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최근 평화공세에 진정성이 없는 이유

작년과 올해, 남북관계에는 극적인 변화가 몇 차례 발생했었다. 지난해 개성공단이 폐쇄 직전까지 갔다가 다시 가동 재개된 일이 그렇고, 상봉 사흘 전 북한의 일방적인 연기 통보로 좌절됐던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우여곡절 끝에 개최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일이 그렇다. 특히 이산가족 상봉과 관련해서 남북한이 올 20일부터 25일 사이에 상봉행사를 진행하기로 합의한 일은 지난해 9월 이래 가장 드라마틱한 사건이었다. 여기에 북한이 지난 8일 전통문을 통해 남북 접촉을 제의했고 이를 우리 정부가 수용해 12일 판문점에서 남북 고위급 접촉이 열리고 있어, 남북관계에 중요한 기점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북한이 이번 이산가족 상봉 행사 관련 합의된 내용을 재차 뒤집을 수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하지만 이번에도 이산가족들이 실제 만나기 전에는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 9월 북한은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얼마든지 ‘손바닥 뒤집듯’ 남한과 합의된 사안을 번복할 수 있다는 전과(前過)가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남북관계 개선에 관한 자신들의 진정성을 설파하고 있지만 이면에서 나타나는 그들의 행태는 ‘동포애적 선의와 주동적 노력’의 진솔함을 의심케 하기에 충분하다.


북한은 지난 6일 국방위원회 정책국의 대변인 성명을 통해 남한에 한미군사훈련과 비방중상 중지를 요구하며 이산가족 상봉을 재고할 수 있다고 위협했다. 이어서 노동신문은 2월 10일 남북관계 개선 조치를 제안한 국방위의 ‘중대제안’과 ‘공개서한’을 거론하며 한국이 미국 등 외세의 간섭을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내용은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했던 그들의 해묵은 주장을 현재적 맥락에 맞게 수정 제의한 내용에 다름 아니다. 이산가족 상봉을 빌미로 내세워 미국의 한반도에서의 영향력을 축소해 보자는 의도라는 것이다.


한미합동군사훈련의 중지 등을 요구하면서 자신들의 핵능력을 지속적으로 과시하는 부분도 북한의 진의에 대해 의혹의 눈길을 거둘 수 없는 이유중 하나다. 지난해 2월 12일 북한은 3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꼭 1년 전 얘기인데 북한은 벌써 네 번째 핵실험 준비를 완료한 상태라는 보도가 나왔다. 물론 4차 핵실험이 임박했다는 징후는 현재까지 알려진 바 없으나 북한정권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추가 핵실험을 단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북한 핵의 존재는 우리에게는 항시적인 위협요인이라 할 수 있다. 서해 동창리 미사일 발사대도 확장 공사를 마쳐 2012년 12월 발사됐던 30m 길이 은하 3호보다 더 긴 50m 규모의 로켓을 쏘아 올릴 수 있는 능력을 구비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북한은 최근 들어 우리에게 평화공세를 남발하고 있다. 위장평화공세가 아니라고, 자신들의 남북관계 개선에 관한 진정성을 믿어달라고 ‘호소’에 가까운 제안을 쏟아내고 있으나 그들이 말하는 ‘우리 민족끼리’ ‘민족공조’라는 슬로건은 가슴에 짠하게 와 닿지 않는다. 국가안보에 있어 감상적이고 낭만적인 이상은 금물이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중국 전국시대의 일이다. 전국칠웅(戰國七雄) 가운데 위나라가 번성했던 시절 위문후(魏文侯)는 중산국 토벌에 나선 적이 있다. 위의 중산국 토벌군 장수는 악양(樂羊)이었고 그에 대항하는 중산국 장수는 악양의 아들 악서(樂舒)였다. 부자간에 서로 달리 섬기고 있는 국가의 안보를 두고 대결을 펼친 것이다. 악양은 중산국 도읍인 중산성을 포위하고 유리한 전세에서 초반에 승리를 거둘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아들의 통곡과 공성(攻城)을 지연해달라는 요청을 뿌리치지 못했다. 아들과 그 가족들의 안위를 염려한 탓에 악양은 세 차례나 악서의 요청을 받아들여 중산성 공격을 연기하며 공식적인 항복을 기다렸다. 하지만 악서는 그 나름대로 중산국의 연명을 도모하고 있었다. 마침내 악서의 계책에 속았음을 깨달은 악양은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했으나 중산성을 무너뜨리는 것은 그리 쉽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위군은 적잖은 피해도 입었다. 중산군은 백척간두에 몰리자 악서의 아내와 자식들을 동원하여 악양의 인정을 자극하며 철군하라고 위협했지만 중산의 계략에 속아서 공격 시기를 놓쳤음을 깨달은 악양은 더 이상 사사로운 정에 연연하지 않았다. 심지어 악양은 중산국 임금(中山子) 희굴(姬窟)이 손자병법 <군쟁편(軍爭篇)>에 따른 전술, 즉 적의 장수를 낙담시켜 적군의 사기를 떨어뜨리기 위해 악서의 머리를 끓여 국을 보내자 비통의 눈물을 흘리면서도 그 국을 마셔버렸다. 그 모습을 본 위나라 군사들은 단번에 사기를 회복하여 적진을 돌파했고 중산성을 함락하는 데 성공했다.


이 같은 일화는 우리에게 국가안보와 관련된 중요한 내용을 시사해준다. 국가안보에 있어 사사로운 정은 금물이라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악양은 개인적인 정을 뿌리치고 중산국 토벌에 성공했지만 처음부터 부자지정에 얽매이지 않았더라면 그 같은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처음부터 위군의 우세한 전력으로 중산성 함락에 나섰다면 아군의 피해도 최소화하면서 손쉽게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인정을 내세운 악서의 호소는 위군의 공격을 지연시켜 중산군의 전력회복과 재정비를 위한 시간을 버는 효과를 얻었다.


이 교훈은 남북관계에도 유사하게 적용될 수 있다. 물론 필자가 악양의 교훈에서처럼 북한을 공격해서 붕괴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상기해야 할 내용은 북한의 ‘우리 민족끼리’ ‘민족공조’하자는 대남평화공세에 현혹돼선 안 되고 북한에 대한 감상적인 접근은 경계해야 한다는 점이라는 것이다. 국가안보와 관련된 정책은 낭만적인 기대가 아닌 철저한 현실적 관점에서 입안되고 실행돼야 한다.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고 개혁개방의 길로 나올 때 그들의 ‘민족공조’ 주장은 진정성을 얻게 될 것이고 국제사회의 따뜻한 포옹을 얻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