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영철 처형과 북한군의 쿠데타

국가정보원이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이 숙청돼 공개처형 당했다고 밝힌 지 1주일이 다 되어가고 있다. 북한이 ‘공포정치’를 언급하는 남한에 최고존엄을 모독하지 말라며 반발하고 있고, 조선중앙TV의 기록영화에 현영철의 모습이 그대로 나오고 있지만, 북한이 현영철의 실물을 공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현영철 처형은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다. 실제 고사총으로 처형당했느냐 하는 데에 다소 논란이 있기도 하지만, 고사총을 맞았느냐 소총을 맞았느냐는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리영호, 장성택, 그리고 현영철
 
김정은 집권 이후의 대표적인 숙청 사례인 리영호, 장성택, 현영철의 거세(去勢)는 모두 김정은의 권력 강화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주요 직위에 있는 파워엘리트들을 전격적으로 숙청함으로써 김정은의 권력을 더욱 공고히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감히 도전하지 말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주는 것이다. 하지만, 리영호, 장성택의 숙청과 현영철의 숙청은 조금 다른 면이 있는 것 같다.

리영호 전 총참모장의 경우 김정일 위원장이 아들인 김정은 제1비서의 안정적 집권을 도와주기 위해 후견인으로 선택한 사람이었다. 어린 왕을 보좌하기 위해 경험 많은 원로에게 역할을 맡긴 것이다. 하지만, 이런 원로는 김정은의 입장에서 보면 부담스러운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리영호는 김정은의 말 한마디에 손이 발이 되도록 움직이는 단순한 하수인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리영호의 숙청은 기존군부의 힘을 약화시키면서 김정은의 1인 권력을 강화시킨다는 정치적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성택의 경우도 김정은에게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장성택은 고모부로 김정은의 성장과정을 어려서부터 지켜본 인물이다. 김정은이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부터 지켜봐왔던 고모부 장성택이 김정은의 지시를 절대명령으로 받아들였을리 없고, 김정은 또한 장성택에게 마음대로 지시를 내리기가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장성택은 어떠한 경우라도 김정은에게 단순한 하수인이 될 수 없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때문에, 장성택의 숙청은 다소 잔인한 방법이긴 하지만 ‘최고지도자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라도 죽음을 면할 수 없다’는 가장 강력한 메시지를 북한의 권력엘리트들에게 각인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고모부를 죽임으로써 김정은 1인권력의 절대성을 대내외에 과시한 것이다.

하지만, 이번 현영철의 처형에서는 리영호, 장성택의 숙청에서 내포됐던 정치적 의미를 찾아보기 힘들다. 현영철은 주요 군간부라고는 하지만 어차피 김정은의 단순한 하수인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북한 권력구도에서 현영철이 있음으로 해서 김정은의 권력이 제약을 받았다고 볼 만한 근거는 없다. 동일한 맥락에서 현영철이 죽었다고 해서 김정은의 권력이 더욱 강화됐다고 볼 근거도 없다는 얘기다. 현영철의 전격적인 처형을 통해 김정은에게 조금이라도 밉보이는 사람은 언제든지 처단할 수 있다는 경고를 준 측면은 있겠지만, 그것은 단순한 권력의 남용일 뿐이지 권력 강화를 위한 고도의 정치투쟁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비운의 희생양 현영철

국정원은 현영철 숙청의 이유로 ‘불경죄’를 거론하면서 ‘인민군 훈련일꾼대회’에서 조는 모습이 포착됐다는 것을 하나의 예로 제시했다. 최고지도자가 연설하는 데 졸고 있는 것도 북한에서는 물론 죄가 되지만, 단순한 ‘졸음’보다는 사석에서 김정은에게 은연중 불만을 표시한 것 등이 보위부의 감시망에 걸려들었다고 보는 것이 보다 합리적일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현영철의 ‘불경죄’가 있었다고 한들 전격적인 처형으로까지 간 것은 너무 심한 것이었다. 현영철의 비운은 현영철 자신보다는 김정은의 폭압적 성격에서 비롯됐다고 봐야 할 것 같다.

민간 뿐 아니라 군 조직까지 감시망이 촘촘히 짜여져 있는 북한의 상황에서 조직적인 반항이 일어나기는 힘들다. 북한군에서 쿠데타가 가능하지 않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북한의 이런 특수성에 기인한다. 하지만, 극단적인 공포정치와 이로 인해 최고지도자와 파워엘리트 그룹 간의 균열이 심화된다면, 어떤 미래가 전개될 지는 섣불리 예단하기 힘들다. 역사의 상상력은 항상 인간의 사고를 뛰어넘어 펼쳐져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