알부터 튕기는 못된 버릇을 갖게 된 것이다.

국군포로와 납북자 가족을 포함해서 남쪽에서 상봉을 신청한 인원만 해도 12만7343명이다. 그중 이미 3만 9천명이 사망했다. 신청자의 76%가 70대 이상의 고령자다. 최근에는 한 달에 4천명 이상이 북쪽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품고 세상을 뜨고 있다. 이번에 상봉행사에 참여한 가족은 고작 196 가족 677명에 불과하다.

때문에 상봉을 대가로 남측의 지원을 요구하는 북한의 태도는 ‘낯 두껍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북한은 죽기 전에 혈육의 얼굴이라도 한번 보고 싶어 하는 이산가족들과, 만성적인 굶주림에 시달리는 북한 주민들을 동시에 염두에 두어야 하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양심’을 둘 다 거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정부는 비록 그 해법이 어렵더라도 대북지원의 원칙을 잘 세우고 현명하게 문제를 처리해가야 한다.

첫째, 이산가족 ·국군포로· 납북자 문제는 근본적으로 인권 범주에 속하는 것이다. 따라서 남북간에 정치 군사적 긴장이 조성되는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이산가족상봉이 영향을 받지 않도록 정례화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할 것이다. 물론 김정일 집단을 상대하면서 순조롭게 해결과정을 걷기는 어렵다. 하지만 정부 당국자들은 주어진 현실에서 최대한 지혜를 짜내야 할 것이다.

둘째, 인권문제는 인권문제로 연계시키는 것이 현명하다. 북한주민들은 먹고 생존할 권리, 즉 인권의 기본이 되는 ‘식량권’이 중요하다. 마찬가지로 이산가족 국군포로 납북자 문제는 남북관계에서 발생한 인권문제다. 따라서 우리는 여성, 아동 등 북 주민 취약계층에게 식량권 해소를 위해 쌀 비료, 의약품 등 인도지원을 해주고, 북한은 이산가족 납북자 국군포로 문제를 국제규범에 따라 해결하는 방식을 택하는 방식이 현실적일 것이다.

또 이산가족, 국군포로 납북자 문제는 지난 10년처럼 북한당국의 ‘선처’에 기대해서는 안되고, 이 문제 역시 인도 지원과 함께 국제연대를 통해 북한정권을 지속적으로 압박하는 ‘투 트랙’ 해결방식으로 가야 할 것이다.

그래서 김정일 정권으로 하여금 국제규범을 지키면 확실히 이익이 되고, 지키지 않으면 확실히 괴롭다는 사실이 뚜렷이 각인되도록 길들여 가야 한다. 이것이 조금씩 북한을 ‘정상국가’로 만들어가는 방안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