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 시험대 된 개성공단의 14년 우여곡절

북한이 개성공단 폐쇄 위협 나흘 만인 3일 우리 기업의 개성공단 입경을 불허하고 남측으로 귀환만 허용하겠다고 정부에 통보했다. ‘남북교류의 최후 보루’로 여겨지는 개성공단에 다시 불안감이 조성되고 있다.


북한은 개성공단 폐쇄 여부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지만 도발위협을 높여오던 상황에서 출입을 차단하자 현지 체류인원의 신변안전에 대한 우려와 개성공단 존폐에 관한 논란도 나온다.


개성공단은 지난 2000년 8월 우리 측 기업인 현대아산과 북측의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간 합의 체결로 출발, 4년여의 노력 끝에 2004년 12월 첫 제품을 생산했다.


이후 2007년 총생산액 1억 달러 달성했고, 천안함 폭침에 따른 ‘5·24조치’로 남북관계가 전면 중단된 상황에도 유일하게 지속돼 ‘남북교류의 최후 보루’로 여겨져 왔다.


개성공단은 지난 13년간 큰 무리 없이 유지돼오긴 했지만, 남북관계가 악화되고 긴장이 고조될 때마다 불안에 떨 수밖에 없었다. 북한이 남측의 인적·물적 자원을 볼모로 협박하기 시작한 것은 2008년부터다.


2008년 남측의 ‘3통(통신·통관·통행) 합의’ 불이행을 주장(6.22)하며 공단에서 남측으로의 인력·물자 통행시간 제한을 통보한(6.24) 북한은 12월 1일 남북관계 1단계 차단조치로 명명한 이른바 ’12·1조치’를 취했다. 민간단체의 삐라 살포로 개성공단 사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이명박 정부는 이를 방조하는 등 남북관계를 대결의 시대로 되돌렸다는 이유였다.


’12·1조치’는 남북 간 육로통행과 개성공단 체류인원 제한하는 것으로, 당시 출경(12회)·입경(7회) 횟수를 각각 3회로 축소했고, 체류인원을 880명으로 제한하고 개성 남북경협협의사무소를 폐쇄했다.


북한은 2009년 3월 한·미 키 리졸브 훈련을 빌미로 세 차례에 걸쳐 육로통행을 차단하기도 했다.


북한은 훈련 개시일이던 3월 9일 통행을 차단 후 다음 날 정상화했고, 13일 재차 통행을 중단한 뒤 나흘만인 16일 귀환에 한해서만 통행을 허용했다. 이후 17일부터 19일까지 통행을 허용했지만 훈련 종료일인 20일 재차 출·입경을 전면 차단, 긴장을 고조시킨 바 있다.


이후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방북을 계기로 2009년 8월 21일 ’12·1조치’를 전면 해제, 경의선 육로통행을 정상화했다. 북한은 천안함 폭침 직후 우리 정부가 대북 심리전 방송 재개 움직임을 보이자 ‘대북심리전 방송 재개 시 서해지구 북남관리구역 전면 차단조치를 취하겠다'(5.26)고 위협하기도 했다.


그동안 북한이 보인 태도로 볼 때 북한의 추가적인 차단 조치는 향후 일주일이 관건으로 보인다. 북한이 최근 취한 조치를 볼 때 사태의 장기화도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