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성묘길 달라졌다…장사꾼 ‘와글와글’

북한 당국은 오래전부터 ‘화장(火葬) 문화’를 강조해 왔으나, 김일성-김정일 집안 및 간부들 부터가 지키지 않고 있는 화장문화를 일반 백성들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일부 화장터가 있긴 했지만 대부분 무연고자 혹은 길에서 죽은 사람들을 화장하는데 이용될 뿐이다.


북한 주민들은 화장에 대해 ‘죽은 사람을 또 죽이는 행위’로 생각해 산에 묘를 쓰는 것을 상식으로 여긴다. 묘지는 대부분 공동묘지 형태다. 통상 1m간 격으로 묘지를 쓰는데, 성묘 때마다 옆의 묘 후손을 반복적으로 만나다 보면 옆집 친구 같은 친분이 형성되기도 한다.


북한에서 태어나는 것 자체가 ‘불행’이지만 땅에 묻혀서도 고생은 계속된다. 북한의 공동묘지들은 도시와 꽤 가까운 곳에 위치한다. 도시로 들어가는 도로 옆의 야산들이 주로 공동묘지로 이용된다. 2000년대 초반에  외국인들이 “북한에는 묘지가 참 많다. 혹시 저 사람들이 90년대 식량난때 죽은 사람 아닌가”라는 질문을 던지자 김정일은 각 묘지마다 봉분을 깍아내는 평토(平土)작업을 지시하기도 했다.


자식들은 겉으로 표현은 못하고 마음속으로 눈물을 흘리며 부모의 묘를 평평하게 깍아야 했다. 묘지에도 빈부격차가 엿보인다. 간부들의 묘 자리는 규모도 크며 대리석으로 웅장하게 비석을 만들지만, 일반 주민들은 나무 말뚝에 부모의 이름을 새긴다. 눈과 비, 바람에 의해 그 색깔이 지워진채 버려지는 묘도 적지 않다.


성묘 방법은 대부분 비슷하다.


먼저 묘에 도착하면 부모에게 왔다는 인사를 건네는 차원에서 묘 뒤 부분에 가서 손으로 손바닥만한 자리를 파고 그앞에 술한잔을 붓고 절을 한다음 다시 흙을 덮는다. 그 다음 낫으로 묘 위에 돋아난 풀들을 베여 단정하게 정리한다.


벌초가 끝나면 제돌 위에 보자기나 종이를 펴고 준비해온 음식들을 차려 놓고 맏아들 부터 순서대로 술을 붓고 절을 한다. 이러한 의식이 끝나면 묘 옆에 자리를 잡고 준비해간 음식을 펴놓고 식사 시간을 갖는다. 여자들은 남자들의 과음을 단속하느라 마음이 바빠진다.


통상 남자들이 과음하는 경우가 많다. 산에 오를 때는 여자들을 재촉하던 남자들이 내려올 때는 여자들의 등에 기대여 끌려 내려오는 경우도 있다. 어느 공동묘지나 꼭 이런 사람이 있다. 술에 만취해 다른 사람 묘 엎드려 아버지, 어머니를 찾으며 엉엉 우는 남자들 말이다. 


보통 오후 4시정도면 남은 음식들을 싸가지고 산에서 내려와 집으로 향한다. 이 때는 장남 집이나 묘와 거리가 제일 가까은 형제 집으로 모이게 되는데, 함께 저녁 식사를 하며 못다한 이야기로 시간을 보낸다. 형제들은 늦은 시간이 되어야 헤어진다. 일부 간부들은 추석 저녁시간을 이용해 자기들끼리 비밀파티를 조직하는 경우도 가끔씩 있다.


추석 당일날에는 성묘객들을 상대로 하는 장사가 호황을 누린다. 장사하는 사람들은 조상 산소도 못찾는 불효를 곱씹으면서 성묘객들을 상대로하는 장사에 여념이 없다.


