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북한 주민들의 삶은 ‘찰지고 맵짠’ 말 속에 있다

얼마 전 한 영화에서 북한 주민들의 대화에 한국어 자막이 붙은 장면을 보면서 적잖이 놀랐다. 외국어도 아닌 같은 우리말에 자막이 필요한 시대가 됐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분단 80년. 우리는 과연 서로의 말을 얼마나 알아들을 수 있을까. 아니, 그보다 먼저 우리는 북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북한 문제를 취재(벌써 18년 차다)하면서 탈북민 출신 기자들과 부대끼는 것은 일상이었다. 그런데 남한 출신인 필자 입장에서는 대화 자체가 고난의 연속이었다. 같은 한국말인데 처음 듣는 단어가 불쑥불쑥 튀어나왔고, 어떤 말은 문맥을 몇 번이나 되짚어야 겨우 뜻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지역에 따라 억양과 표현도 달랐다. 그때마다 ‘분단이라는 것이 영토만 갈라놓은 것은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래서인지 평안남도 출신 탈북민 설송아의 『찰지고 맵짠 이북 사투리』(대동강서가)를 읽는 일은 낯설면서도 반가웠다. 한때 무슨 말인지 몰라 몇 번씩 되물었던 표현들이 책 곳곳에서 다시 나타났다. 어렵기도 했지만 묘하게 오래전 기억을 끄집어냈다. 처음 북한 취재를 배우던 시절, 탈북민 기자들과 말뜻 하나를 두고 옥신각신했던 기억까지 새삼 떠올랐다.

우선 이 책은 사투리 사전이 아니다. 함경도·평안도·황해도의 방언을 따라 학교와 연애, 우정과 사랑, 가정과 직장, 그리고 장마당을 돌아다닌다. 책의 구성 역시 학창 시절에서 사랑과 가정, 일터와 장마당으로 이어진다. 말하자면 ‘말 따라 떠나는 북한 사람들의 생활사’에 가깝다.

그래서 재미있다가도 어느 순간 씁쓸해진다. 사람들의 걸쭉한 입담 뒤로 북한 사회의 또 다른 모습이 언뜻언뜻 드러나기 때문이다. 가부장적인 가족문화가 보이고 경제난 속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주민들의 고단함도 묻어난다. 직장과 조직생활에서는 체제에 대한 충성과 감시의 구조가 읽히고, 장마당으로 가면 먹고살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해야 했던 사람들의 강인한 생활력이 드러난다. 북한 사회를 정색하고 설명하지 않으면서도 주민들의 말과 에피소드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사회의 구조가 보인다는 점이 이 책의 장점이다.

그러면서도 정겨운 구석이 있다. 어릴 적 시골에 살면서 흔히 들었던 ‘벤또’, ‘구루마’, ‘딸따리’ 같은 말을 접하면 특히 그렇다. 물론 남과 북에서 사용법과 의미, 생명력이 완전히 같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 역시 어린 시절 어른들의 입에서 비슷한 말을 어렵지 않게 들었다. 사라져가는 말 하나가 개인에게는 유년의 기억이고, 조금 더 크게 보면 한 시대의 생활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생각하게 한다.

아이들의 놀이도 마찬가지다. 지역마다 편을 가르는 구호가 달랐다는 대목을 읽으면서 최근 예능 프로그램에서 전국 각지의 서로 다른 ‘편 가르기’ 구호를 소개하던 장면이 떠올랐다. 평안도와 함경도, 서울과 경상도, 전라도와 충청도에서 부르는 말은 서로 달라도 아이들이 편을 갈라 신나게 놀고 싶어 하는 마음은 어쩌지 못했던 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분단은 말을 변화시켰지만 사람의 희로애락까지 완전히 갈라놓지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주민들은 말로 살아남았다

북한 주민들을 오래 취재하면서 개인적으로 자주 느끼는 것이 하나 있다. 북한 주민들은 참으로 ‘말싸움’에 능하다는 점이다.

장마당에서 단속원과 상인이 맞붙을 때도 그렇고, 조금이라도 더 이윤을 남기려고 상인과 손님이 가격을 흥정할 때도 그렇다. 단속을 피하고, 물건을 지키고, 자신의 몫을 챙기기 위해 말을 주고받는다. 때로는 기가 막힌 비유와 언어유희가 튀어나온다. 성적인 농담의 ‘도수’ 역시 우리가 따라가기 어려울 만큼 거침없을 때가 있다.

