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4대북제재 조치 해제돼야 하는가?

북한 실세 3인방이 북으로 돌아가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5·24조치’ 해제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가시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드디어 다시 ‘화해모드’인가? 이것만 해제하면 남북은 사이 좋은 형제가 될 수 있을까?


강제적이고 억압적인 모든 조치는 사라져야 한다. 어떤 형태의 남북교류도 전면 금지한 5·24조치 또한 예외는 아니다. 언제, 어떻게 해제할 것이냐는 방법론의 문제일 따름이다. 구체적 방법에는 해제를 위한 대내외 환경적 ‘조건’과 시대적 ‘맥락’이 뒷받침돼야 한다. 요는 조건과 맥락을 막연히 기다리고만 있을 것인가, 그것의 구성요소를 만들고 조성해 나갈 것인가의 질문으로 회귀된다. 이것마저 아예 무시해야 한다며 5·24조치는 하루속히 원인무효 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이는 역사의 진실과 사실의 흔적을 거부하는 것이다.


어떤 결정을 유발한 원인행위 자체는 그냥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순결한 희생 없이 죄를 용서받은 경우란 역사상 없다. 기독교가 역사의 분기(BC와 AD)를 가른 것은 십자가에서 흘린 예수의 피였다. 북한의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씨 피살과 연평도 포격은 그냥 지울 수 없는 중차대한 국가(조직)범죄이다. 정부가 손 놓고 조건과 맥락을 막연히 기다리고만 있었다면 질책 받아 마땅하다. 그것을 형성하기 위한 하위정책(sub-policies)을 개발, 집행해 나가는 노력이야말로 정부의 책임이다. 국민적 공감대란 ‘해제’ 자체가 아니라 해제를 위한 조건과 맥락이 무엇이냐에 달렸다. 일반 국민들이 정부 정책을 속속들이 알 필요도 이유도 없다. 그것은 위임 받은 책임자들의 몫이다. 그러나 해제를 위한 조건과 맥락이 ‘북으로부터의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뿐’이라고만 한다면 넘치는 대북전문가들과 화해지향형 북한 친화 정치인들의 숫자를 감안해 볼 때 참으로 빈약하다.


이제껏 성공한 경제제재는 세계정치사에 유래가 없다. 모든 경제제재는 실패를 예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시행하는 것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다. 정치적 메시지의 경제적 표현(수단)이 일방적 단절을 통한 경제제재의 실체이다. 이럴진대 그냥 언제 그랬냐는 듯 해제해도 될까? 말썽부리는 아이에게 부모가 극약처방으로 “말 안 들으면 밥 안 줄꺼야”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굶겨 죽이는 게 목적이 아닌 것처럼 어르고 타이르기도 하며 친척집에 보내기도 하는 일련의 고단한 양육 노력이 요구되는 법이다.


그런데 우리는 5·24조치의 원인만 알 뿐 해제의 조건과 맥락을 만들어 내기 위해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정치인이나 북한전문가들은 5·24조치 해제를 주장하기 전에 정부에게 먼저 물어야 한다. 정부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었)냐고, 앞으로의 계획이 무엇이냐고. 정부의 대답이 아무것도 없었다라면 그런 연후에 준엄하게 꾸짖어야 할 것이다. 언젠가 해제해야 할 단절 조치의 해제로 나아가기 위한 조건과 맥락을 왜 고민하지 않았냐고 말이다. 감나무 아래에서 감 떨어지길, 하늘만 쳐다보는 어리석은 집단이냐고 말이다. 그리고 충심 어린 제언과 충고를 주어야 한다. 이것이 북한전문가들의 지적(知的)책임이다. 해제 주장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맥락과 조건’을 몰라도 무작정 목소리 높일 수 있다. 분위기에 휩싸이기 쉬운 무분별한 대중여론 속에서 ‘냉장고의 조명등’처럼 한 줄기 빛을 비추는 것이 전문가들과 정치인들의 역할이고 책무일 것이다.


정책결정자에게 영향력이 큰 정치인, 전문가라면, 장밋빛 전망만 쏟아낼 것이 아니라 조건과 맥락에 합당한 냉정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그것이 진짜 조언이다. 입장에 따라 그 내용은 다를 수 있어도 애초 조건과 맥락에 대한 공동체의 이해만 있다면 차이는 결정적이지 않을 것이다.
반복하지만 논의의 출발은 5·24조치의 해제냐, 아니냐가 아니라 해제로 나아가기 위한 조건과 맥락에 대한 남한의 입장과 방향, 전략, 구체적 실행계획과 일정이어야 한다. 통일준비위원회는 논란에 중심을 잡고 조정역할을 맡을 자격이 있다. 그렇게 인적 구성이 이뤄진 것 아닌가. 목욕물 쏟으며 아이마저 같이 버리는 ‘우(愚)’는 범하지 말아야 하지만 때 묻은 아이가 스스로 씻을 때까지 방임하는 것도 정답은 아니다. 뜬금없는 북한 3인방의 방문을 해제의 계기로 삼지 말고 ‘주체적’으로 언젠가는 해제할 대북조치의 방향을 찾는 작업을 해 나가길 바라 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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