성묘객들을 상대로 하는 장사는 좋게 말하면 ‘북한의 새로운 활력’이고, 나쁘게 말하면 ‘치열한 생존 전쟁’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상인들끼리 서로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싸우는 모습, 자신의 물건을 사달라고 외치는 여성들의 목소리, 음식을 도적질하다 매를 맞는 꽃제비들…… 종합시장의 일상과는 또 다른 분위기다. 특히나 전날까지 준비한 장사거리를 다 팔지 못한 상인들은 성묘객들을 상대로 마지막 장사에 힘을 쏟는다. 운좋게 오전에 장사를 마치면 오후에라도 성묘길에 나설 수 있지만 저녘까지 다 팔지 못하면 조상에 대한 죄책감으로 1년을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공동묘지로 향하는 골목 마다 상인들이 줄을 잇는다. 술장사, 담배장사, 사탕장사, 껌장사, 떡장사, 인조고기밥 장사, 꽈배기 장사……심지어는 집에서 애용하던 물건들도 내다 파는 노점상들도 있다. 술장사는 특히 단속 대상이기 때문에 보안원(경찰)들 몰래 팔아야 한다. 이날은 ‘농태기술’이라고 불리는 옥수수주 뿐 아니라 집에서 보리를 키워 자체로 만든 수제 ‘맥주’도 등장한다. 


성묘객들을 상대로하는 장사 중에 첫번째는 당연히 ‘물장사’다. 변변한 장사 밑천이 없는 사람들은 얼음을 띄운 물을 팔아 돈을 번다. 냉장고가 있는 이웃에게 돈을 주고 얼음을 얼렸다가 성묘객들에게 한컵씩 파는 것이다.


공동묘지 아래에서는 자전거를 지켜주고 돈을 받는 사람도 있다. 성묘길에 나서는 주민들의 절반 이상이 자전거 뒤에 술과 음식을 싣는다. 그런데 자전거를 끌고 산길을 오를 수 없기 때문에 ‘자전거 지킴이’가 생기는 것이다.  이날은 이발사들도 공동묘지 앞에서 길거리 장사를 한다. 조상 묘를 찾기 앞서 말쑥한 모습을 갖추려는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한 새로운 장사 형태다. 길 한켠 의자에 앉아 두발을 정리하고 물수건으로 뒷정리를 한다. 돈을 좀 더 내면 머리를 감을 수도 있다.   


추석은 도둑들에게도 ‘대목’이다. 이날은 빈 집을 노리는 도둑들이 기승을 부린다. 주로 일정한 거주지 없이 방랑하는 꽃제비들이 도둑질을 많이 한다. 한국에서는 경찰들이 추석 명절기간 ‘특별 근무’를 한다고 하던데, 북한의 보안원들은 자기들 명절나기에 바빠 일반 주민들의 안전문제에는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추석은 형제 가족이 많은 집 사람들이 어깨를 펴는 날이기도 하다. 형제들끼리 무리지어 조상 묘에 오르는 풍경은 뭍사람들의 부러움을 산다. 90년대 대량아사 시기를 거쳐오면서 형제들간 우애도 과거와 달라졌다. 더구나 요즘 젊은 사람들은 아이를 많이 낳지도 않는다. 가족이 없이 혼자서 산에 오르는 사람들은 보는 사람의 마음까지 울적하게 만든다.


추석날 밤이 되면 주택가 골목에는 술취해 비틀거리는 남자들이 유독 많다. 힘겨운 일상 생활에서 오랫만에 부모 형제와 재회했기 때문일까? 웃음과 눈물, 즐거움과 회한, 불만과 보람이 엇갈리는 사람들은 너도 나도 술을 찾는다. 취객들을 단속하는 보안원들의 손전등이 마치 조명탄처럼 마을 곳곳을 비춘다. 1년에 한번 뿐인 ‘민속명절’의 하루가 그렇게 또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