나는 이것을 단순히 북한 사람들의 말투가 거칠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치적·사회적 통제가 강한 사회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터득한 일종의 생활방식으로 볼 여지가 있다. 공개적으로 권력을 비판하기 어려운 사회에서는 풍자와 농담, 욕설과 은어가 불만을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통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투리는 단순한 ‘옛말’이 아니다. 그 속에는 주민들이 국가와 조직, 가정과 시장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가 새겨져 있다.

북한 당국은 언어에 사상과 문화가 담겨 있다고 강조해 왔다. 실제로 2023년 1월 채택된 ‘평양문화어보호법’은 평양문화어를 사회주의적 언어생활과 연결하고, 이른바 ‘괴뢰말투’를 없애는 것을 법의 주요 목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찰지고 맵짠 이북 사투리』를 읽고 나니 그 논리를 뒤집어보고 싶어진다.

언어에 사상이 담긴다면, 주민들의 언어에는 주민들의 생각도 담겨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말의 변화를 추적함으로써 북한 주민들의 의식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도 읽어낼 수 있지 않을까.

장마당의 언어가 대표적이다. 시장화가 진행되면서 사람을 부르는 호칭과 거래할 때 사용하는 표현, 돈과 물건을 바라보는 관념도 변했다. 실제로 평양문화어보호법이 ‘오빠’ 같은 호칭뿐 아니라 직책 뒤에 ‘님’을 붙이는 표현까지 규제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은 역설적으로 북한 주민들의 언어생활에 외부 문화와 시장적 관계가 얼마나 스며들었는지를 보여주는 단서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말의 변화는 곧 사회 변화의 기록일 수 있다.

분단 80년, 이제 ‘말’을 기록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걱정스러운 부분도 있다. 평양문화어보호법과 같은 강력한 언어 통제가 계속되고 남북 주민들이 서로 만나고 대화할 기회마저 줄어든다면, 남과 북의 언어적 거리는 앞으로 더욱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 단순히 사용하는 단어가 달라지는 문제가 아니다. 같은 표현을 듣고 떠올리는 감정과 문화적 맥락까지 달라진다면 서로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비용은 훨씬 커질 수밖에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찰지고 맵짠 이북 사투리』가 우리에게 던지는 또 하나의 과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책에서 저자가 ‘두말하지 말라’와 같은 표현의 어원을 찾아가는 모습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궁금증이 생긴다. 우리가 북한말이라고 생각했던 말은 정말 북한에서 새롭게 생겨난 것일까. 함경도와 평안도의 오래된 방언이 분단 이후 북한의 언어로 남은 것은 아닐까. 반대로 지금 남한의 지역 사투리와 북한의 지역어 사이에는 어떤 공통의 뿌리가 남아 있을까.

그렇다면 이제 남북의 언어 차이를 단순히 비교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갈 필요가 있다. 한반도 전체의 사투리를 하나의 거대한 언어생활사로 놓고 그 뿌리와 변화 과정을 추적해 보는 작업도 필요하지 않을까.

일제강점기 우리말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위기 속에서 조선어학회 사람들이 전국의 말을 모아 사전을 만들고자 했던 ‘말모이’의 노력도 떠오른다. 말을 모은다는 것은 단어 몇 개를 기록하는 일이 아니었다. 그 말을 사용하며 살아온 사람들의 기억과 역사, 문화를 지키는 일이었다.

분단 80년을 살아온 지금 우리에게도 어쩌면 새로운 의미의 ‘말모이’가 필요한지 모른다. 평양과 신의주, 함흥과 청진에서 사람들이 실제로 사용했던 말, 그리고 지금 사용하고 있는 말을 기록하고 남한 각 지역의 말과 연결해 보는 작업이다.

『찰지고 맵짠 이북 사투리』를 덮으면서 결국 한 가지 생각으로 돌아왔다.

북한을 이해하려면 북한 당국이 하는 말만 들어서는 안 된다. 북한 주민들이 하는 말도 중요하다.

장마당에서 값을 흥정하는 말, 아이들이 편을 가르며 외치는 말, 청춘 남녀가 사랑을 고백하는 말, 부부가 티격태격하는 말, 힘든 노동을 견디며 동료끼리 농담을 건네는 말. 그 평범한 말들 속에 공식 문헌에는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 북한 주민들의 진짜 생활이 남아 있다.

사투리는 그렇게 사람의 삶을 기억한다. 그리고 어쩌면 그 말을 다시 찾아 기록하고 서로 알아듣기 위해 노력하는 일에서부터, 분단 80년 동안 멀어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조금씩 좁혀 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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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용 기자
sylee@uni-media.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