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학] “우리가 민족공조 제물인가?”

탈북자들이 분노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못 참겠다고 말한다. 지난해에는 탈북자들 중 상당수가 범죄자라는 보도가 나오더니, 최근에는 탈북자 100명을 간첩혐의로 내사하고 있다는 정보기관 문건까지 언론에 유출됐다.

13일에는 탈북자 단체 40여 명이 국가정보원까지 몰려가 시위를 벌였다. 지난주에는 중앙일보 사옥에 들어가 책임자 면담을 요구하면서 사옥 경비관계자와 거칠게 몸싸움을 벌였다. 중앙일보가 면담을 수용하면서 사태는 진정됐다.

탈북자 단체들은 이날 ‘탈북자 인권 및 생존권 사수 비상대책회의’를 구성했다. 대책회의 결성을 통해 ‘탈북자 간첩 100명 내사설’을 언론에 유출한 정부의 책임을 끝까지 묻겠다고 밝혔다.

대책회의를 이끌고 있는 박상학 <북한민주화운동본부> 사무국장을 만나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탈북자들의 입장을 들어봤다.

-정보기관인 국가정보원까지 찾아가서 항의시위를 진행한 이유는

발단은 중앙일보 6월 4일자 톱기사 ‘탈북자 100명 간첩혐의 내사’가 문제였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국가정보원이 제공했다. 탈북자에게 엄청난 피해를 줄 수 있는 비밀자료를 언론에 유출한 이유가 무엇인가. 다분히 의도적이라고 판단된다. 우리는 왜 정부 기관이 이러한 국가 기밀을 유출했는지 듣고 싶었다.

그래서 국정원에 찾아 간 것이지, 싸우러 간 것이 아니다. 피해를 봤는데 이유도 모른다면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이고 대한민국을 사랑한다. 남한 사람보다 더 애국심이 높다고 나는 확신한다. 우리는 북한 사회를 경험했기 때문에 이 사회가 얼마나 소중한지 잘 안다. 남한이 북한이나 좌익세력에게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사명감이 여기 사람보다 더 투철하다. 그런데 간첩 100명 내사라는 말이 얼마나 황당한가.

-국정원은 어떤 반응을 했는가

우리는 책임자 면담을 요구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차후에 면담을 주선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이번 사건은 결코 그냥 넘어갈 수 없다. 책임 있는 해명과 유출 당사자 처벌을 요구하겠다.

정보기관의 임무와 정보유출은 다른 문제

-정보기관이 간첩 및 위장귀순자를 내사하는 것은 본연의 임무라고 말하고 있는데. 실제 간첩혐의를 인정하고 자수한 사례도 있지 않은가.

당연하다. 국정원은 정보기관의 임무를 다해야 한다. 탈북자들 속에 그런 간첩이 위장귀순하는 것은 반드시 가려내야 한다. 탈북자 내부에 간첩이 있다면 우리가 먼저 잡아서 신고할 것이다. 그런데 묘한 것은 참여정부 들어 간첩이라고는 단 한 명도 잡지 않던 국정원이 탈북자 100 명 간첩 내사 자료를 언론에 흘린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혐의가 확정되지 않은 100 명도 문제지만 탈북자 전체가 명예를 훼손당하게 됐다. 그렇지 않아도 적응이 어려운 탈북자들을 집단 따돌림 대상으로 만들고 있다. 수사가 문제가 아니라 비밀문서 유출이 문제이며 여기에 정치적 의도가 다분하다는 것이다.

-어떤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보는가.

지금이 매우 묘한 시점이다. 6.15 5주년을 맞아 통일부 당국자와 친김정일 좌익단체들이 단체로 평양에 올라갔다. 북한 김정일 정권에게 탈북자는 눈엣가시다. 우리를 ‘민족반역자’라고 했다. 우리를 간첩으로 몰아 탈북자들에 대한 인식을 악화시키는 정책을 쓰면 김정일만 좋아한다.

김정일에 점수나 따려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그런 의도가 있던 없던 간에 결과적으로는 탈북자를 천대하는 정책을 통해 북한과 관계를 개선하려는 정부의 잘못된 정책이 불러온 사건이다. 비극이다.

탈북자들 직장에서 쫓겨나고, 가족모임에도 배제당해

-유출책임자는 밝혀냈는가.

아직 밝혀내지 못했다. 이것은 우리가 할 일이 아니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탈북자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피해를 보고 있는가.

인천에서 탱크로리 용접하는 일을 하던 탈북자들이 직장에서 간첩이 아니냐는 말을 듣고 일을 그만 둔 적이 있다. 자꾸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니까 일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식당에서 일하는 탈북자에게 주변에서 ‘음식에다 뭐 타지 않았냐’고 모욕을 준 적도 있다고 한다. 남한 여성과 결혼한 탈북자 출신 남편에게 친척들이 자꾸 물어본다고 한다. 가족모임에도 제외시킨다는 것이다. 언제 이혼당할지 알 수 없다.

-향후 대책회의 활동계획은.

국정원에 책임자 면담을 신청해 놓은 상태다. 유출 책임자를 처벌하고 실추된 명예를 회복할 수 있도록 적절한 조치를 취해줄 것을 요구하겠다. 대국민 사과 성명이 방법이 될 수 있다. 중앙일보에 대해서도 변호사를 선임해서 명예훼손 혐의로 법적 대응을 하겠다. 우리는 끝까지 할 것이다.

-참여정부 탈북자 정책에 대해서

정부는 올해 1월 1일 탈북자 정착개선안을 내놨다. 그런데 탈북자 정착이 개선될 수 있도록 만든 것이 아니다. 정착 잘하게 하려고 정착금을 줄였는가. 무엇보다 탈북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교육이나 일자리 대책이다. 교육이나 일자리에 대한 구체적인 프로그램이 절실하다.

그런데 이런 것은 빠져있다. 이것이 어떻게 정착 개선안인가. 탈북자들은 참여정부 정책에 불만이 많다. 남북관계를 훼손하지 않기 위해 탈북자 입국까지 제한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정부에게 정말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제발 우리를 민족공조의 제물로 삼지 말아달라.

인터뷰/정리= 신주현 기자 shin@dailynk.com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