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북자 고통 외면하는 인권위, 北 인권 침해 동참하는 격”

“북한에 48년째 억류돼 계신 아버지를 찾기 위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냈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고도의 정치적·외교적 사안이라 진정을 각하한다’는 것이었습니다. KAL기 납치 피해자 가족의 고통을 외면하는 대한민국, 이곳이 인권 가해국이 아니면 무엇입니까!”

8일 오전 국가인권위원회 앞에 선 황인철 KAL기납치피해자가족회 대표(사진). 그는 정부에 이어 국가인권위원회까지 KAL기 납치 피해자 송환 문제에 수수방관 하고 있다며 분노를 금치 못했다. 황 대표의 손에는 “(정부가 납북자 문제를) 조사대상으로 삼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내용이 담긴 인권위의 통지서가 들려 있었다.

황 대표는 이날 “인권위는 인도주의 원칙과 절차에 따른 정당한 요구와 기본권을 조직적으로 짓밟았다”면서 “이는 ‘국가인권기구의 지위에 관한 원칙(파리원칙)’을 위배하는 반(反)헌법적 인권 침해 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황 대표가 KAL기 납치 피해자였던 아버지 황원 씨를 송환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며 호소한 지도 벌써 16년째다. 황 대표는 지난 2001년 제3차 이산가족 상봉 장면을 보면서 납북된 부친을 송환하는 데 모든 것을 걸었고, 이후 정부와 유엔, 북한인권 민간단체 등 사방을 두드리며 협조를 요청해왔다.

그러나 정부는 줄곧 정권 성향과 관계없이 KAL기 납치 피해 문제에 미온적인 자세로 일관했다. 황 대표는 “정부가 KAL기 납북자를 이산가족으로 분류해 놓고선 ‘이산가족 수가 너무 많고 다른 이산가족에게도 기회를 줘야 한다’는 이유를 들며 대책 마련을 미뤄왔다”면서 “오히려 40년 전에 일어난 사건을 왜 끄집어내느냐는 핀잔을 듣는 일도 있었다”고 밝혔다.

급기야 황 대표는 지난해 12월 22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내며 부친을 비롯해 KAL기 납치 피해자들의 송환 협조를 요청했다. 하지만 인권위는 올해 4월 4일 “(납북자 문제) 해결 방식에 대한 판단은 국내외적 정세 및 제반여건에 따른 정부의 고도의 정치적· 외교적 사안”이라면서 “조사대상으로 삼는 것은 적절치 아니하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이에 황 대표는 “파리원칙조차 지키지 못하는 인권위가 어떻게 국제사회로부터 ‘A’ 등급을 받을 수 있나”라면서 “대한민국은 A 등급이 아닌 인권 가해국”이라고 비판했다.

황 대표는 이어 “지난 16년간 통일부 이산가족과는 인도주의 원칙과 항공기 불법 납치 억제에 관한 협약 불이행을 통해 반인권적 불법 행위를 자행하고 있다”면서 “민간 항공기 불법납치 행위는 그 어떠한 경우에도 인도와 기소를 이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정부와 인권위의 비협조에 대응해 각각 인권위 정문과 정부청사후문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가진 황 대표는 세계국가인권기구연합(GANHRI)에도 인권위의 ‘A’ 등급 부여결정을 재검토해달라는 조정신청을 해둔 상태다. 

황 대표는 “부친이 납치되셨을 당시 나는 두 살이었고, 서른넷이 되던 해부터 아버지 송환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그러나 내가 쉰 살이 되도록 정부로부터 도움의 손길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 “하지만 아버지의 생사확인과 송환을 위한 나의 노력은 계속될 것”이라고 피력했다.

한편 황 대표의 부친 황원 씨는 1969년 12월 11일 강릉발 김포행 국내선 YS-11기에 탑승했다가 정오 12시 35분경 대관령 상공에서 북한 고정간첩 조창희에 의해 강제 납치됐다.

당시 북한은 국제사회의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이듬해인 1970년 2월 4일 승객 50명 전원 송환을 약속했지만, 같은 해 2월 14일 돌연 약속을 어기고 승객 39명만 송환했다. 이에 당시 여객기에 탑승했던 승무원 4명과 승객 7명은 여전히 생사를 알지 못한 채 북한에 억류돼 있다. 황원 씨는 이 때 억류된 승객 7명 중 한 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