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홀로서기 성공하기엔 北위기 상황이…

37년간 철권통치를 휘둘렀던 김정일이 17일 급병으로 사망함에 따라 북한은 김씨 가문의 세번째 독재자 김정은 아래 놓이게 됐다.  


조선중앙TV 등 북한 매체들은 19일 정오 ‘중대방송’을 통해 김정일의 사망소식을 전하며 “우리 혁명의 진두에는 주체혁명위업의 위대한 계승자이시며 우리 당과 군대와 인민의 탁월한 영도자이신 김정은 동지께서 서 계신다”고 주장했다.


이어 “우리는 김정은 동지의 영도따라 슬픔을 힘과 용기로 바꾸어 오늘의 난국을 이겨내 주체혁명의 위대한 새 승리를 위하여 더욱 억세게 투쟁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 매체들이 김정은을 ‘영도자’로 표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정일 사망으로 인한 권력공백 예방 차원에서 김정은의 존재를 신속하고도 적극적으로 선전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중국식 집단지도 체제 경험이 없는 북한에서 최고 지도자의 권위는 그야말로 절대적이다. 따라서 30세도 안 된 김정은이 과연 김정일의 뒤를 이어 절대권력의 자리를 안정적으로 계승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김영환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은 “김정일이 자신의 사망 이후 대비를 충분히 해놓았고  2중 3중으로 장치를 해 놓았기 때문에 당장 북한 체제의 본질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랫동안 1인 독재 시스템을 공고히 유지한 탓에 김정일 사망 자체만으로 체제 균열이 발생할 가능성은 적다는 것이다. 


그는 “장기적으로 김정은의 권력유지 가능성은 10~20%에 불과하다”면서도 “김정은이 후계자로 공식 지명된 것은 3년 정도 되었지만 내부적으로는 좀 더 오랫동안 후계수업을 받았으며 어느정도 정치적 기반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 연구위원은 김정은에게 맞설 특별한 정적(政敵)이 없다는 점을 꼽으며 단기적인 불안요소가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장성택, 오극렬, 김정남 등 주요 인물들이 김정일 감시 아래서 권력을 키우거나 결집시킬 기회를 갖지 못했기 때문에 당장 김정은에게 도전할 힘이 없다는 것이다.


김경희, 김옥, 김정철 등이 김정은의 맞수로 부각될 가능성도 낮은 것으로 점쳐진다. 이들은 본인 스스로가 권력자가 되겠다는 정치적 지향점이 뚜렷하지 않을 뿐 아니라, 권력 형성에 도움이 되는 군부나 공안기관의 핵심간부들과 인간관계도 협소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북한 내부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상황을 분야별로 살펴보면 앞으로 김정은이 가야할 길이 만만치 않아 보인다.


일단 최근 10여년간 김정일에 대한 민심이 바닥을 쳐 왔기 때문에 김정은이 가져갈 ‘후광’도 별게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북한 내부에서는 ‘최고지도자’의 죽음을 대하는 태도부터가 예전과 다르다는 소식도 있다.


19일 신의주 소식통은 데일리NK와 통화에서 “이번에는 수령님(김일성) 서거 때와는 완전히 분위기가 다르다”면서 “그 때는 서거소식을 들을 사람들이 모두 그자리에 주저 앉아 땅을 치며 통곡했는데, 오늘은 사람들이 슬금슬금 눈치만 보고 있다”고 전했다.


이 소식통은 또 “어느 집에서는 간간히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기도 하지만, 국가에서 시장 문을 닫고 유동인구를 통제하는 바람에 ‘장사는 어떻게 하냐’ ‘쌀은 어디가서 사먹냐’고 혼잣말을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함경북도 소식통도 이날 데일리NK와 통화에서 “모두가 숨을 죽이고 있다. 앞장서서 울고 불고 하는 사람도 없고, 좋다고 웃고 다니는 사람도 없다. 다들 무슨 일이 생길지 불안해 하며 상부의 지시만 기다리고 있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일각에서는 김정은이 2012년 강성대국 진입 선언을 유보할 가능성도 점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책연구기관 연구원은 “최고권력자의 사망을 봉건시대 국상(國喪)처럼 받아들이는 북한에서 ‘강성대국’ 축포는 어울리지 않는다”면서 “김정은의 입장에서는 국상을 핑계로 2012년 강성대국 부담을 덜어내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평양 10만호 주택 건설 등 강성대국 선전용 사업이 지체되고 있는 상황에서 무리수를 둘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현재 북한은 원화가치 폭락으로 인해 시장 쌀가격과 시장 환율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이에 따라 내년 1월 1일 발표될 신년 공동사설에 ‘강성대국’은 모두 빼고 ‘김정일 유훈 관철’을 집중 강조할 가능성도 있다. 김정은 스스로가 1월 8일 본인의 생일 행사를 축소하거나 폐지함으로써 간부들과 일반 주민들에게 ‘김정일 유훈 관철’이라는 새로운 정치구호를 제시하는 효과를 노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정일 유훈이라는 것이 형식상 ‘선군정치’ 밖에 없으며, 내용상으로는 ‘반(反)자본주의, 반시장주의’로 귀결되고 있는 만큼 일반 주민들이 얼마만큼 호응할지는 미지수로 남는다.


남북관계 및 대외관계 분야 역시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중국의 경우 아직까지 김정은 체제에 대해 암묵적인 지지를 보이고 있지만,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 문제 등 북한의 전략적 목표에 대해 전향적인 태도를  요구하고 나설 가능성도 있다. 김정일이 지난 10여년간 핵실험, 장거리 로켓 발사 등으로 중국을 난처하게 만들었던 전례를 고려해 초반부터 김정은을 적극적으로 유인하는 압박전술을 사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미 양국 정부가 대북공조 원칙에 따라 김정은을 상대하기 위한 대북전략 수정에 돌입할 경우 김정일 생전에 요구했던 6자회담 재개나 대규모 경제 지원 등도 당분간 기대하기 어렵게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